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흩어진 날들
강한나 지음 / 큰나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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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J, MC, 리포터, 기상 캐스터. 저자의 이력을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한 번도 방송을 통해서 만나본 적이 없다. 그녀가 일본 현지 기상 캐스터로 일하면서 날씨따라 도쿄 여행에세이로 내 놓았던 '동경 하늘 동경'도 읽어 보지 않았기에 이번에 처음 접해 보는 글들이다.
 
흔히 방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내놓은 책들 중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분야가 사진을 겸한  여행 에세이이기에 큰 기대없는 하지 않았으나, 의외로 그녀의 글들은 깔끔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세상을 보는 눈이 아름다웠다.
미래만 바라보며 살지 마라./ 앞으로 펼쳐질 네 앞날이 온통 무지갯빛 초원일지라도,/ 지금 이 시간이 너에게 더 귀한 선물이다. 지금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마음껏 사랑하고 또 마음껏 멈춰서라. / 더딘 속도로 간다고 네 삶이 덜 아름다운 것 아니니.... (P228)
2006년~2010년, 4 년동안의 일본에서의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재미 또한 솔솔했다. 그것은 도쿄, 오사카, 고베, 나가사키, 등등~~~~ 의 관광지나 유명한 거리를 거니는 여정이라기보다는 그곳들의 감추어지고 싶고, 숨어버리고 싶은 낡고 오래된 풍경들이 이야기의 대상이기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티가 안나는 나라는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티를 내도 상관없는 나라. 새롭고 좋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낡은 걸 사용하면서도 자기 스스로 당당한 사람들의 나라. (P91)
길 한복판의 작은 새끼 고양이, 낡고 볼품없는 자전거, 어딘가에 활짝 핀 꽃들,깨진 간판, 노숙자들, 분주히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
 
  그러나, 이런 시시한(?) 것들과는 달리 저자의 글들은 결코 가볍지 않고 저자의 마음이 담뿍 담겨 있었다. 그녀 자신의 꿈과 인생이. 그리고 떠나보낸 사랑이 있었다. 그땐 몰랐던 떠나 보낸 사랑, 떠나보낼 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름답고 그리운 사랑. 그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세상은 쉽게 변해 버린다지만, 사람은 쉽게 변할 수 없는 법. 분명 그는 누구보다 올곧게, 강인하게 성장했을거야. 값비싼 편리함보다는 불편함과 오래됨. 버려질 듯 버려지지 않던 것을 애써 선택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때 난 깨닫지 못했던 것을 진즉부터 알고 있던, 그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P29)
거기에 전통을 사랑하는 일본의 오래되고 낡은 문화, 풍경들이 함께 어우려지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보여준다는 생각보다는 친구에게 다소곳한 소리로 들려주는 듯이 다가오는 글들이 '우리 흩어진 날들'의 글의 형식이지만, 그 속에는 시적인 표현들이 그녀의 문장력을 돋보이게 해 준다.
내가 학창시절 외우던 너무도 아름다운 '워즈워드'의 시 '초원의 빛'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되다니, 과연 빈티지스럽기도 하다.
여기에 적힌 먹빛이 희미해질수록/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 희미해진다면/ 이 먹빛이 마름하는 날/ 나는 당신을 잊을 수 있겠습니다/ 초원의 빛이여/ 빛의 영광이여/ 다시는 그것이 되돌려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러워 말라/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 오묘한 힘을 찾으소서 (워즈워드의 '초원의 빛' ) P122
각 도시마다 특색있는 그림을 그려 넣은 '맨홀뚜껑'까지도 일본의 특색을 느낄 수 있기에, 그런 하나 하나에 포카스를 맞추는 그녀의 시선 또한 그 책을 읽는 재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막 낡은 고베의 #16 '여행 그 치명적인 약점' 에 보면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이 나온다. 여행에서는 '남의 것을 탐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하지만 그녀가 꿈꾸는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은 소박하지만 아름답고, 그렇지만 쉽사리 할 수 없는 일들인 것이다. 그것들은 여행이 만들어 내는 환상일지도 모르고, 그렇기에 지독하게 아름다운 일들이다. 나도 이런 꿈을 꾸어 볼 수 있다면~~~~ 그러나, 난 너무 현실적이어서 꿈꿀 수 조차 없는 일들. 그러나, 그녀의 꿈을 들여다 보니 부럽기만한 그런 꿈들.
'우리 흩어진 날들' 이 책 속의 글들에는 저자의  꿈을 간직한. 그리고 항상 노력하는 마음과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 더욱 아름다운 문장들로 다가오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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