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지구를 돌려라
칼럼 매캔 지음, 박찬원 옮김 / 뿔(웅진)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나에게는 생소한 작가이지만, 이 책의 저자인 '칼럼 매캔'은 아일랜드태생으로 이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한다.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는 그의 5번째 작품인데, 2009년 아마존이 선정한 '최고의 책' 1위, 아마존 베스트 셀러 소설 1위를 기록한 작품이다. 처음에 이 책을 접할 당시만해도  뉴욕 쌍둥이 빌딩을 줄 하나로 건넜다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이상의 많은 내용의 글들이 실려 있었고, 그것은 다만 이 글의 소재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1970년대 여름, 뉴욕이다. 1974년 8/7일에 필리프 프티는 세계무역센터 빌딩 110층 꼭대기, 지상에서 400 미터 높이에서 두 건물 사이에 줄을 걸고 건넜는데 이 사건이 이 소설의 소재로 쓰인 것이다. 이 사건은 '20세기 예술적 범죄'라고 불리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등장하게 되니 첫 페이지부터 숨막히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냥 줄을 건너는 것도 아니고, 춤을 추듯이, 때론 깡충 뛰기도 하며, 때론 뒤로 회전도 하면서,무릎을 끓기도 하고, 눕기도 하면서....

그런데 이 이야기는 하나의 모티브가 될 뿐이고, 이 이야기와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이 이 소재와 얽혀서 여럿 소개되는 것이다. 소설에서의 날줄과 씨줄이 얽혀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느낌이 전혀 다른 듯하면서도 연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어떤 소설에서도 느껴 보지 못한 매력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의 첫 이야기인 쌍둥이 빌딩을 걷는 사람의 이야기에 이어서 나오는 아일랜드 출신 형과 아우의 이야기를 읽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서 약간의 혼란이 왔다. 뉴욕의 어두운 뒷골목의 창녀를 도와주는 코리건과 그의 형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뉴욕 펜트하우스에 사는 판사 부인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그 부인의 아침 모임이 베트남 전쟁에서 죽은 아들을 둔 여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었다. 전혀 상관 관계가 없어 보이는.... 그래서 목차를 다시 훑어보면서 이 소설이 장편소설이 아니라, 중단편의 모음집인가 하는 착각을 해보기도 했을 정도이다. 그러니, '칼럼 매캔'의 소설쓰기가 얼마나 남다른지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 이야기이지만 여럿의 이야기를 모은듯한....
쌍둥이 빌딩을 줄을 타고 건너는 사람을 땅위에서 바라보는 사람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것을 바라보던 사람들과 얽히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아일랜드로 건너와서 세상에서 소외된 창녀들의 고통을 껴안고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의 고통을 대면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코리건과 얽힌 사람들. 베트남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소더버그 부인의 고통과 그녀와 얽힌 사람들. 코리건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게 되는 창녀 재즐린과 얽힌 사람들. 그리고 그 교통사고를 일으킨 사람.
전혀 연관이 없을 듯한 사람들이 한 소설에서 각각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들의 삶이 또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을 걷는 사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때 그녀는 알았다. 그 하늘을 걷는 사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깨달음이 그녀 깊은 곳에서 세게 울리자 그녀는 몸을 떨었다. 천사도 악마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예수도, 개선된 공간도. 인간과 매체와의 만남도, 자연을 넘어서는 인간도 아니었다.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가 그 높은 곳에 있었던 것은 일종의 외로움에서였다. 그이 정신이 한 행위는,그의 몸이 한 행위는, 외로움에서였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P195~196)

모든 것에는 목적이, 신호가, 의미가 있다. 그러나 결국은 그 모든 것이 줄이 될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와 줄. 210 피트와 그 줄이 있는 거리. (P277)

미래도 과거도 없었기에 그는 자신의 줄타기에 즉각적인 자부심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는 그의 삶을 한쪽 끝에서 다른끝으로 가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 이 모든 일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름다움이었다. 줄을 걷는다는 것은 신성한 기쁨이었다. 그가 그곳 하늘에 있을 때 모든 것이 다시 쓰였다. 인간은 새로운 일을 해 낼 수 있다는 것. 평형을 유지하는 그 이상의 것을 해냈다는 것. 그는 잠시 그의 존재가 사라진 것처럼 느꼈다. 새로운 종류의 깨어남 (P208~281)
희망과 아름다움, 도전과 용기를 보여준 목숨을 건 20세기 최고의 예술 범죄라고 하는 하늘을 걸어다니는 사람의 이야기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다양한 도시인 뉴욕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맞추기 힘든 퍼즐처럼 얽혀서 한 편의 소설이 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사건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들의 삶의 모습은 소외된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고귀한 곳의이야기도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한다고 할 수 있는 뉴욕에서...
인종, 종교, 빈부의 격차, 범죄, 마약, 죽음 등의 각종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삶의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섬세한 필체와 정서적 묘사력까지 동원하여 독자들에게 들려 주고 있는 것이다.
한 사나이에 의해서 거대한 지구는 돌려지고 있음을.... 그것은 갖가지 사연을 가진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고, 화해가 될 수도 있고, 도전과 용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과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돈다. 우리는 휘청거리며 계속 나아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 시계, 선풍기, 바람, 돌고 있는 세상. (P586)
한 편의 소설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작가는 이야기한다.
문학은 우리에게 모든 삶이 이미 다 쓰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아직도 해야할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 (P592)


 
 뉴욕의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기에 맑고 밝고 깔끔한 그런 이야기는 아니지만, 색다른 많은 이야기들이 얽히는 모습들이 특색있게 느껴지면서, 마음의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돌고 도는 세상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가져다 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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