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의 동행
미치 앨봄 지음, 이수경 옮김 / 살림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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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 앨봄'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가이다. 어느해던가 오래전 제자로부터 한 권의 책이 보내졌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었다. 루게릭병으로 죽음을 앞둔 모리선생님과 앨봄이 화요일마다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인데, 그 속에는 인생의 깊은 성찰을 깨달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그 제자와 나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오래전의 스승에게 보내는 책 한 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란 책을 나에게 보내주기 위해서는 그가 책을 읽고 받았을 감동과 그 책을 나에게 보내주고 싶었던 마음이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학생에게 나란 스승은 과연 '모리'와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던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니 한없이 내가 작아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러한 인연으로 만난 작가가 '미치 앨봄'이었고, 그이후에 그의 작품들이 출간되면 읽기 시작했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그리고 '단 하루만 더' . 모든 작품들이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 고난과 역경속에서 인생에 대한, 삶에 대한,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 보게 해 주었다. 그런데, '미치 앨봄'이 어릴적 다니던 유대교회의 랍비인 '렙'과의 8년간에 걸친 만남을 가지면서 나누었던 긴 대화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8년의 동행'이라는 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나는 어쩌면 '8년의 동행'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연장선상에 놓인 책이라는 생각과 함께 '미치 앨봄'의 글들이 궁금해졌다. 책장을 넘기자 '미치 앨봄'의 인쇄 싸인본과 함께 '한국독자에게' 보내는 글이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내 추도사를 써 주겠나?"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앨봄'은 부모님대에서부터 다니던 유대교의 랍비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게 된다. 누군가를 위해서 추도사를 쓰고, 장례식을 집전하던 랍비의 추도사. '앨봄'은 자신에게 이런 제안을 한 이유조차 이해할 수가 없다. 랍비인 '앨버트 루이스'(렙)의 추도사를 쓰기 위해서는 그와의 만남을 가지면서 그에 대해서 잘 알아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시간이 될때마다 '렙'을 찾아와서 그와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모리'선생님에게서 인생 수업을 들었던 것처럼. 그런 가운데 또 만나는 사람이 '헨리 코빙턴 목사이다. '앨버트 루이스'와 '헨리 코빙턴'. 이 두 사람의 삶이 교차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리고 '미치 앨봄'의 이야기까지.
'앨버트 루이스'와 '헨리 코빙턴' 두 사람은 '미치 앨봄'의 인생스승으로 교회목사들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생역정은 너무도 판이하다. '앨버트 루이스'는 유대교 랍비로서 자신의 신도들에게 신앙심을 강요하는 것도 아닌 자연스럽게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사람이다. 권위적이고 성서적인 설교보다는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설교를 한다 그래서 그의 설교는 노래로 불러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의 삶자체는 즐거움이고 평화로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헨리 코빙턴'은 어릴적 생쥐와의 동거를 할 정도로 빈곤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아버지는 마약상이었다. 그렇지만 '헨리'는 하나님, 예수님, 아니 그 어떤 초월적인 존재보다도 아버지를 존경했다. 그에게 유일한 영웅이던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오는 상실감에 그는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겠다는 생각에 마약, 술, 총격, 감옥에 수감되는 모든 세상의 낮고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어느날 마약 탈취사건후에 그들의 보복이 두려워서 쓰레기통 옆에서 떨면서 밤을 지새우는 과정에서 자신이 살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그가 목사가 되는 이유이다. 노숙자를 위한 쉼터가 바로 그의 교회인 것이다. 지붕에서는 물이 줄줄 새는, 가스조차 끊어져서 추위에 떠는....



  그렇다면 '미치 앨봄'은 부모로부터 받은 신앙심, 그러나 성장하면서 유대교를 알게 되고, 냉담과 무관심, 그리고 자신의 성공으로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이 세사람의 삶. 그 속에 인생의 모든 질문과 대답이 들어 있는 것이다. '미치 앨봄'이 추도사를 쓰기 위해서는 '렙'을 주기적으로 만나고, 그의 설교를 듣고, 그 이전의 설교집들을 보기도 하면서, 어린 시절의 유대교회와의 추억들도 되새겨 보면서, '앨버트 루이스'의 삶을 조명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믿음으로 인해 기쁨이 넘치는 평온한 삶을 살고 있는 모습'.


 

그래. 인생은 아름답다.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답다.
그래서 미치 앨봄은 '렙'과의 만남을 거듭하는 것이고, 그런 가운데에 자연스럽게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꼭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도 좋다. 이슬람교의 알라여도 좋고, 불교의 부처라고 좋고, 힌두교의 신이라도 좋다. 그동안 지구상에서 종교로 인한 갈등과 분쟁, 전쟁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던가? '우리들'과 '그들'로 양분되는 종교가 아닌, 각 개인 개인이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미치 앨봄'과 '헨리 코빙턴'의 만남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앨봄'이 노숙자 쉼터 자원봉사를 하게 되면서 지원금 기탁 문제로 알게 된 목사이다. 낡아서 지붕에서 비가 오면 물이 뚝~~ 뚝~~ 떨어지는 교회의 목사. 노숙자들이 기거하고 있는 교회. 그곳의 목사는 자신이 마약, 총기, 강도, 교도소 복역등의 과거가 있음을 너무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당신은 그런 목사를 믿고 노숙자들을 지원금을 기탁할 수 있을까? 설교를 들어본다. 군더더기가 붙지 않은 간단한 설교. 그러나 목사의 목소리는 우렁차고 몇 안되는 신도들은 그를 믿고 따른다. 노숙자들이 그곳에 머물든지, 떠나든지 상관을 하지 않는다. 기독교를 믿을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차츰 '헨리 코빙턴'과 그의 교회가 마음에 와닿는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들도....
'헨리'교회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카스' 역시, 진실된 마음과 믿음이 엿보인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죽음을 앞에 두고 제일 두려워하는 게 뭘까요? 내가 물었다. / "두려워하는 거?" 그는 잠시 생가하더니 입을 열었다. / " 음, 이런 거겠지. 죽음 다음엔 뭐가 있을까?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그곳은 내가 상상하던 그런 곳일까?" / 맞아요, 그럴거예요. "그래, 하지만 또 다른게 있지."/ "뭐요?" 렙은 의자 뒤로 몸을 기댔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사람들에게 잊히는 것." (p174)
자신의 이별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으로 장식하는 '렙'. 그는 자신의 장례식에서 자신의 마지막 목소리까지 녹음해서 들려준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느냐?' '사후의 삶이 존재하느냐?'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네'. '그렇다.' 라는 대답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그의 이별은 '아름다운 이별'이다. '미치 앨봄'이 두 성직자인 인생스승을 통해서 얻었던 그 귀중한 인생의 진리를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랑' '결혼' '행복' '종교(신앙)' '삶' '죽음'  -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토록 소중한 삶, 하루 하루가 특별할 것없는 그저 그런 날들이라고 투덜거리던 자신들이 너무도 철없는 투정을 부리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허황된 욕망들이 한없이 부끄럽게 여겨지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도 판이하게 다른 인생의 길을 걸어온  두 성직자의 모습속에서 내가 힘들때에 나를 잡아줄 믿음이 없는 것보다는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느냐?" 고 물어볼 신앙이 있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인생의 동행자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앨버트 루이스'가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면서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죽음을 향하여 가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헨리 코빙턴'은 악의 추억인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기쁨과 함께 일 마일을 걸었네
그녀는 내내 이야기를 재잘댔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더 지혜로워지지 않았네
그 모든 말을 다 듣고 나서도.
나는 슬픔과  일 마일을 걸었네
그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네
슬픔이 나와 동행했을 때.
   -로버트 브라우닝 해밀턴-
  (p 244)
오랜만에 만난 '미치 앨봄'의 작품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작품들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그때의 그 감동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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