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였던가 해인사를 찾았었다. 늦가을이어서였는지 인적이 드문 해인사에 이르는 길은 수려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남은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은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 아름다웠었다.
그곳에 가게 된 이유는 국보 52호인 팔만대장경이 궁금해서 였는데, 해인사 경내의 뒷부분에 장경판전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래서 판전 틈새로 보이는 경전들을 둘러 볼 수 있었는데, 좀 오래된 기억이어서 지금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올해로 고려대장경이 간행된지 1,000년 (고려 현종 2년, 1011년 시작 선종 4년 1087년 완성,팔공산 부인사에 보관중에 몽고침입으로 불에 탔다)을 맞는다고 한다. 그래서 가을에는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이 열린다고 한다.
이에 맞추어 조정래 작가의 '대장경'이 오페라로 공연이 되기도 한다.
얼핏 생각하면 조정래의 새로운 작품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대장경'은 이미 작가가 32살(1976년)에 발표한 처녀장편소설인 것이다.
굵직한 대하소설 32권을 쓰기 시작한 것이 마흔살부터 였으니, 그 이전의 작품인 것이다. 1976년, 역시나 작가는 이 작품을 쓰게된 동기가 독재 정권에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때문은 아닐까?
그렇다. 거란족을 막아내기 위해서 70여년에 걸쳐 만들어졌던 고려대장경이 몽골군에 의해서 불타 없어지자 정방정치의 일인자였던 최우는 외적의 침략에 대한 당시의 정권에 대한 비난과 계속되는 몽고족에 의한 패배를 대장경의 조성으로 돌렸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또 후세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모르는채 역사책에 쓰여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작가의 처녀 장편소설이 이처럼 왜곡된 민족사의 한 획을 주제로 삼았다면, 그 이후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대하소설이 나올 수 있는 밑바탕이 '대장경'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 소설은 몽골군의 침입으로 부인사의 대장경이 불에 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10만 기병의 침략군에 비해서 부인사를 지키는 지원군은 승려를 비롯한 천 명 안팎. 싸움다운 싸움도 아닌.... 픽픽 쓰러진 고려인들. 칼에 찔리고, 불에 타고... 여기에서 살아 남은 근필은 불타는 가운데 스님의 시퍼런 광채의 사리 3 점을 수습한다.
고려 고종은 강화에 천도되어 있지만, 왕의 귀를 막고 있는 정방정치의 실세인 최우는 부인사의 대장경이 소실된 사실마저 말하지 않다가, 그 돌파구로 대장경의 조성을 거론하게 되고, 이에 처음에 수기대사는 최우의 술수에 반대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 대장경을 조성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작가는 고뇌하는 고종의 심리와 수기대사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하면서, 그리고 대장경의 조성과정을 세밀하게 써나가고 있다.
몽골의 침략으로 강화에 천도한 위정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은 대장경 조성당시에 그리 경제적으로는 어렵지 않게 생활했음에도 가여운 민초들은 몽골군에 의해서 무참하게도 핍박받으면서, 그리고 헐벗고 굶주리면서 생을 살아가야 했음을 이야기 속에 담아 놓고 있다.
얼마나 힘있는 문장인가?
이 시대의 위정자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위정자들이 귀기울여야 할 대목이 아닌가 한다.
어떤 전쟁이 힘겹지 않은 전쟁이 있겠느냐....
그러나, 몽골군에게 살륙당하는 민초들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을 수 있는 대장경의 조성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목수 근필이도, 12살 짜리 장균이도.
근필은 오직 대장경 판각에 온 힘을 쏟아 섬뜩 섬뜩할 정도 광기어린 열정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리고 장균이는 가화의 연정에도 판각이 끝날 때까지 한 치 흐트러짐없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던가.
81,137 장의 경판본인 162,274 장의 글씨, 한 판 양면을 650자로만 치더라도 52,739,050 자를 백여 명의 필생들이 3년에 걸쳐서 쓰고, 또 판각을 하고, 목수들은 대장경을 보관한 판전을 짓고.
이 소설은 비참한 우리의 역사 속의 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도 깔끔한 문장으로 이 이야기를 써나간다.
그래서 청아하게까지 느껴지는 '대장경'.
'대장경'이 밑거름이 되어 작가의 대하소설들이 쓰여졌음을 느끼게 해준다.
언제나, 조정래 작가는 글에 대한 열정이 돋보이는 작가이다.
그래서 작가는 '황홀한 글감옥'에 갇혀 살아오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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