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의 공부 벌레들 - 조선 최고 두뇌들의 성균관 생활기
이한 지음 / 수막새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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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교육기관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는 조선시대에 미래의 인재를 키워내기 위한 국립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성균관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서 기숙하면서 공부도 하고, 생활도 함께 하던 곳인 것이다.
이곳에는 거의 200명 가량의 유생들이 있었다고 하니, 성균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 봄직도 하다.
또한, 정은궐의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통해서 잘금 4인방의 이야기가 인기를 끌면서 이 소설 속의 무대가 성균관이기에 과연 유생들이 저런 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였기에 조선 시대의 성균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도 많아 졌다는 생각이 든다.
반듯하기만 할 것같은 유생들의 생활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성균관의 공부벌레들'을 통해서 소개된다.

그런데, 의외로 그들은 지금의 학생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학생들인 것이다.
때론, 대리출석도 하고, 땡땡이도 치고, 스승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고, 스승들은 촌지를 받기도 하고...
정조때에 일어난 사건으로는 통독제 시험 후에 여기 저기에서 커닝페이퍼가 발견되고, 성적이 좋지 않았던 유생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가 하면, 성적이 좋았던 유생은 그 반대의 경우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라고 하면 유교사상이 생활의 기반이 되던 시대인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의아심이 생기는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된다.
유생들에게 있어서 성균관의 생활은 수업이나 시험일정이 빡빡하고, 생활도 불편하였으며, 여기에서도 빈부의 차이에 따라서 식사와 생활이 달라질 수도 있었단다.
성균관의 식사와 생활이 불편하여 돈이 있는 집의 자제들은 근처에서 하숙도 하였다고 하니, 우리들이 생각하는 개념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책 속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느끼게 된다.
  조선의 과거제도는 성균관 유생들의 빛나는 목표이자, 조선시대 교육제도의 꽃이기도 하고, 유생들에게는 가시밭 지옥길과 같은 길이었다고 하는데, 이런 과거 시험을 볼 때도 우리들의 생각처럼 정숙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단다.
여기에서도 컨닝과 비리가 있었으며, 시험을 보는 중간에 술도 마실 수 있었다니, 그야말로 오합지졸의 일면도 있었는가보다.
성균관의 역사는 단순히 한 나라의 교육기관의 역사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교육제도라는 것은 일종의 그 나라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한 나라의 교육제도나 교육기관에 대한 것을 안다는 것은 그 나라를 알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성균관은 때론 패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고,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의 한 가운데에 있기도 하였기에, 나중에는 성균관의 이미지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균관이 해야 할 일을 지방 향교나 서원이 대신하였으니, 지금으로 말하자면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이 교육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했는데, 공교육이 무너졌으니, 어떻게 보면 현재의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생각이 든다.  
'성균관의 공부벌레들'에는 재미있고, 우리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이 소개되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서 현재의 교육에 대한 생각을 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역사를 알면 그 속에서 지금의 상황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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