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혹의 나이에 등단하여, 등단할 때의 나이만큼인 40년이 흐른 이 시점에도 여전히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는 작가 '박완서'
박완서의 작품은 평이한 글들인 것같지만, 그 글속에는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혜안이 있어서 즐겨 읽곤 했다. 그런데, 재작년인가 그의 에세이를 읽던 중에 작가의 까탈스러운 성격과 아집이 그대로 책 전체에 흐르는 글들을 보면서 참 언짢았던 적이 있다. 그 책은 여행을 다녀와서 쓴 책이었는데, 아마도 원하지 않은 여행길이었었는지 불편했던 심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의 나의 느낌은 '아 ! 이 분도 이젠 할머니들의 고집스러움이 묻어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의 출간 소식에도 선뜻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를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내 손에는 박완서의 신간 서적이 들려 있으니, 은연중에 나는 그의 글에 중독이 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편적인 층의 독자들을 가진 박완서의 글에서 언제나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는 6.25 전쟁일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교육열....
작품마다 등장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하다. 작가도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일까?

6.25의 경험이 없었으면 내가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나도 느끼고 남들도 그렇게 알아줄 정도로 나는 전쟁 경험을 줄기차게 울궈 먹었고, 앞으로도 할 말이 얼마든지 더 남아 있는 것처럼 느끼곤한다. (p24)
역시나, 이 책에서도 60년이나 지난 그 시절의 이야기가 날짜별로 늘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함을 적고 있다.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고 떠오른 단상이 '추위'였고, 그것은 작가의 6.25 전쟁때의 추위, 굶주림, 불안, 분노 였다고 하니, 그 체험이 얼마나 힘겹고 뼈저린 아픔이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독자들에겐 똑같은 문장이을 그대로 이 책, 저 책에서  또다시 만난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 중 나쁜 기억도 마땅히 썩어서 소멸돼야하고, 차마 잊기 아까운 좋은 기억이라해도 섞어서 꽃 같은 것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을 (p65)
'박완서'의 에세이들이 일상의 편린들이었다면,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전의 에세이들보다는 영화,책 이야기가 더 많이 실려 있는 것이다.
영화 'Away From Her'의 착한 남편의 이기적인 사랑에 멋진 복수를 하는 아내의 치매를 황홀한 치매라고 표현하면서도 치매의 실체는 결코 그렇게 고상하고 황홀하지 못한 현실임을 이야기해주니, 그 영화에 관심이 간다.
또한, '레이몬드 카버'의 '대성당'의 이야기른 외아들의 죽음에 대한 끔찍하고 고통스러움을 약간의 해피엔딩으로 끝맺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책 역시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구성이 3부로 되어 있는데, 그중의 2부 '책들의 오솔길'은 그 내용이 참 좋았다. 모 일간지에 실린 '친절한 책읽기'란 코너의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인데, 책을 읽다가 잠깐 오솔길로 새버린 이야기들이다. 서평도 아니고, 독후감도 아닌, 책을 읽던 도중 느낀 단상들과 독서중에 떠오른 이야기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부분이 좋았던 이유는 책이야기이기에, 내가 읽었던 책들은 작가가 그 책을 읽으면서 오솔길로 빠져나가는 이야기들이 재미있으면서도, 내가 그 책을 읽었기에 느낄 수 있는 공감들이 있었다. 미처 못 읽은 책은 그 책을 언젠가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으니....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 아닐까.... '놓친 열차가 아름답듯이~~' 그리고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아쉬움이 남듯이~~~
박완서 작가도 이처럼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40년의 세월동안 꾸준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노(老)작가의 요즘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면 한 번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작가가 그토록 징그럽게 느끼는 6.25 전쟁, 그것 역시 그녀가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평생의 업보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