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여행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저자인 '요시다 슈이치'는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10년간에 걸쳐서 10개의 도시를 둘러싼 10편의 단편소설로 엮었다. 물론, 단편소설을 묶어서 출간할 경우에 어느 정도의 시간차가 있기는 하지만, 10년에 걸쳐서 써 내려온 작품이기에 그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는 느낌들이 많이 다를 수가 있다. 다시 말하면, 10편의 단편들은 발표시기, 수록했던 지면, 작품의 분량, 주제, 등장인물, 분위기가 다른 각양각색의 글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늘 '요시다 슈이치'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공간, 그리고 사람들이 넘나드는 '거리'에서 일어나는 삶의 모습을 썼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여기까지는 옮긴이의 글을 거의 인용한 것인데, 실제로 이 책의 글들을 읽어보면 '10개의 도시'라는 표현은 좀 과장된 표현이 아닐까 한다. 8편의 작품이 일본의 도시들이 배경이고, '영하5도'가 서울을, 그리고 상하이는 '24pieces'에서 잠깐 언급될 뿐, '10개 도시를 둘러싼'이라는 글이 뜻하는 바를 나는 찾지를 못했다. 이 책에서 도시가 꼭 어떤 것을 은유하거나 '여행자'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행'을 생각하여 '여행에세이'적인 단편소설들을 생각했다면 이 책에 담겨진 작품과는 많은 거리감이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먼저, 책을 받아든 순간, 먼 나라에서 온 한 통의 편지를 연상하게 하는 스탬프와 표제옆의 뚫린 공간으로 보이는 도시의 지도. 호기심에 책표지를 벗기니, 어느 도시의 지도이다. 그 지동에 쓰여진 지명은 이 책의 단편소설들의 제목들이었다. 지도는 나와 너무도 가까웠던 것이기에. 대학생때부터 접했던 그 지도. 그리고, 사회에서도. 그리고, 낯선 여행길의 나의 동반자가 되어 주었던 지도.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낯설기보다는 더욱 친근감이 있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작품중의 '24pieces'의 경우에는 짧막한 단 7쪽의 글(그것도 띄워쓰기가 많은) 이었다. 작가인 '요시다 슈이치' 는 삭막한 도시속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러 모습으로 표현했다. 각 작품들은 모두 다른 모습의 느낌으로 표현되었다.

'캔슬된 거리의 안내'처럼 매우 관념적인 문학 풍미가 흘러 넘치는 작품'(...)
'나날의 봄' '영하 5도'처럼 도시적이면서도 달콤한 연애 분위기가 드러난 작품(...) '젖니' '녀석들'처럼 모순적이고도 모호한 인간 심리에 초첨을 맞춘 작품도 있다.
(p261) - 옮긴이의 말 중에서 -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기전부터 과연 일본인 작가인 '요시다 슈이치'는 우리의 서울을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이야기로 그렸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영하 5도'라는 작품을 통해서 비쳐지는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일상은 거의 어색한 느낌이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의 대부분이 너무도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들을, 그리고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대사처리도 평범하기에 그의 작품을 읽으면, 그냥 우리의 일상인듯한 느낌들이 든다.  그저 어제가 오늘인듯. 오늘이 내일이 될 것같은 그런 일상이 그의 작품속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무미건조한 느낌이 든다. 단편소설의 묘미라고 할 수 있는 반전 또한 그의 작품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야 보면, 그의 작품속에는 사람의 심리를 섬세하게 꿰뚫어보는 시선이 있고, 그것은 우리들 인생의 모습이고, 삶의 단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중에 가장 긴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캔슬된 거리의 안내'는 작품속에 액자구성이 되어 있는 소설로, 한심한 형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과 일상, 그리고 지금은 페허의 섬이지만, 전에는 광부들이 살았던 군함도에서 가짜(?) 가이드를 하던 과거의 생각, 그리고 자신이 쓰는 소설속의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진 작품이다. 소설속의 그가 쓰는 소설은 헤어진 여자친구의 가족과 계속 관계가 이루어지는 특이한 관계를 소설로 쓰는 것이다. 그런데, 어울릴 것같지도 않은 이 3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로 쓰여졌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문학, 소설가로서의 길찾기 역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작품속의 인물들이 자신의 삶에 소극적이지만, 자신을 얽매고 있는 현실에도 어떤 빈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래의 이 책의 제목(원제)이 바로 수록된 단편소설중의 제목인 '캔슬된 거리의 안내'하는데,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10년의 세월에 걸쳐 발표한 단편 10편을 묶어낸 이 작품은 데뷔작 『최후의 아들』부터 그의 대표작 『악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창작의 궤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제목(원제 : 캔슬된 거리의 안내)에서 말하는 ‘거리의 안내’란 작가가 작품들을 통해 독자에게 제시하는 길 안내라는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 작가 자신의 길 찾기, 즉 문학의 길 찾기와 소설가로서의 길 찾기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추천평중에서)
'캔슬된 거리의 안내'에 나오는 글중에
석연치 않은 것은 그때부터였다. 어쩌면 도둑인데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당당하게 행동한 게 아닐까? 도둑이 도둑답게 행동할 리는 없다. 가짜는 진짜인척하기 때문에 가짜인 것이다. (p 197)
어쩌면 우리들의 삶도 이런 것이 아닐까?
살아가는 모습에서 '가짜'이면서 '가짜'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진짜'처럼 행동하면서 살아온 날은 없는가?
삶의 '가짜'와 '진짜'를 생각해 보게 되는 '도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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