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 대하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분량이 적기에 아무 때나 생각날 때에 즐겨 읽는다. 그녀의 작품을 비교적 빼놓지 않고 읽은 편인데, '키친' '아르헨티나 할머니' '데이지의 인생'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녀는 죽음과 관련지어서 사람들이 겪게 되는 상실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 과정이 결국에는 작중 인물들이 성숙하게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작품은 책표지만을 보았을 때는 예쁜 이야기들처럼 생각되지만, 막상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밝은 분위기보다는 죽음과 연관된 우울함이 담겨 있었다.
이번에 읽게 된 '그녀에 대하여'는 첫 장면부터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쌍둥이 자매의 각각의 아이들인 '유미코'와 '쇼이치'.
이종사촌간의 마지막 만남으로 화자인 '유미코'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의 정원에서의 소꼽장난. 그런데, 유미코는 이것이 서로의 인생을 전혀 다른 삶으로 이끌어갈 것임을 감지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과연, 7~8살 정도의 아이가 그런 느낌을 느낄 수 있을까?
또한, 아이들의 엄마인 쌍둥이 자매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와 이모는 종교 비슷한 특수단체 교주의 딸들이었기에 않은 환경에서 마술학교를 다니고 주술을 불러오고....
아니, 동화 속의 이야기도 아닌, 판타지 소설도 아닌....
이런 설정이?

[책의 내용 간추리기]
화자의 엄마와 이모는 유미코의 추억 속에서도 쌍둥이이지만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방향의 삶을 살아 가는 것이다.
유미코의 기억 속의 엄마는 많은 것에 집착하고 어떤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는 일까지 주술의 힘을 빌려서 승승장구하던 사업체를 가진 욕망의 인물로.
그리고 이모는 어떤 것에 집착하기 보다는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평범한 생활의 끝은 자신의 엄마처럼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는 일을 하지도 않고 조용히 살다가 평범하게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유미코의 삶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엄마가 저지른 살인의 추억이다.
어느날, 엄마는 자신의 집에서 강령회를 열다가 아버지를 살해하게 되는 것이고, 그 소리를 들고도 불안함에 떨면서 자신의 일에 열중했던 그 순간의 기억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이종사촌 '쇼이치'
이모가 죽기 전에 유미코를 '엄마의 저주에서 풀어주고 싶다'는 유언을  따라 그들은 오래전 기억을 쫒아 사건이후에 엄마가 치료를 받던 클리닉, 그녀의 옛 집을
찾아다닌다. 쇼이치와 자신의 과거를 찾아 나선 여행에서 그녀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엄마와 이모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큰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그렇다. 내가 이상하게 생각했던 이 소설의 내용은
다리오 아르젠토의 영화 '트라우마'를 모티브로 쓴 판타지 소설이었던 것이다.
판타지 소설?
난, 이 책을 유미코가 자신의 추억 속의 트라우마를 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이거나,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종사촌'간의 사랑이야기쯤으로 간단하게 생각했기에.... 이 책을 읽는 중간 중간 석연치 않은 장면들에 맞닿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책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그런 의구심은 커졌는데, 반전의 내용에 그 모든 것들은 풀릴 수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런 문장들이 있었던 것인가를...
떠나온 곳에서의 일은 생각하면 언제나 그리움으로 빛난다. (p47)

그리고 항상, 유미코는 쇼이치의 생활을 부러워했다.
자신은 부초처럼 떠다니면서 살았지만, 쇼이치는 제 발로 설 수 있도록 이모는 키웠다고 회상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의 끝부분의 반전이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준다.
쇼이치와의 여행 도중, 유미코는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과 함께 이 모든 것이 쇼이치의 꿈 속의 이야기가 아닐까 의심해 본다.
왜 유미코는 쇼이치의 꿈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며,
왜 이모는 그토록 도움을 주고 싶어하던 유미코를 그동안 나몰라라 하면서 죽었으며, 왜 유언으로 아들에게 유미코를 그녀의 엄마의 주저로부터 풀어주라고 이야기했을까.
바로 유미코는 엄마가 강령회에서 살인을 저지를 때에 엄마에 의해서 살해당한 것이다. 1층에서 살인을 저지른 엄마는 저벅 저벅 발소리를 내면서 2층의 유미코의 방으로 들어와 딸을 살해한 것이다.
지금까지 유미코가 기억하는 살인사건 후의 이야기는 모두 그녀가 황천을 떠돌면서 보고 들은 것들이다.
어느 순간, 죽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황망하게 죽은 영혼들. 그들은 유미코처럼 구천을 떠돌면서 부초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유미코의 넋을 이모는 보듬어 주고 싶었지만, 살아있기에 해 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모는 죽으면서 아들의 꿈을 통해서 그녀에게 안식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타인도 아닌 엄마 손에 살해당한 유미코의 넋. 황망하게 죽어버린 그 넋을 위로해주고 안식을 찾을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은 이모의 마음과 쇼이치의 마음.
이제 유미코는 모든 진실을 확인하고 그녀의 영원한 안식을 찾았을 것이다.
역시, '요시모토 바나나'는 '키친'이후에 줄곧 소설 속에 담아 왔던 죽음에 대한 상실과 그로 인한 상처의 치유과정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번에는 황천을 떠도는 황망한 죽음에 대한 치유까지로 그 폭을 넓혀 간 것이다.
이 소설의 내용은 이렇게 추리소설의 구성인 마지막 부분의 기막힌 반전의 묘미를 제대로 살린 그 이전의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과는 다른 기법의 판타지 소설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