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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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은 근래에 보기 드물게 수작으로 인정받고 있는 역사소설이라는 평도 받고 있다. 얼마전 '덕혜옹주'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것과 함께 생각한다면 아마도 질곡의 시대를 살아왔던 인물들중에서 가장 고귀한 왕손으로 태어났지만, 다른 나라의 침략에 의해 볼모로 잡혀가서 가장 비루하고 고독한 생을 살아야 했기때문은 아닐까 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만을 가지기에는 '소현'의 내용들은 너무 잘 다듬어지고, 문장들은 소현의 내면의 세계를 들어다 보듯이 섬세한 문장으로, 그리고 세밀한 심리묘사로 쓰여졌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볼모가 된 왕세자 '소현'의 모습처럼 살기위해서(목숨을 부지하기 위함이 아닌 조선이 당한 수모를 갚아줄 날을 위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말 한마디도 아끼면서 입으로 내뺃기 보다는 눈으로 말하듯이 독자들의 마음에 조용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얼마전부터 역사소설들이 역사적 사실에서 너무 동떨어진 상상력을 많이 가미한 내용들의 작품들이어서, 읽으면서도 역사속의 인물들에 대한 해석이 혼돈스러웠던 독자들에게도 이 작품은 친근감있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소현'이라는 인물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과감하거나 파격적인 상상력을 가미하지 않고, '소현'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심리적인 면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기에 읽기가 수월하면서도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아파옴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처음 접해본, 아니면, 수상작품집에서 잠깐 읽고 지나간 작가일지는 몰라도. 작가의 작품세계를 잘 알지 못하는 작가였다. 그런데, 의외로 탄탄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인 것이다. 1983년에 단편 '상실의 계절'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하여, 그후에 한국일보상(먼 길, 1995), 현대문학상 (개교기념일,2000), 이상문학상 (바다와 나비, 2003), 이수문학상 (감옥의 뜰, 2005), 대산문학상(그여자의 자서전,2006)등의 작품을 펴낸 것이다.


'소현'을 읽으면서도 느낀 점이지만 그녀의 문장은 군더더기가 붙지않은 깔끔한 문장이었고, 복잡한 관계의 복선도 깔리지 않은, 인물의 심리적 분석과 묘사가 두드러진 작품이었다. 또 문장의 특징이라면 열거법, 특히 긍정과 부정의 대비를 대구법을 사용하여 표현했기에 독자들이 문장을 읽을 때 등장인물의 심리적 상황을 새로운 감각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편에 서도 죽고, 어느 편에 서지 않아도 죽게 될터였다. (p66)
소망하지 않으나, 소망할 수 밖에 없게 된 말. (p67)
기쁨이 떨리지 않고 슬픔으로 경련했다. (p 70)
여인은 세자에게 목을 걸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세자의 목을 갖겠다는 것인가 (p75)
보이는 것이 없으니, 본 것이 없사옵니다. (p286)
이 작품은 처음부터 청의 황제인 '홍타이지'의 죽음으로 긴장감이 팽배해지는 사건의 발단으로 시작된다. 황제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권좌를 향한 음모와 모함과 추문으로 들끊게 될 것이며, 여기에서 누가 황제가 되느냐에 따라 피바람의 향방은 결정될 것이다. 구왕(도르곤)은 누르하치의 14남으로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누르하치의 사망과 함께 어머니가 순장되고, 왕위 계승이 그의 이복형인 '홍타이지'에게 같기에, 이번의 기회를 잡아야 하는 자이지만, 6살 조카에게 왕권을 넘기고 섭정왕이 된다.
누구나 황제가 될 수 있으나 누구나 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황제가 됙 전에도 황제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피바람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p65)
 섭정왕 = 구왕 = 도르곤. 그가 누구이던가?  '소현'을 볼모로 잡아온 자가 아니던가.... 승자와 패자.
정축년, 호란에서 패패하여 볼모가 된 '소현'이 조선을 떠나 적의 땅으로 떠나올 때에 임금은 도성밖 들판까지 쫒아 나온다. 나라를 빼앗기고, 자존을 빼앗기고, 자식까지 빼앗긴 것이다. 어디 '소현'뿐인가, '봉림'도. 종친인 '흔'도. 노비인 '막금'도. 어찌 그뿐인가. 헐벗고 굶주린 조선의 백성들이 노예로.... 채찍길을 당하며, 능욕을 당하며, 칼에 목이 날라가며.....
8년이란 긴 세월을 관소에 머물면서.... 적의 전쟁에 따라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굴욕을 견디었던가....
그런데, 조선의 임금인 인조는 차츰 아들인 소현을 경계한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에 의해서 왕이 된 인조의 명분이 명을 받들지 않는 광해를 제거했기에 소현이 청국에서 아무탈없이 살아가는 것은 왕에게는 그의 왕위계승의 명분을 살릴 수 없기에....
멸해가는 명과 세력을 넓혀가는 청 사이에서 조선의 운명은, 그리고 볼모인 '소현'의 운명은 그야말로 한치앞도 가늠할 수 없는 운명의 순간들인 것은 아닐까.
그 소설에서 '소현'은 지극히 말을 아낀다. 홀로 말없이 고독과 맞선다. 그가 바라는 세상, 그 세상을 위해서. '소현'이 잠시 환국하고 돌아온 후에 자신을 대신하여 볼모가 되었던 자신의 아들인 원손과 함께 성밖을 돌다가 조선인들을 보고 느낀 감정을 쓴 대목은 읽으면서도 가슴이 아픈 내용들이다.
조선인 포로들이 모여 농사지으며 살고 있는 곳에 이르러서야 세자가 말을 멈추었다. 노예시장에서 개나 돼지처럼 팔려나가던 조선인들을 세자가 그곳에 모아 농사짓게 만들었다. 제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자들이 그곳에서 대신 제 땅의 꿈을 키웠다. (...) 그곳이 세자의 작은 나라였다. 작고도 작은 나라였다. 그러나 세자가 원손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그 작은 나라의 비루함이 아니었다. 비루함의 너머에 있는 것. 혹은 그 중심에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언젠가는 이루어져야만 할 꿈이었다. '내가 저들의 세자이다.' (...) 그리고 네가 저들의 원손이다. (p208)
'내가 저들의 세자이다. ' 가슴이 뭉클해진다.
'소현'이 정축년 볼모로 잡혀올 당시에 그는 꿈꾸었다. 언젠가는 적의 볼모에서 풀려나리라.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가리라, 그리고, 꼭 되갚아주리라. 자신의 생이 아니라면, 원손의 생에서. 그것도 아니라면 조선이 살아 남아 있는 동안에....
8년전, 세자를 호송하는 적장이었던 도르곤.... (...) 세자는 결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긴 자와 진 자의 자리가 다르다는 것을. 완전히 굴복해보지 않은 자는 다 알지 못하는 것이다. 진 자의 자리는 바닥이 아니라 바닥 아래보다 더 낮은 곳이었다. 더는 내려갈 곳이 없으므로 그 자리가 바로 죽음이었다. 하나의 생이 그때로 끝났고, 또 하나의 생이 그때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벌판에 세워져 있던 또 하나의 막차 안에서 패국의 세자는 언젠가 그들의 자리가 바뀌게 될 날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자신의 생이 다하는 날까지 기다려도 안 된다면 그 다음 생에, 또 그 다음 생이 있을 것이다. 조선이 살아남는다면 결국 그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세자의 염원이었다. (p313~314)

그러나 내가 조선의 세자, 임금의 아들이다. 미천함과 부족함을 논할 자리에 있지 않으나, 나의 유일함을 세상에 떨칠 날이 있으리라. 그러한 날이 오리라. (p328)
'소현'은 조선의 세자요, 임금의 아들이기에...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9년 여만에 조선에 돌아오지만, 돌아온지 2달만에 죽는다. 사망 원인은 학질이었지만, 여러 역사책을 자세히 살펴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된다. 원손를 비롯한 그의 자식들도 역시 ''소현' 사후 2년만에 제주에 귀양을 가고 2아들은 굶어죽는다.
병자호란이후의 조선의 임금인 인조의 의심과 아들을 빼앗긴, 그리고 나중엔 아비가 아들을 찾길 원하지 않은 그런 상황에서의 고독감.
그리고, 9년이란 세월동안에 청의 심양에서 조선으로 돌아가 그가 당한 수모를, 조선의 백성이 당한 굴욕을 언젠가는 갚아주기 위해서 몸을 한껏 낮추며 살아갔던 '소현'의 고독감
그것이 작가의 깔끔하고 섬세한 문체와 함께 독자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강물이 거슬러 흘러 그의 발목을 적시게 되더라도 다만 그에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가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세자와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던 기억들.... 그때 고요히 흘러 넘치던 세자의 고독을 .... 드러낼 수 없어 더욱 깊은 외로움이 자신의 몸으로 전해지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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