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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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80년대, 정치적,사회적으로 암울했던 시절. 하고 싶은 말은 있으나 하지 못하고, 쓰고 싶은 글은 있으나 마음대로 쓸 수 없던 시절에 대중들의 사랑을 한껏 받았던 작가들이 있다.  박범신, 한수산, 최인호. 김홍신.... 그분들의 소설은 출간되기가 무섭게 인기리에 읽혀졌다. 젊은 날, 나의 독서의 한부분을 차지했던 책들이기에 지금도 그분들의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면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연애소설의 대가이기도 했던 '은교'의 작가 '박범신'님은 그당시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등으로 소설을 통해 나와의 첫 대면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후, 1993년 작가는 돌연 절필을 선언했다. 그후 '나마스떼'를 통해 네팔 이주노동자 '카밀'과 '신우'의 사랑이야기를 읽게 되었는데, 가보지도 않은 '마르파'마을에 대한 묘사가 너무도 아름다워서 하얀꽃이 핀 그 마을이 한참동안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아마도 '은교'는 연애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한 작가가 17년만에 쓴 본격적인 연애소설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게 되면 '은교'는 단순히 연애소설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은교'를 쓰게 된 이야기부터가 흥미롭다. 작가는 자신의 개인블로그에 '살인 당나귀'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개인블로그의 글이니 쓰고 싶으면 쓰고, 올리는 글의 분량에도 제한을 느끼지 않으면서 글이 써질때마다 밤에만 썼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소설은 탄력을 받아서 1달 반만에 완성을 하게 된다. 어느새 소설의 제목도 '은교'로 바뀌어서..... 종이에 펜으로 글을 쓰기를 고집하던 작가는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그렇게 완성된 글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촐라체' '고산자' '은교'는 '갈망의 3부작'이라고 말한다.
갈망(渴望).......  사전적 의미는 '간절히 바람'
 
 
모두 읽어본 작품이기에 작가의 말을 들어보니, 그 작품들의 의미를 알 것같다.
나는 '촐라체'를 통해 설산을 오르는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의 한계를 느꼈지만, '고산자'에서는 약간 실망스러움을 가졌었던 기억이 있다. 이것은 나자신의 선입견에서 시작된 오류이기는 하지만.... '김정호'라는 인물에 친근감을 가질 수 있는 지리학을 전공했고 역사소설을 좋아하기에 제목만으로 '고산자'의 일대기쯤을 예측했던 것이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읽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으니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촐라체' '고산자'를 거쳐 '은교'에 이르러서 작가는 현실로 돌아와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감히 탐험하고 기록했(p406)노라고 말한다.
'은교'는 연애소설이라는 범주에서 생각한다면, 명망있는 70을 바라보는 노시인 '이적요' 와 17살 푸르른 젊음의 '은교' 의 사랑, 그리고 이적요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서지우'라는 베스트셀러 작가와 '은교'의 사랑....
그리고, 이 두 사랑을 둘러싼 끊임없는 서로의 탐색(이적요와 서지우)과 불신, 배신,그리고 마음속 깊숙히 서로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은교로 인하여 서로를 잃어버리는 것이 두렵고 힘겨운 이적요와 서지우의 삶의 종말, 즉,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변호사에게 전달된 유서와 시인의 노트, 그리고 은교에게 맡겨진 지우의 노트....
노트속에 적혀진 서로를 의식하는 행동들과 글들은 씨줄과 날줄처럼, 아니 커다랗지만 정교하지 않아서 금방이라도 맞출 수 있는 퍼즐처럼 맞추어진다. 얼핏 결말이 내려지고, 과정이 보이는 듯하지만, 정교하지 못한 퍼즐의 몇 조각은 의외의 변수처럼, 뜻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지우와 이적요의 질투와 불신이 사실은 서로를 잃는 것이 서로의 파멸을 가져오는 것이며, 그 누구도 먼저 그 사실을 알릴 수 없음을..... 그리고, 그들이 두려워 한 것은 서로를 잃게 되는 것임음.....
이적요가 느끼는 서지우에 대한 경계와 질투심은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지우에게 뒤질 수 없는 것이며, 은교를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을..... 육체적 노화로 인하여 은교를 탐할 수는 없지만. '멍청한 놈'인 서지우에게 질 수는 없다는 마음.
그리고, 나이에 상관없이 은교에 대한 마음은 갈망이며, 사랑임을.....
은교를 처음 본 순간 느꼈던 그 갈망은 은교의 손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명백한 건 모든 게 그날 네 손들에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p95)
죽어가던 이적요 시인의 본능을  일깨워 광포한 파멸의 문 안에 들게 하는데 단초가 됐던 그녀의 흰 손가락 (p217)
그렇다면 서지우가 존경하는 스승 이적요에 대해 가지게 되는 감정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그것은 결코 '은교'에게서 부터 온 것은 아니다. '심장'작업시부터 이적요의 경멸에 찬 표정과 '멍청한 놈'이란 말 한마디에서부터.... 서지우에게 이것은 '지옥에 가더라도 잊을 수 없는 표현.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 말 한마디. 그래서 서지우는 의도적으로 이적요의 '은교를 향한 에로스적인 욕망'에 불을 붙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명망있는 시인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젊은 자신의 욕망을 따라오지 못할 것을 알기에....
두 사람이 남긴 노트의 내용을 보게 되면, 그들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이다. 노시인은 육체적 한계에 대한 갈망을.....  서지우는 작품활동에 다가갈 수 없는 한계에 대한 갈망에.....
이런 이야기들이 심리적 분석을 하듯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마치 한 편의 '심리소설'처럼 잘 쓰여져 있다. 더군다나 '박범신'작가의 문장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느꼈던 것처럼 신예작가들은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롤 표현들이 적확하며, 문장이 감수성이 돋보이고, 탐미적이고 섬세하고 예리하다. 수식어를 많이 쓰고 있음에도 쓸데없이 붙여진듯한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문장들이다. 문학에 일생을 바친 작가만이 쓸 수 있는  무르익은 글들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문장들에 적확한 시(詩)는 소설속의 시를 읽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
흔히, 시집을 읽게 되면 한 편의 시를 읽은 후에 그 시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다른 한 편의 시로 옮겨가게 되는데, 소설속의 시는 소설의 느낌과 함께 시의 여운이 오래도록  소설속의 문장에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시들이 그 상황이나 심리묘사에 너무도 딱 맞아 떨어지는 시들이기에 그 느낌이 더 강하게 남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이처럼 간단하게 읽히지 않는다. 그 속에 시인과 대리(?)작가의 자신의 작가 생활에 대한 강한 자기 부정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가 인용되는데, 이 시는 '공선옥'의 동명의 소설에서도 그 주제와 시가 인용되기도 했다. 바로 이 시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은교가 푸르른 젊음을 가져서 제일 예쁜 열일곱 살. 노시인의 열일곱 살은?
내가 제일 예뻤을 때/ 나의 머리는 텅 비고/ 나의 마음은 무디었고/ 손발만이 밤 색으로 빛났다. / 내가 제일 예뻣을 때/ 나의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 그런 엉터리같은 일이 어디 있느냐고/ 블라우스 팔을 걷어올리고 비굴한 거리로 쏘다녔다 (이바라기 노리코)
'나의 머리는 텅비고, (...)나의 마음은 무디었고 (...)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던....' (위의 詩 중에서 필요한 부분 축약)
흥청망청 즐기는 젊은이를 향해서도 소리친다.
너희가 지금 누리는 달콤한 인생을 누가 주었느냐고.어디로 부터 온 것이냐고, 마음대로 너희들만 누릴 권리는..... 없다고(...) 저들의 누가 늙은 애비, 늙은 시인의 과거를 알겠는가 (p135)
이적요는 거친 시대를 거쳐 왔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그의 시는 우주적 고요에 닿아있고, 세속적 욕망을 단호히 절제하고 있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만을 쓰는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노시인의 전략에 의한 것이다. 철저하게 계획된 전략..... 그것이 오늘날의 노시인을 명망있는 시인의 자리에 올려 놓은 것이다.
내가 세상이라고, 시대라고, 역사라고 불렀던 것이 사실은 직관의 감옥에 불과했다는 것을, 시의 감옥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시는 대부분 가짜였다. (p394)
서지우는 이적요가 써준 글로 베스트셀러작가가 되지만, 이적요의 작품이 없다면 작가로서의 활동을 할 수 없다. 작품을 쓸 능력이 되지 않기에... 이적요의 껍데기속의 한 부분이라고나 할까....
처음엔 순수한 스승과 제자로 만났지만, 한없이 존경하는 스승이었지만, 욕망의 눈이 어두워 자신을 살해하려는 의도를 깨달았을  때의 마음, 비록 비극적인 관계로 끝날 운명이지만 그 두 남자는 서로를 깊이 사랑했었다.
죽음의 새벽, 시인의 고통에 찬 눈길, '여보게' 불러 세우는 한 마디에 죽음을 예견했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스승으로 부터 완전히 버림받는 서지우의 마음은 '빗물 흐르는 허공에서 짧게 만났다. (p374)
노시인이 마지막 순간에 깨닫게 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 마음속 영원한 젊은 신부'인 은교를 사랑했다는 것.
그리고 시인은 자신의 욕망이 만들어 놓았던 허울을 보게 되는 것이다. 또, 은교를 만난 후에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자신의 인생과 작품활동을 철저한  전략에 의해서, 독자들의 구미에 맞추어서 살아오고, 시를 썼기에.  그 자신의 인생은 '가짜 인생'이고, 그는 가짜 시인' 이었다. 그리고 그의 시는 모두 '가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이 진정한 깨달음이었다면 좋으련만....

발칙한 노시인은 자신의 인생에서 용의 주도하게 설계되어 얻어진 '가짜'위에 또다른 '가짜'..... '죽음뒤에 살아 남는 자'가 되기 위해 죽음후의 전략까지 꾸며 놓고 죽었던 것이다.
갈망.....
그 끝은 어디일까.....
'친구여, 모든 해답은 나부끼는 바람 속에 있다. ' (p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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