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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위하여 - 그리운 이름, 김수환 추기경
한수산 지음 / 해냄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작가, 그 분의 작품이라면 망설임없이 읽을 수 있는 작가중의 한 분이 '한수산'님이다. 그리고 이렇게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작가들에 대해서는 흘러간 날들의 추억들이 함께 담겨져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겐 이런 추억이 아마도 없을 것이며, 오랜 세월이 지난후에 지금의 독서가 그런 추억의 한 장면을 만들어 줄 것이다.
작가 '한수산'은 70년대에 아주 인기있는 작가였다. 특히, 그의 작품중 세월의 흐름속에 잊혀져가고 퇴락해 가는 곡마단을 소재로 하여 이곳 저곳 떠돌아 다니는 곡예사들의 삶과 그속에서의 사랑과 슬픔을 그린 '부초'는 요즘 말로 '인기짱'이었다. 그밖에 '해빙기의 아침'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들이 그의 유려한 문체로 쓰여져서 독자들에게 많이 읽혔다. 그당시에 중학교 교사였던 나는 출퇴근시간과 수업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서 책을 읽었다. 옆자리의 음악 선생님은 결혼을 하신 2자녀의 엄마이며, 남편이 미국에 있어서 이민을 가기 위해서 대기상태였었다. 지금처럼 해외여행이나, 이민이 수월하지 않아서 기다림에 지쳐 있던 중이었다. 그런 그 분도 책을 많이 읽으셨는데, 내가 읽는 '한수산'님의 소설을 아주 좋아했다.
음악 선생님은 주부였기에 읽고 싶은 책은 많았으나, 책을 구입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읽고는 그 선생님에게 빌려드리곤 했는데, '한수산' '박범신''최인호''김홍신' 등의 작가의 작품들을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요즘도 그분들의 작품을 대할 때는 꼭 '민구' '정화'엄마였던 음악 선생님이 생각난다. 지금도 미국에서 그분들의 책을 열심히 읽고 계시려나.....
이렇게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한수산' 작가가 어느날 갑자기 절필을 하셨단다. 나중 나중에 알려진 소식은 일명 '한수산 필화사건' 그리고 '일본에 계신다' 등등....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했지만, 1980년대가 그런 시대였기에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후에 나가사키 원폭투하와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들의 처참한 삶을 그린 '까마귀' 시리즈를 읽으면서 우리의 역사속 불행을.... 그리고 작가의 섬세한 문체와 힘있는 문체에 또 한 번 감동을 받았다.
그런 '한수산'님의 신간인 '용서를 위하여'는 어떤 내용일까? 그리고, 얼마나 힘있는 글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리의 큰어르신이셨던, 그러나, '바보'로도 불리셨던 '김수환'추기경...
그 분의 선종이후, 싸늘한 막바지 겨울의 명동거리에 나도 서있었다. 발이 시리고, 손이 시리고. 1~2시간이면 되겠지 하는 맘에서 줄을 섰던 것이 명동의 골목 골목을 돌고 돌아서.... 점심도 굶은채로 조용히 그 줄에 서있었다. 천주교 신자도 아닌 내가. 신교인 개신교의 모태신앙은 있지만, 세례교인이라는 명칭은 있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신앙의 세계와는 담을 쌓은 내가 그곳에 있었다. 차마 그분을 그냥 보내드릴 수가 없어서. 그분의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그 한마디가 너무도 아름다워서.

'용서를 위하여'는 작가가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마카오로 김대건 신부와 함께 신부수업을 받으러 갔던 한국의 2번째 사제인 '최양업'신부에 관한 소설을 쓰는 과정의 2월 어느날. 김수환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그분의 발자취를 더듬어간다. 군위의 어린시절의 집에서부터, 소학교, 동성고, 그리고 일본에서 신부 수업을 받던 조치대까지. 조치대에서 나라 잃은 설움을 가진 '김수환'이 겪었을 마음까지도 가늠하여 가면서. 그리고, 첫 사제가 되었던 성당과 추기경과의 짧았던 단 한 번의 만남까지를 생각하면서 1년여에 걸쳐서 추기경의 삶을 더듬어 나간다.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의 씨줄이 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날줄은 무엇일까..... 그것은 70년대 가장 인기있는 소설가였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그가 어느날 갑자기 '국가원수 모독'‘군비방과 이적행위’‘사회부정시’라는 말도 안되는 죄목으로 끌려가서 갖은 고문과 인간적 모욕을 당한 후에 겪게되는 정신적 혼란. 그것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작가의 삶을 지배하고 있으며,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그래서, 그들을 결코 용서하지 못하는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소설의 씨줄이 된 김수환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작가는 말한다.
한수산 작가의 고문 사실은 그 일이 있은 오랜 시간이 흐른후에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리고 언론매체를 통해. 그리고 작가의 어떤 글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러나, 바로 이 책 '용서를 위하여'에 그 상황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잔인한고 모욕적인 행동을 서슴치않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어찌 이런 일은 당한 사람에게 감히 '용서'라는 단어조차 내뺃을 수 있겠는가. 그의 글은 정말 이런 부분에 대해서 너무도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담고 있다. 우리가 금기시하는 '신앙'에 대한 부분까지도. 그리고 '주님'에 대한 원망과 비난까지도.
그러나, 이제 작가는 30년동안 마음속에서 진정한 용서를 하지 못했던 그가 당했던 고문들을 곱씹어보면서, 그리고, 김수환추기경의 삶과 말씀을 되새겨 보면서, 또 자신에게 백두산 정상에서 세례의식을 거행하시고 좋은 말씀으로 위안을 주셨던 이경재 신부를 기리면서, 일본의 시라야나기 세이치 추기경의 선종을 접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갖게 된다. '글로 하느님을 증거하리라' 그가 쓰려고 하는 최양업 신부의 이야기를 쓸 때에, 그리고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쓸 때에 그가 고문 받았던 체험이 그대로 작품속에 녹아내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주님이 작가에게 행한 고문의 의미가 아닐까.... 작품속의 글이 단순한 활자가 아닌 체험에서 우러나온 글이 아닐까.... 추기경님도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오는데 한 평생이 걸렸다." 하시지 않았던가.
아름다운 옛추억과 함께 떠오르는 작가 '한수산'
그의 신작인 '용서를 위하여'는 이렇게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말씀을 추적하면서, 작가 자신의 삶과 개인적 체험, 특히 30여 년에 걸친 세월속에서도 도저히 용서를 할 수 없었던 사건을 중심으로 이 작품이 소설이기에 픽션인지, 아니면 너무도 생생한 인물의 삶이기에 '논픽션'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픽션'과 '논픽션'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연륜이 쌓인 삶의 단상들이 유연한 문체로 쓰여져서 읽는내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겨지는 조각, 조각의 퍼즐들이 쌓여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도중에 30 년만에 제자 8 명을 만나게 되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내가 첫 수업에 입었던 옷차림, 수업시간에 공부한 내용중의 일부분까지도 기억하는 그들. 처음엔 낯설게 느껴지던 얼굴들이 말 한마디, 한마디를 하는 과정에서 옛날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이 매치되어서 하나로 만들어짐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의 작가의 30 년전의 처참했던 고문의 기억과 나의 30 년전의 아름다웠던 시절의 기억들은 상반되기는 하지만,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듯 하다.
이 책을 덮는 이 순간, 오랜만의 시간 여행에서 돌아온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