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하루
이나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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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학자의 삶을 지배했던 세 가지 열정은 사랑에 대한 열망, 지식에의 탐구,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라고 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전적으로 동의했다. 나 역시 아직도 진실한 사랑을 꿈꾸고, 지식을 갈구해 책장을 넘기며, 타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해 가슴앓이한다. 여기 실린 아홉 편의 소설은 일천하나마 그 결과물이다. (p6~7, 작가의 말 중에서)
누구네의 인생은 귀하고 소중하며, 누구네의 인생은 남루하고 비천한 것은 아니겠지만, 누군가는 세상의 중심에서 보란듯이 살아가고, 누군가는 세상의 귀퉁이에서 찌그러져서 아프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인 '이나미'는 '수상한 하루'에 담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 아니 고귀한 사람들이야 이런 사람들을 살아가면서 아마 만날 일조차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민갔다 외식사업의 꿈을 안고 돌아와서 사업자금마저 말아먹고 변두리 지하에서 횟집을 하는 잔뜩 거칠대로 거칠어진 남자. 인터넷카페에서 여의사인양 행세하는 마트 아르바이트 여자. 고학력이지만 백수로 옥탑방에서 미니거북과 동거하는 여자. 낄 때, 안 낄 때 가리지 않고 나대는 연립주택 반장 아줌마, 노조 활동으로 짤린 전직 여교사, 남편에게 소외된 여자....
이들이 평범한 것 같지만, 평범하지 않듯이, '수상한 하루'에 시린 단편들의 소재는 평범한 듯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고 특이한 것이다.
  '집게와 말미잘'의 미국에서 부두 노동자였던 횟집 아저씨가 이웃 상인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 쥐껍질을 벗겨서 문에 걸어 놓는 행동이나,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여의사인양 신분을 속였던 여자를 저녁 파티(?)에 초대하고는 한 밤중에 횟칼을 가는 장면은 오싹함과 끔찍함을 느끼게 한다. 더군다나 단편들에 담겨있는 리얼한 묘사들은 작가의 체험이 없었다면 결코 상상력이나 매체를 통한 지식만으로는 쓸 수 없는 글들이 여기 저기에 등장한다.
'집게와 말미잘'에서의 티베트 조장의 리얼한 묘사. 그동안 여행 에세이를 통해서 접했던 내용들이지만, 소설속에서의 묘사는 아무런 숨김없이 그대로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파묘'에서는 군복무 당시 유해발군단의 임무를 맡았던 주인공이 산소의 이장을 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그때의 이장 과정에서의 파묘 모습, 수습,굿 등의 묘사.
'푸른 푸른'에서 군복무중 상사의 성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하는 동생의 화장 모습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자크린느의 눈물'은 지하철 잡상인이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에서 사망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참사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지하철 화재 사건에서 죽어가는 주인공이 그 현장을 바라보는 모습, 그리고 망자가 되어서 자신의 사체를 찾지 못한 가족들을 바라보는 모습. 영혼의 무게는 7g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그 가벼운 영혼이 자신의 길을 찾아 가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무거운 영혼', '날지 못하는 영혼'이 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작가가 생각하는 죽음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죽음은 결코 두려운 것도, 부정(不淨)한 것도 아니다. 삶의 종착역은 더 더욱 아니다. 한때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삶이전에 무엇이 있었고, 넋은,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p139)
또한, 소설속에는 우리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 많이 나와서 작가가 우리말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조붓한 오솔길'  '따북따북 올라갔음' '허위단심 민친듯' '끄느름한 오늘' '쫑상거려 모은 천조각' 등등.....

'쑥할매'이야기는 노조 활동으로 해직당한 전직 교사의 이야기가 초등학교 시절에 '따' 당하던 아픈 기억과 어머니에 대한 마음, 거리에서 쑥을 파는 할머니를 보고 떠오른 '할미꽃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옛추억들과 함께 어우러진다. 아마도 자각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독자들이라면 기억에 남는 추억들이 떠오를 것이다.
'수상한 하루'는 이렇듯 세상의 모퉁이에 있는 남루하고 비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9편이 모여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런데, 각 이야기들에는 씨줄과 날줄이 되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 이야기들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를 처음엔 잘 알지 못한다. 이 이야기와 이 이야기는 어떤 연관이 있지? 하는 생각에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한 편의 이야기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작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부분들이 아닌,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도 못하는 부분까지 폭넓게 바라보고 사고하는 것이다. 소외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때론 남루하고 비천한 사람들이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들의 모습을 좀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보듬어 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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