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림의 러시아 예술기행
최하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러시아는 여러 빛깔의 이미지로 떠오르는 나라인 것같다. 로마노프 왕국의 이미지, 러시아혁명 당시의 처참하고 투쟁적인 이미지, 냉전시대에 미국과 양극관계를 이룰 당시의 이미지들이 함께 잔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생각한다면 너무도 낭만적인 동화속 궁전 모습을 떠오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러시아식 비잔틴 양식의 양파형 지붕과 그를 둘러싼 형형색색의 색깔이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예카테리나 궁전의 호박방의 호화로움, 또한 바이칼호수를 향해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까지 생각한다면, 러시아는 한 번쯤 여행하고 싶은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문학작품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낭만적인 모습보다는 러시아혁명전후를 중심으로 한 암울한 모습들이 더 많이 묘사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 최하림은 2004년과 2006년에 두 번의 러시아 여행을 하게 되는데, 러시아의 예술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을 찾아보고, 그곳에서 어떻게 예술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뒤쫒아 본다. 자작나무와 들꽃이 핀 들판에서, 예니세이강이나 네바강이 흐르는 곳에서,도스토옙스키를 찾아서 페테르부르크로, 톨스토이의 자취를 찾아서 야스나야폴라나행 기차에 올라서. 체호프를 찾아서는 멜리호보마을로.

나에게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의 도시가 아니고 에카테리나의 도시도 아니고 레닌의 도시도 아니다. 나에게 페테르부르크는 도스토옙스키의 도시다. (p43)
그러고 보니 러시아에는 기라성같은 문학인들과 예술인들이 많이도 있다는 것을 새삼깨닫게 된다. 세계적인 대문호인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체호프, 푸쉬킨, 스카초프, 예세닌, 솔제니친, 파스테르나크, 그리고 음악가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도.
그런데, 왜 시인 최하림은 러시아를 예술인들을 만나기 위해서 두 번이나 찾아 갓을까?
1960년대 초에 '전쟁과 평화'를 읽으면서 톨스토이의 생가와 묘지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이런 여행을 계획하게 된 이유란다. 톨스토이가 걸었던 그 오솔길도 걸어보고 톨스토이를 스쳐갔었을 바람도 맞으면서 그의 문학세계에 흠뻑 빠져본다. 그런데, 톨스토이는 워낙에 노름꾼이고 바람도 피웠다는 사실. 그러나 그런 톨스토이는 농민들에게 자신의 재산까지 기꺼이 나누어주고, 함께 농사를 지을 정도로 정이 많은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도 톨스토이는 '부활''전쟁과 평화'를 읽으면서 알게 된 작가인데, 최하림은 완전히 톨스토이의 문학에 심취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점차로 톨스토이에 매료되어갔다. 나는 '안나카레리나'를 읽었고, '참회록'을 읽었고, '사람에게는 얼마의 토지가 필요한가'를 비롯한 민화들을 읽었다. 그것은 토스토옙스키와는 또다른 큰 산이었다. 도스토옙스키가 내속에 있는 죄와 악을 보여준다면 톨스토이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라는 도덕적으로 매서운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70~80년대라는 질풍노도의 시대를 통과하면서도 무력하기 그지없었던 나라는 존재는 그 질문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어싸. 그러니 어떻게 내가 야스나야폴랴나를 서둘러 찾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p 88~89)
그런 면에서 "위대한 작가에게 부여된 책임을 다하라"고 다그치는 편지를 만년의 톨스토이에게 보냈던 투르게네프의 심정을 나는 이해하고도 남는다. 위대한 교사보다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작품이 우리 삶에 기여하는 바는 깊고 크다. 위대한 작품은 시대가 흘러가고 가치관이 변해도 역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쓰다듬어준다. 위대한 문학 작품은 우리에게 등불이 되어주고 다친 상처를 쓰다듬어 줄 수 있으되 위대한 교사는 역사로밖에 남지 못한다. (p101)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하림은 푸쉬킨의 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프고 괴로운 것/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사는 것/ 그리고 또 지나간 것은/ 항상 그리워 지는 법이니/ (...)
학창시절 얼마나 좋아하던 명시인데.....
그리고 러시아의 문호중에 반가운 시인이자 소설가인 파스테르나크. 그의 시는 잘 모른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중에 '의사 지바고'에 푹 빠져서 날밤을 새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그 소설이 영화화되어서 시내 극장에서 상영이 되었을 때에 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갔다. (예전에 서울의 중고등학교는 학교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끝나면 시내 극장으로 단체관람을 가곤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꽃미남인 주인공 오마  샤리프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하얀 눈이 덮힌 설원의 풍경. 이 책에서도 소개되는 장면인 페레델키노의 2층집. 창문에 하얀 성에가 잔뜩 낀 유리창. 시를 쓰는 그의 귀에 들리는 늑대소리. 특히 여주인공 라라의 주제곡이 너무도 아름다웠던 기억들. 그런데, 러시아의 예술기행을 통해서 그곳의 모습을 접하게 되니 새삼스럽게 옛 추억들이 떠오른다. 그 때 읽었던 '의사 지바고'의 시대적 배경을 난 그때 잘 알지 못했다. 그 시대적 배경이 1905년의 러시아 제1차 혁명과 1917년의 10월 혁명,그리고 그 혁명들이 현실화되어가고 있는 시기였음을 알지 못했다. 어렴풋이 어떤 사회적 혁명이라는 것 밖에는. 우리는 대부분 세계적인 고전들을 학창시절에 많이 읽는다.



그렇기때문에 제대로 작품을 이해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줄거리 위주로 읽는다는 것을 이제와서 생각하면 많이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읽었다는 생각에 다시 그 작품을 읽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제대도 된 작품 이해는 많은 문학 작품을 읽고, 역사적, 사회적 인식이 정립된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최하림의 러시아 예술기행'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아직까지도 모르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도 조금씩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어느 정도의 문학적 소양을 갖추어야만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작가들을 알고, 그들의 문학세계를 이해하고, 문학작품을 읽어 보았다면 이해가 쉽고 유익한 책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최하림의 여행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를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이제부터라도 오래전 읽었던 고전들을 한 달에 한 권씩이라도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러시아의 모든 작가와 시인들은 시베리아의 검은 몽상을 경험하고서 러시아의 대작자가 된다. 도스토옙스티도 체호프도 스카초프도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을 하거나 시베리아에서 살거나 시베리아를 경험했다. 그들은 수백 리 자작 나무 숲을 헤맸다.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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