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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왕제색도 - 빛으로 그리는
이갑수 지음, 도진호 사진 / 궁리 / 2010년 12월
평점 :
어느 사진 작가의 사진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에 사진작가는 같은 피사체를 정해놓고, 똑같은 앵글로 사진을 찍어 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눈이 오는 날, 비가 오는 날, 햇살이 따스한 날, 안개가 낀 날.... 아니, 그 보다도 사진을 찍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도 다른 빛깔의 사진이 나오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가끔은 작은 디카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그 사진 속의 모습은 같은 장소인데도 다른 느낌으로 나타나곤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궁리출판사는 인왕산이 바로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건물의 2층이지만 건물에 유리창이 많아서 항상 인왕산을 마주 보고 있다고 한다.
어느날, 농담처럼 시작된 말 " 사무실에서 보이는 인왕산의 매일 매일의 모습으 사진으로 남기면 어떨까?"
그래서 이리 저리 사진을 찍기 위한 앵그를 잡다 보니 앵글이 가장 좋은 곳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겸재의 집터였다고 한다.
겸재 정선은 인왕산 자락의 유란동에서 태어나 인왕산을 항상 보면서 자랐는데, 그의 평생의 벗이 세상을 뜨자 그를 그리워하면서 단숨에 그린 그림이 <인왕제색도>이다.
1751 년에 겸재가 비가 개고 난 맑은 모습의 인왕산을 수묵담채화로 나타냈다고 한다면, 그로부터 260년이 지난 지금에는 인왕산의 모습을 매주 3번씩 같은 장소에서 같은 앵글에 빛으로 담아내기로 한 것이다.
2009년 10월 1일부터 2010년 9월 30일까지 매주 2~3번에 걸쳐서 인왕산의 사진과 함께 인왕산과 관련이 있는 사람사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인왕산에 오르내리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아직도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통인동 사람들, 이발소, 청국장집 그리고 이제는 사라져 가는 통인동 골목길이야기. 효자동이야기, 통인시장 사람들 이야기.
그러나, 가끔은 인왕산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곳의 이야기도 함께 들려준다.
이 책의 저자는 인왕산에 자신의 나무라고 생각하고 눈여겨 보던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가 어느날은 산길을 가는 사람에 의해서 툭 꺾어지기도 하고, 그 꺾어진 나뭇가지를 들고 사무실에 오기도 하지만 결국에 서울성곽 복원 사업때문에 아예 없어져 버리기도 한다.
인왕산의 해골바위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다면 책 속에 그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근래에는 시인의 언덕 조성으로 윤동주 시인의 언덕도 생기고, 시비도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의 감성적 표현은 내리는 비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으니...
나무비, 잎비 란 단어를 들어 보셨나요?
그런데, 빛으로 표현된 <신인왕제색도>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할텐데,
이 책이 한 장의 인왕산 사진과 그와 함께 간단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사진은 책 속의 사진이어서 그런지 거기에서 거기인 사진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가끔 안개가 낀 모습이거나, 흐른 날의 모습, 파란 하늘에 구름이 둥실 떠 있는 모습의 인왕산.
그리고, 밤 풍경과 해질녘의 모습이 몇 장.
그래서 조금은 단조롭고 무덤덤한 감각이 든다.
역시,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란 생각이 든다.
아니, <신인왕제색도>가 <인왕제색도>를 따라가기엔 턱없이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그런 시도만으로도 색다르고, 인왕산의 모습과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