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과의 하루
디아너 브룩호번 지음, 이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책의 분량이 적다고 가볍게 읽으려고 했다면 큰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쥘과의 하루'는 빠르게 읽을 수 없음을 감지하게 되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으면서 천천히 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천천히 책의 활자들이 눈으로 다가오고, 마음으로 다가오는.... 그리고 읽은 후에는 진한 여운이 남는 그런 책이다. 늦은 밤에 혼자 읽기에 좋은 책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쥘과의 하루'의 저자인 '디아너 브룩호번'은 벨기에 태생으로 수십 권의 청소년 책을 출간했다. 2001년에 '쥘과의 하루'를 발표했는데, 순식간에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현재는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디아너 부룩호번'이 청소년 소설을 많이 썼다고 해서 '쥘과의 하루'를 청소년 소설로 생각하면 그것 역시 오류이다.



이 책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인생의 단 맛, 쓴 맛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결혼한 부부들에게 마음으로 다가오는 소설인 것이다.


아내에서 있어서 남편의 존재. 남편에게 있어서의 아내의 존재. 결혼의 의미. 그리고 죽음이란 낯선 상황에서 부딪히게 되는 익숙함의 상실.
늘 그런 날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더군다나, 50여 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에게 있어서의 하루.
눈이 내리는 아침, 그래서 조금은 색다르기도 한. 그리고, 평화스러워 보이는 하루의 시작.
침대에서 남편이 끓여 놓은 커피의 향을 맡으며 깨어난 알리스.
그의 남편인 쥘은 항상 아침마다 하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커리를 올려 놓은채로 소파에 앉아있다. 그런데, 눈내리는 창밖을 바라다 보는 듯한 쥘은 아내인 알리스에게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하지도 못한 알리스를 남겨둔 채로 죽음을 맞은 것이다.
알리스는 그런 남편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 오십 년넘게 마음에 담아 두면서 혼자 삭여 왔던 이야기를 해야 했는데....

그를 증오했다는 것, 그리고 사랑했다는 것. 가끔은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것. 자유롭고 싶었다는 것. 그러나 자신이 속속들이 그에게 묶여 있음을 느꼈다는 것.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묻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들은 손을 맞잡고 서로를 용서할 것이다. 모든 것을. 늘어진 피부 속에서 쥘의 턱관절이 잠시 움직이면, 그것은 그녀가 그만해야 한다는 신호이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 앞에서만큼은 그도 감정을 자제할 것이다. 결코 화내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비난도 하지 않고 그녀가 평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기도 전에 벌써 그녀를 그리워할 것이다. (p14~15)

책 속의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알리스는 쥘에게 못다한 말이 있었다. 쥘의 성격은 어쩌면 편안한 성격은 아닌 듯하다. 아내의 말을 다소곳이 들어주는 타입도 아니고, 시끄럽게 재잘거리는 아내의 모습을 좋아하지도 않은 듯한... 어쩌면 나름대로 고집스러운 남편인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서 알리스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죽음의 순간이 지나기도 전에 그리워할 그런 남편인 것이다.
알리스는 쥘의 죽음을 접하면서 도저히 그대로 그냥 보낼 수가 없다. 자신이 쥘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의 곁에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하루'의 시간을 함께 하리라 생각한다.
쥘과 함께 했던 하루의 일과대로 그대로 하리라 생각한다.  쥘과 함께 했던 시장보기처럼 남의 눈에 뜨일 일을 할 수가 없지만, 목욕을 하고,점심식사를 준비하고 그런 일들을 그대로 하면서 그에게 못했던 말들을 한다.
아마도 그 말들을 쥘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절대로 할 수 없었던 말들. 그러나, 알리스에게는 마음 속 깊이 새겨졌던 아픈 상처들. 남편과는 마음을 나눌 수 없었던... 그래서 혼자 삭이고 삭였던 이야기들.
젊은 날의 남편의 외도. 남편은 아니라고 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증거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음을. 남편이 상대 여자인 올가에게 보낸 엽서를 쓸 때 밑에 받치고 썼던 잡지책 속에 완연하게 눌러 써져서 지금도 그 글귀들을 읽을 수 있는....
신혼 여행중에 임신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조기 유산으로 호텔의 비데위에 쏟아 부었던 핏덩어리. 내려가지도 않는 핏덩어리를 신문지에 싸서 휴지통에 버렸던 남편에 대한 기억. 남편은 어떤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알리스는 핏덩어리만을 보았지만, 태어나지 못했던 아이의 모습은 그녀에게는 왕자님으로, 공주님으로 보였었다는...
그리고, 죽은 남편의 팔을 보면서 기억하게된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
알리스에게 남편은 증오의 대상이었기도 하고, 사랑의 대상이기도 했고....
그렇게 익숙해진 모습으로 한 평생을 살아왔지만, 차마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알리스의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것이다.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의 익숙함 속에서 남편의 죽음은 그녀로서는 아직은 받아 들일 수 없는 일상인 것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알리스에게 있어서 쥘은 변함없이 반복되는 일상, 그리고 익숙함이었다.

쥘은 하루 동안 그녀에게 흘러 들었다. 잊혀서는 안 될 모든 것. 좋은 때나 나쁠 때나 그들 둘을 하나로 묶어 주었던 것들을 그녀는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저장했다. (p90)

이런 익숙함을 상실한 그녀에게 같은 건물에 사는 자폐아 '다비드'는 얼마전부터 쥘과 30분 체스를 두는 아이. 어김없이 다비드의 방문이 이어지고....
자폐아의 눈에 비친 쥘 할아버지의 죽음, 그것은 '할아버지의 껍데기'임을 다비드는 알리스에게 인식시켜 준는 것이다. 그외에도 자폐아의 입에서 나오는 단 몇 마디가 너무도 상황을 정확하게 이야기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그것이 알리스가 처한 상황이며, 그녀의 앞으로의 날들을 올바르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다비드의 불가피한 사정으로 하루밤까지 함께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낯설게만 느껴졌던 다비드가 익숙함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쥘의 죽음은 익숙한 일상과의 결별을. 그리고 다비드의 행동은 낯선 것으로부터의 익숙해짐을 가져다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꼭 '하루'의 이야기이다.
쥘이 끊이는 커피의 향이 느껴지던 아침부터...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 옆의 빈자리를 느끼고, 그녀가 해야 할 일을 (남편대신 커피를 끊이는 일부터 하루는 시작될 것이다.)알게 되는 그 순간까지의 하루의 이야기이다.
어찌보면, 사랑하는 남편이기는 하지만, 꼬박 하루를 죽은 남편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괴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도 거실에서 나는 냄새를 감지하게 되는 구절이 있으니....
그러나, 그만큼 아무런 준비없이 한 사람을 보낸다는 것은 힘겨운 일일 것이다.


이 작품과 함께 떠오르는 작품은 '미치 앨봄'의 '단 하루만더' 이다.
스포츠 선수가 아내와의 이혼과 선수로서의 명예를 모두 잃은 후에 수년 전에 죽은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가던 중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의식을 잃은 중에 꿈인가, 환생인가 죽은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어 자신의 인생을 되집어 보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결심을 하는 이야기이다.
그토록 '하루'라는 시간은 우리들에겐 그저 그런 날들 중의 하루일지 모르겠으나, 죽음이란 명제앞에서는 그 누구의 몇 날 며칠보다도 더 귀하고 귀한...
그리고, 죽음을 정리하기 위한 날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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