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몸값 2 오늘의 일본문학 9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도쿄 올림픽'
내 기억속의 첫번째 올림픽이다. 그리곤 우리나라의 '88 올림픽'만이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다. 어릴적의 느낌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떠들석했었다는 기억이 난다.  
호기심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그럴만도 했었던 것같다. 도쿄는 1940년에 제 12회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이 되었는데, 일본의 중국 침공으로 인하여 국제사회의 비난이 많았으며,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자 취소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후 19년만에 얻어진 올림픽 개최지였으니 일본 정부는 올림픽의 정신보다는 일본을 국제 사회에 좋은 이미지로 남기고 싶은 의도가 다분히 들어가 있는 정치적인 올림픽이었던 것이다. 또한, '도쿄 올림픽'에 얽힌 이야기로는 로마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에티오피아의 '아베베'선수가 도쿄올림픽에서도 마라톤에서 올림픽 최고기록으로 마라톤 2연패를 차지했다. 그런데, 아베베는 로마 올림픽에서 맨발로 뛰어서 '맨발의 아베베'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그리고 '올림픽의 몸값2'의 내용중에 북한 선수단이 올림픽 직전에 출전을 하지않고 돌아가는 내용이 있는데, 그때에 북한 800m 선수인 신금단선수와 한국의 아버지와의 만남이 결렬되는 가슴아픈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많은 이야기를 담았던 '도쿄 올림픽'은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이었으며,일본인 모두의 희망이고 열광적인 기대속에 개막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올림픽 경비 총책임자인 스가 슈지로 경시감의 말이 담긴 신문기사 내용에는

경비력은 국력이다. 일본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 (p17)
바로, 일본정부나 경찰이 원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문명도가 의심받는 것이다. 서양인들에게 '노란 원숭이'라고 비웃음 당하는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끝맺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통 일에 지쳐서 합숙소에서 필로폰을 맞아가면서 올림픽관련 각종 공사에 동원되고 있는 노동자속의 구니오는 이런 생각을 한다.
도쿄만 느닷없이 근대도시로 얼렁뚱땅 꾸며놓고 도대체 무엇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는 것인가. (p17)
일본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수재들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는 '도쿄대' 경제학부 대학원생인 구니오. 그 누가 보아도 전도유망(前途有望)한 청년 구니오.
그는 국가를 상대로 하는 테러리스트로 변신하는 것이다. '올림픽의 몸값'을 요구하는 것이다. 누가 보아도 무도하기만한 행동. 그 결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행동. 나는 장래가 촉망되고 지적 능력을 갖춘 엘리트 청년의 변해가는 모습이 안스러웠다. 노동에 지쳐서. 필로폰에 찌들어서. 공사장 먼지를 뒤집어 쓴 구니오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언제나 아버지와 같은 '무라타'가 함께 하고 있었다. 전쟁의 마지막날에 아내와 아들을 잃고, 소매치기로 전전하며 노숙을 일삼는 '무라타'가 있었다. 무라타에게 구니오가 아들처럼 생각되듯이, 구니오에게도 무라타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구니오 출생의 아픔 기억. 아버지의 사랑을 미처 받지 못한 청년의 쓸쓸한 모습. 그런 구니오에게 무라타는 단순한 이해관계로 함께 행동하는 것이 아닌, 아버지이자 정신적 지주인 것이다. 그런데, 연쇄폭발사건이 일어나도, 국민들에게는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국주의시대를 막 벗어난 일본의 그당시의 실정이나,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다는 오늘날이나 정부는 최소한의 알 권리만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에 왜 이렇게도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일까?



이런 판국에도 국민에게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건 국가의 위신이 최우선이고 국민의 안전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p330)

허무하고 황망하기까지한 '천안함 침몰사건'과 함께 맞물리는 생각들이기에 더욱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책을 읽을수록 '구니오'의 마음에 수긍이 가게 되었다. 형의 죽음에서 비롯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단순한 형의 죽음만으로 시작된 것은 아닐 것이다. '구니오'가 마르크스 경제론을 전공하고, 룸펜프롤레탈리아를 자칭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부의 집중현상과 가난은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도 일조를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출생과 성장한 고향의 모습과 생활하고 있는 곳과의 괴리감도 작용을 하였을 것이며, '구니오'의 행동은 뚜렷한 가치관과 목표의식에서 출발하였음은 자명한 사실인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아무도 안하는 일. 인식(認識)조차 하지 못하는 일.
구니오는 그 일을 행동으로 실천한 것은 아닐까?
올림픽을 위해서 급조되는 건축물들, 서구적인 도시로 탈바꿈하는 도쿄,거짓되게 꾸며지는 모습들에서 국민들에겐 헛된 꿈만을 안겨주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는 행동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구니오'만이....
일본인 모두의 염원인 도쿄 올림픽의 성공을, 전세계에 자신의 조국이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음을 알리고 싶은 일본인들 중에 단 한사람 '구니오'만이 그리고, 그를 도와주는 '무라타'만이 제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올림픽의 몸값1'의 리뷰에도 썼지만 '도쿄올림픽'이라는 한 사건을 몇 개의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는 구성이 더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두 시간대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도....
'구니오'의 과거시간의 구성과, '마사오'와 '다다시'의 현재시간의 구성.
그런데, 이 시간개념도 내용이 후반에 접어들면서는 시차가 많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흔히, 국방의 의무를 위해 군대에 있는 젊은이들이 말한다.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고.
'구니오'의 행동이후에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도. 경찰도. 마사오도. 다다시도. 요시코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저 또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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