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걸
페터 회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그것은 마치 젊은 베토벤의 음 같았다. (p71)
이 소리들이 맞춰진 조가 장3화음이나 단3화음에서 주음이 됩니다. 한 옥타브에 단조나 장음3도를 더하는 것을 배음이라고 하는데 이 배음은 주음에 따라 달라집니다. 도시는 소리의 지도예요. 그룬트비 교회는 '라'음에 만춰져 있죠. 그리고 그위로 '바'에서 반음 울린 것도 그만큼 강하게 들리죠. (p74)
세 명의 자녀와 근사한 남편이 있었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심포니처럼 굵직하고 정력적인 C장조 소리가 나는 남편에 애인도 여럿 있었다.(P151)
아이에게선 바흐의 위대한 작품같은 소리가 울렸다. (P167)
팔운동을 크게 할 때도 그랬다. 바흐도 그랬다.(P339)
소리의 오염과 세상의 소음과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워요, 바흐만 빼고.바흐는 죽음을 초월한 음악이니까 (P415)

소설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수없이 나오는 음악과 소리에 대한 문장들이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 하는 의아심이 드는 작품이 '콰이어트 걸'이다. 이 책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의 저자인 '페트 회'의 장편소설이다. 분량이 거의 700페이지에 달하는 웬만큼 독서에 자신이 없다면 끝까지 읽기가 힘들 정도로 난해한 부분들이 많은 소설이다. 읽기가 버거운 이유 중의 하나는 저자인 '페터 회'가 대단한 음악적 소양을 가지고 있기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음악적 용어들과 작품들까지 넓게 섭렵해야지만 이 책을 완전하게 읽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바흐'의 광팬이기에 그에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문장들이 많이 표현되고 있다. 작품속의 사람들의 동작과 표정에서까지 '바흐'와 연관이 지어져서 표현되는 것이다.



저자인 '페터 회'는 안데르센이후 가장 뛰어난 덴마크 작가라는 칭송을 받는 인물인데, 작품을 쓰기 위해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작품들이 각각 다른 스타일로 쓰여지며,문체 역시 어떤 한 가지로 규정지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쓰여진다고 한다. '콰이어트 걸'을 조금만 읽어보아도 그의 작품의 문체가 상당히 빛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눈과 마음을 크게 열어라. 그리고 음악을 눈으로 읽을 수도, 혹은 문자를 귀로 들을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책날개글)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책날개 글이 무슨 뜻인지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음악은 귀로, 문자는 눈으로'라는 개념이 무색해지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페트 회'의 문장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기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카스퍼크로네 라는 서커스 광대가 도박으로 인하여 빚더미에 앉게 되어 국외로 추방명령을 받았고, 12개국의 경찰이 그의 뒤를 쫒고 있는 상황이다. 사랑하던 여인은 있었지만, 어느날 그의 곁을 떠났고, 결혼을 하지 않아서 아내도, 자식도 없다. 아버지는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서커스 광대출신이지만 나중에 법을 전공하신 분이다. 그런 카스퍼 크로네에게 어떤 소녀(클라라마리아)가 나타났는데, 그 소녀는 자신이 유괴를 당했으니 도와달라는 메시지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이 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상황은 주인공인 카스퍼크로네가 절대청각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우리가 생활속에서 듣지 못하는 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상황을 음악소리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도. 풍경도. 멀리 떨어진 상황속의 소리까지. 아니 미래의 소리까지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클라라 마리아를 찾는 과정에서 그 소녀가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졌으며, 이런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수용되어 있는 곳과 그 아이들에게 처해진 임무가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지진과 홍수로 코펜하겐의 일부가 가라앉게 되는 가까운 미래가.
클라라 마리아와 함께 실종된 두 아이를 찾아나서는 과정에서의 흑인 수녀의 말
그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며, 하느님의 뜻에 달린 것이다.  한 아이가 사라지는 것도 다시 돌아오는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P461~462 글의 요약)
전화속의 희미한 종소리로 그 지역이 어디인지, 종소리는 어느 교회의 종소리인지를 알 수 있다면 카스퍼 크로네의 능력은 그야말로 과거의 외화의 한 장면인 '소머즈의 귀'가 아닐까? 그런데, 그보다도 더한 음악적 능력까지 겸비한....
이 작품은 '페터 회'의 두번째 추리소설이라고 하지만, 단순하게 실종된 아이를 찾는 과정만을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그이외에도 이 소설속에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도. 그리고 신과 사랑과 영원에 대한 깊은 성찰도 함께 하기에 '사랑이야기' 아니면 '철학 소설'이라고 까지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이란 얼마나 많이 모으고 잘 나가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을 내려 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지. (116)
사랑이 영원하다는 말은 진실일거예요. 하지만 사랑의 얼굴은 항상 바뀌죠. (P475)
나뭇잎은 고요했다. 거기에 물방울이 있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카스퍼는 펌프가 마지막 물방울을 퍼내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면 아주 짧은 순간 나와 물방울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져.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는 그 나뭇잎을 회색 콘크리트위에 내려 놓았다. (P597)
나는 이 작품을 정확하게 이해하지를 못했다. 모든 상황과 동작들과 말에서까지 흘러나오는 음악들을. 특히, 바흐의 음악세계를 알지 못하기때문이다. 음악적 소양이 거기에는 턱도 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신선한 문체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들을 실어 본다. 추리소설이라면서.... 마지막 문장을?
하지만, 마지막 문장이 공개된다고 한들, 이 책을 읽으려고 하는 독자들에겐 아무런 정보도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 순간이 바흐의 작품 번호 565번의 끝부분. D단조의 토카타와푸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커튼이 다시 올라기기 전에 잠시 그곳에 서 있는 음악의 우대한 숙명적 기둥들. 그러나 그 음악은 낭만주의 쪽으로 조금 기울었다. 그리고 카스퍼는 우주가 특별히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낭만이란 극단적인 것이고, 모든 극단은 평범해지기 마련이다. (....) 그는 미래의 소리를 들었다. 조각조각 나누어진 단편적인 소리를. 그건 분명 사랑스러운 소리였다. 위대한 자선공연 행사의 음악처럼. 그리고 아주,아주 어려운 소리였다. (684~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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