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닿지 않는 아이
권하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쇼핑 카트의 떨떨거리는 소리에 박자를 맞춰, 나는 속으로 하나둘셋을 세어가며 한 발이 지면에 닿기도 전에 다른 발을 떼어 놓는다. 발이 닿지 않는 아이. 그것이 언젠가 내가 생각했던 나 자신의 유일한 정체성이다. 집에서도, 시설에서도, 학교에서도, 거리에서도,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나는 늘 발이 닿지 않아 둥실거리며 이리 저리  떠돈다.이러다간 언젠가 저기 먼 깜장 하늘 우주 구석까지 둥실거리며 헤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 우주는 무지하게 춥다던데, 젠장. (p23)
권하은 작가는 인터넷 서점의 연재소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 소설 역시 청소년 소설이었기에, 청소년들의 심리를 참 잘 이해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 보기도 했다.
 
 '발이 닿지 않는 아이'는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 소설이다. '나'라는 1인칭 시각으로 자신의 일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가 참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이 세상에서 오로지 혼자 동떨어진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소년.
아버지는 전과자로 감옥을 드나들다가 지금은 강간미수범에 살인미수범으로 감옥에 있고, 어머니는 몇 번의 가출을 거듭하다가 집을 나갔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사는 18살 소년.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지갑을 훔치기도 하고, 선생님에게 인간이하의 모욕을 견디기도 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혼자 살아간다. 고물을 줍기도 하고, 편의점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며. 어려서는 친척집에 맡겨지기도 하고, 시설에 있기도 하면서 못 먹고, 얻어 맞으며 자랐기에 다른 아이들처럼 크지도 못하고, 외소한 외모에 하는 일은 굼뜨기만 하다.
오죽하면 자신의 주변 인물들이 '군중1', '군중2'로 여겨질까.
소년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다른 사람들은 소년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도 않는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런 소년에게 다가오는 학급 동료인 '군중1'과 '군중2'.
'군중1'은 공부 잘하는 모범생. '군중2'는 부유한 가정의 소녀.
아무도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는 소년에게 왜 그들은 다가왔을까.
그것은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그들에게도 소년 못지 않은 아픔이 있기때문이다.
세 사람이 꾸며 나가는 이야기는 밋밋하고 무미건조한 이야기처럼 다가오지만, 그들의 이야기에는 서로 같은 아픔이 있기에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느껴지는 것이다.
마음이 아파도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끼니를 거르기를 밥먹듯이 해도 배고프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엄마를 만나러 가기는 가지만,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도 알지도 못하고, 구태여 찾으려는 마음도 그리 많지 않은.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땅을 밟고 다니지만, 소년의 발은 땅에 닿지 않아서 허공에 둥둥 떠 다니는 것과 같다.
소년은 절대 발이 닿지 않아서 둥실거리며 떠도는 것과 같은.
아니, 두 발이 땅에 완전히 닿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어딘가 외롭고 아픈 그런 소년인 것이다.
너무도 암담하고 힘겨운 삶이고, 자칫하면 탈선의 길로 떨어져서 영영 올라오지 못할 것 같은 일상들이 계속되지만, 그래도, 그 길의 끝까지는 가지를 않고 되돌아오곤 한다. 소년은 자신의 일상도 힘겨운데, 고물을 줍는 할머니의 네 살배기 손자를 거두어 집으로 향하는 모습은 눈물겹도록 고맙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진심이라는 게, 항상 느껴지는 게 아니다. 그런 식으로 어느 순간 불쑥 만져지는 거라는 걸 알게 됐지. (p150)
지극한 행복의 크기를 서로 비교하지 않는 것처럼, 다 같이 불행하고 가슴이 아픈 부분은 그 크기를 비교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행복이나 불행은 너무 절실한 감정이다. (p195)


이 소설을 읽는내내 지금 우리 주변에서 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소년과 같은 청소년들이 있다는 것이 마음 아프게 느껴졌다. 
좀더 큰 마음으로 세상의 가려진 곳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마음도 함께 들었다.
'발이 닿지 않는 아이'인 소년이 세상을 향해 환하게 웃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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