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게 안부를 묻지 마라 - 박해선 詩를 담은 에세이
박해선 지음 / 헤르메스미디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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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에게 안부를 묻지 마라'는 연회색에 파스텔톤의 연한 핑크빛이 배색을 이루는 그런 느낌의 책이다.


이 한 권의 책에서 우린 시(詩)도 만날 수 있고, 에세이도 만날 수 있고, 또한 내 마음 속에 잔잔하게 보석처럼 박히는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책 속의 시들을 읽으면서, 글들을 접하면서, 사진을 보면서 책장을 넘기기가 너무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순간 읽어치우기에는 너무도 절절한 그리움과 아름다움이 들어있기에.
그런데도, 책장을 넘기는 손길은 이어지고, 늦은 밤까지 홀로 책상에 앉아 책 속에 푹~~~ 빠졌다. 그리고 다음날 평소에 즐겨 찾는 동네 나즈막한 뒷 산을 찾았다.
지난 여름 곤파스로 심한 상처를 입은 산. 여기 저기 아직도 태풍에 쓰러진 커다란 나무들의 잔해는 그대로 있었지만, 하늘은 어찌도 그리 아름다운지....
하얀 구름들과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연한 하늘색의 하늘과 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의 잔가지는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듯하다.
작년엔 그 모습이 너무도 좋아서 작은 디카로 찍어댔었는데....
이젠 연한 하늘과 하얀 구름, 잔가지의 나무들을 그냥 그렇게 눈에 담아 두는 것이 더 아름다워진 것이다.

 

'그리움에게 안부를 묻지 마라'를 꼭 닮은 풍경에 그저 그렇게 취해서 하루를 보낸다.
감성적인 시와 사진이 나의 가슴에 알알이 들어와 작은 보석처럼 박힐 수 있었던 이 책은 두고 두고 곁에 두고 싶은 그런 책이다.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타' '이문세 쇼', '열린 음악회','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이렇게 나열한 TV 프로들.
TV를 별로 접하지 않는 나에게도 작은 울림으로 다가오던 감성적인 프로그램들이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한 PD 가 쓴 책이기에 이렇게 잔잔하면서도 마음에 와닿는 가 보다. 더군다나 등단한 시인이라니.....

 
 

힘겨운 삶 속에서... 애닯은 이별 후에 시는 더 무르익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책의 저자인 박해선은 자의가 아닌 어떤 이유에선가 한동안 자신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나서 생활을 하게 되었는가보다.
그 일 년여 동안에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쁜 일상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한, 아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이 살아오다가 어느날 여유로움이 생기게 되자, 그의 눈에는 길섶의 야생화와 풀 한 포기가 들어오게 되지는 않았을까. 하얀 눈이 내린 설원에서 푸른 하늘과 맞닿은 겨울나무가 그의 눈에 들어 오게 된 것은 아닐까....

 
 

그는


"헤매는 자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길을 잃어본 적 있나요.
들판에 나갔다가 해 저물어
천지분간 못할 어둠 속에 있어본 적 있나요.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적 있나요.
우리는 길을 잃어버린 줄 알지만
그 또한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아나요.
결코 잃어버릴 길은 없으며
길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며
헤매는 것은 길을 찾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길임을 알아가는 과정이지요
지금 길을 잃어버렸다 생각하나요
당신은 지금 당신이 가려던 길 위에 서 있는 셈인데요.
헤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벌판이 그대 너른 길일뿐이에요.

이렇게 이 책의 첫 시를 읊어 주는 것이다.


거미줄에 걸린 물방울이 은구슬처럼 보이는 것은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모든 일상들이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 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는 작은 희망을, 사랑을, 인생을 노래한다.
작은 가쁨,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마음의 그리움, 추억 속의 한 장면이었던 이야기들을 펼쳐 보여준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내에서부터, 부모님, 아들,딸, 친구, 친지들에 대한 마음도 전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역설적으로 '그리움에게 안부를 묻지마라'고 이야기한다.
눈으로 보는 시, 그리고 낭송하는 시.
그것이 가지는 느낌은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시를 읊는다'고 표현했는가 보다.

감성적이고 감미로운 목소리라고 하면 자타가 공인하는 이문세, 김장훈, 이소라, 윤도현, 유희열, 성시경, 호란 등의 시 낭송 CD는 김형석의 음악 편집과 함께 내 마음을 또 한 번 잔잔하게 울려준다.

잔잔한 울림이 가슴 속 깊이 퍼지는 시와 에세이, 그리고 사진을 통해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면 그 누구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그런 아름다움이 깃든 책이다.
연말이 되면 그 누구나 한 해를 돌아보게 되는데, 인생의 어디쯤에선가 내 자신을 되돌아 보고 싶다면, 그런 이들에게도 아름답게 다가올 그런 책인 것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난 지금 행복해. 많은 것을 잃은 줄 알았는데 잃는 게 없어. 잃었다면 그냥 작은 걸 잃었고 더 많은 것을 얻었다 싶어. 잃은 것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얻었으니까. 꿈에도 생각 못할 내 인생의 두번 째 기회가 낯선 얼굴로 날 기다리고 있잖아. 이 산 속에서 내 인생의 남은 시간들을 실체적으로 따져보고 느끼게 된거니까. 시간이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하루 날 빛을 음미해라...  허투루 흘려보낼 시간들이 아니지, 더욱이 지겨워하며 흘려버릴 허드렛 시간들은 더욱 아니고, 결국 인간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이잖아. 태어남과 동시에 말이야. (...)
남과의 관계 속에서의 나가 아니라 진짜 나의 시간, 나의 가족, 나의 우주...., 아! 털어버리니 얼마나 홀가분한지. 둥둥 떠 있는 삶을 버리니 얼마나 개운한지, 지루한 하루보다 눈을 반짝이며 지낸 한 시간이 더 값질 거라.
나는 이 산속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깨친 셈이야. (P266)


항상 곁에 두고 조금씩 조금씩 아껴가면 읽고 싶은 '그리움에게 안부를 묻지마라.'
독자들의 마음에 작은 은구슬이 되어 알알이 박힐 것 같은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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