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 선사 삼국 발해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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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이 쓴 한국 미술사에 관한 책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신뢰감이 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저자는 한국 유적이나 미술사에 관해서는 탄탄하고 깊으면서도 넓은 지식을 갖추고 있으며, 이 분야의 공부를 하지 않은 대중들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필체로 쓰기 때문이다.
그의 저서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권은 아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에 학교에서 경주 등지의 유적지를 다녀와서 학교 수행평가로  내준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서 함께 꼼꼼하게 읽었던 책이다. 그당시의 평가문항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서 작성해야 할 문항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교사들도 교과서외의 유적지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셨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번에 출간한 '유홍준의 한국 미술사 강의1'은 선사시대에서 시작하여 삼국, 발해까지의 한국 미술사를 전반적으로 어우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 3년안에 2권의 책이 더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은 한국 미술사를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던 중에 학생들이 서양 미술사에 관한 책들은 많이 출간되어 있으나, 한국 미술사에 관한 책이 없음을 하소연하는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한국 미술사 강의를 위해서 작성하던 글들을 차곡차곡 묶어서 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자신의 원고를 보내주고, 잘못 된 내용이나, 새로운 학설 등을 빨간 볼펜, 파랑 볼펜 등으로 교정받기도 하고 삽입시키기도 한 글들을 토대로 다시 교정을 거듭한 결과라고 하니,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저자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앞 부분에 '책을 펴내며'를 통해

교양과 상식으로서 한국 미술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일반인과 미술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입문설 씌여졌다. (p4)
라고 말하면서, 소파에 기대어 편안히 독서할 수 있는 한국 미술사 라는 말을 덧붙인다.
책의 구성은 선사시대부터 발해까지를 12 주제로 나누고, 삼국시대는 각국의 고분미술과 불교미술로 다시 나눈다. 그리고 사리함, 향로 등에 관한 내용은 별도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내가 워낙 한국의 역사적 유물, 유적지, 그리고 고미술품 등에 관심이 많아서 국립 박물관을 비롯하여, 경주, 공주 등의 박물관과 고분 등을 많이 돌아 다녔다.
때론, 혼자서도 가끔 가곤하는데, 박물관에 가게 되면 선사시대 유물 등을 너무도 자세하게 설명까지 읽어가면서 꼼꼼하게 감상하게 되지만, 고려시대 정도로 가면 관람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대충대충 보게 되고, 서예나 지도가 있는 곳에 가면 그야말로 지나가면서 슬쩍 슬쩍 보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관심이 있는 분야이기에 이 책을 읽다보니, 어느 박물관에선가는, 아니면 책 속에서 여러번 접했던 유물들이고, 유적지들이라서 새로운 느낌보다는 알고 있던 내용들을 복습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유익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고, 내용 하나, 하나에는 담길 수 있는 최대한의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이 한국 미술사이기에 첫장은 우리의 선사시대로부터 시작할 것 같지만, 인류의 역사로 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당연히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한국 미술사를 알기 위해서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인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그래도 새롭다는 생각이 든다.


 
남한의 구석기 유적지인 전곡리 유적지를 1978년 고고학을 공부한 미군이 주운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굴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시사하는 바가 클지도 모르겠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서 인구의 회자하는 말이 된 '아는만큼 보인다'는 것이 이런 경우가 아닐까 한다. 굴러 다니는 돌뎅이가 '아슈리안 주먹도끼'임을 알아 볼 수 있는 눈이 우리들에게는 없었기에 영원히 땅 속에 갇혀 있었을 지도 모른는 유적지.
이 책의 많은 내용중에 신라의 아름다운 금과 은의 유물들을 잠깐 짚어 보고 싶다.
우리가 흔히 금관이라고 하는 신라의 찬란한 금관을~~
신라의 금관은 일반적으로 왕이 머리에 쓰던 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출토된 다른 유물과 연관해 6개의 신라 금관의 시기를 고려해 보면 대개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데 이 시기의 신라왕은 눌지마립간, 자비마립간, 소지마립간. 지증왕 등 4명에 불과하다. 또 황남대총의 북분은 여자 무덤인데 금관이 출토되었고, 남분의 남자 무덤에서는 금동관이 출토되었다. 서봉총은 여자 무덤이고 금관총은 15세 전후의 아이 무덤인데 금관이 나왔다. 그래서 신라 금관은 왕이 아니라 시조와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관이 착용했던 것으로 왕관과는 별개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이금관은 머리에 쓴 관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금관이 출토된느 상황을 보면 지금 박물관에서 보는 것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피장자의 얼굴 전체를 감싸고 있고 세움 장식들이 머리 위 꼭짓점에 세모뿔 모양으로 모여 있었다. 그리고 금관의 테는 이마가 아니라 턱 아래쪽까지 내려와 있다. 매장된 형태상으로 보면 염을 한 머리를 금관으로 덮어씌운 모습이다. (...) 따라서 지금까지 발견된 6개 신라 금관은 피장자의 고귀한 신분을 드러내기 위한 특수한 장례용품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p180~182)

신라시대의 금제품들은 마치 종이를 오리듯이 정교하면서도 섬세하게 가공된 것을 알 수 있다. 금관, 금드리개(금관은 화려함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관테에 드리개를 장식으로 더하기도 했다), 관모, 관식, 금사슬 허리띠 드리개, 금귀걸이, 금팔찌, 금 목걸이 등은 화려하고 섬세함이 극에 달함을 느끼게 된다.
금동 신발의 문양의 다양하고 복잡한 구성, 역시....

 

 
또, 신비롭기까지한 신라의 '상감유리 목걸이'.
1973년 미추왕릉지구에서 출토된 것인데, 붉은 마노석과 푸른 옥으로 엮은 것으로 붉은 곡옥을 장식으로 달았는데 목걸이 드림을 연결하는 유리구슬엔느 사람얼굴과 새 그림이 들어있어 그 신비함을 더해준다. (지름 1.6센티미터의 아주 작은 구슬에 눈, 코, 입, 귀가 또렷한 사람 얼굴이 다섯, 몸체와 부리가 뚜렷한 새가 여섯마리가 들어있다고 한다.)

마지막 장인 12장의 '발해의 미술- 잃어버린 제국의 유산을 찾아서'에서는 발해도기는 많이 전해지지는 않지만 그 종류의 다양함을. 그리고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에서는 볼 수 없는 명품이면서 이질적인 문화가 융합되었음을 보여준다.
당나라의 당삼채를 본받은 삼채 도기의 모습.

 
이 책은 책속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그 내용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미술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국사에 대한 흥미로 생길 수 있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며, 일반인들에게도 우리의 문화유산을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의미있고 유익한 책은 전국민의 필독서와 같은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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