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내가 권지예 작가를 알게 된 것은 2009년 11월에 중단편 7편이 수록된 '퍼즐'을 읽게 되면서부터이다. 작가소개에 나온 사진를 보고 20대 후반정도의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1960년생이다. 동안(童顔)에 놀랐다. 학력도 프랑스 국립 파리 7대학에서 7년간의 연구 끝에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2002년 26회 이상문학상 대상, 2005년 동인문학상도 수상하였다. 그런 간단한 프로필를 보고 읽은 '퍼즐'은 그녀가 주로 소설에서 다루는 연애, 불륜, 욕망, 결혼, 가정, 덫, 자살. 이런 단어들로 축약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의 한 작품인 '꽃진 자리'는 살인을 한 여자를 복숭아 나무밑에 묻은 후에 그 나무밑을 파보니 이미 시체는 없어지고, 그 복숭아 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하는 이야기였다. (내가 필요한 줄거리만 요약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연분홍빛 복숭아꽃이 피는 나무를 이렇게 흉칙한 장소로 선택한 것이 너무도 잔인하게 생각되었던 기억이 난다. 전체적으로 그녀의 작품들은 일탈을 벗어난 이야기들로 불륜과 자살, 이런 이야기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쓰여졌었던 것이다. 

'4월의 물고기'가 출간된 후에 나는 전에 읽었던 작품들을 떠올리면서 그녀의 장편소설이 궁금해졌다.

첫 눈 마주침? 운명적인 사랑?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렇고 그런 권태로운 우리의 일상? 소설의 중반부에 도달하기까지는 그 어떤 섣부른 예측도 하지 말기 바란다. 기괴하기까지 한  콜라주 같은 이 이야기는 낮의 또 다른 밤 이야기이며 밤의 또 다른 낮이야기이다.  (책뒷표지, 하성란 작가의 추천평 중에서)
하성란 작가의 추천평처럼 중반부에 접어들기까지는 어떤 예측도 불가능하다. 아니, 나중의 몇 장을 남겨 놓고도 어떤 예측을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4월의 물고기'이다. 소설의 초반부에 언뜻 언뜻 내비치는 장면과 설정이 작품의 구성을 위한 여러 장치이며, 복선이 깔아 놓은 것이라는 것을 읽는 중간 중간에, 맨 마지막 부분에 확실하게 밝혀 주기때문이다.
'16년전의 이야기'와의 연결, 서인의 인생을 피폐하게 했던 그 일. 물론, 독자들은 이미 성폭행을 당했다는 정도는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악몽이라기보다는 엄마와 관련되어서 떠오르는 희미한 환상(?)
꿈, 혼몽, 기억의 혼란, 환영.... 그러나 이제 명확해졌다. 꿈은 아니었다. 결국은 .... (p186~187)
확연하게 잡히지 않는 기억속에 입은 마음의 상처는 온전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것일까?




몸깊은 곳에서 악마와 결탁한 영혼, 미카엘  

미카엘은 이름 그대로 천사입니다. (...) "정말 순하고 착한 애였죠. 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아이였어요." /"그 말뜻은...?"/"뭐랄까" 천사와 악마가 함께하는 있는....." (p218)
"미카엘이라...., (...) 천사와 악마가 함께 있는 아이. 어찌 보면 인간이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 (...) 우리 미카엘의 영혼은 인간이 심판할 수 없어요.(p219)
'해리성 정체성 장애 환자' 이것은 정신과 진단명이다. 한 사람안에 인격이 둘 이상인 다중 인격장애를 말하는 것이다. '천사와 악마가 함께 존재하는 ...' 선우와 미카엘, 그는 한 사람이지만 두 인격을 가지고 있다. 두 인격이 서로 모르는 인격처럼 독립적이기도 하고 서로의 인격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간섭을 하기도 한다. 두 인격은 타협적일 수도 있지만, 한 인격이 한 행동에 죄책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선우가 그 호수를 찾아간 것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운명이었을까? 작품속에서 우연과 운명을 이렇게 혼돈되어 존재하고 있다. 많은 이야기들이 우연인 것처럼, 아니 운명인 것처럼 이어지고 있다. 서인과 선우도 우연처럼 만났지만,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고 해야하는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서인이 쓰고 있는 소설속의 한 장면처럼~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처음에 그들은 자신들의 만남이 우연일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필연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서로의 과거를 이야기하다 보니 마치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의 그림자처럼 그의 인생 행로를 따라 살아 오게 된 것을 알게 된다. (p289)
이 소설은 이야기들이 그물처럼 얽혀 있어서 인연의 복선을 만들고 있다. 작가 역시 새로운 시도와 모험을 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작품은 운명적 사랑을 이야기하는 러브 스토리의 구도를 가지고 있지만 몇 건의 자살을 가장한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구도도 가지고 있다. 또한,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는 정신과적 병명이 동원되는 '천사와 악마의 두 인격'을 가진 심리적 구도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들도 많다. 운명적 사랑, 성폭력, 외도, 불륜, 살인, 자살, 미혼모... 이런 소재들도 곳곳에 산재되어 있어서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의 중요성은 두말 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인하여 출생부터 불행을 타고 나는 생명. 어린 생명은 화장실에 버려지고, 고아원에 가고, 해외입양을 가고, 비참한 폭력에 시달리고, 파양되고.....
출생시부터 시작되는 힘겨운 삶이, 살아가는 날들을 더욱 힘겹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대책없는 욕망이 새로운 불행을 거듭나게 만들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인의 한 마디
아이의 영혼에 어떤 상처도 주고 싶지 않아. (p340)
사랑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부모는 아이의 영혼을 상처받게 만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운명적인 사랑, 영혼의 사랑을 확인한 서인이기에 믿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에필로그는 너무도 슬펐다. 이 이상의 다른 표현은 모르겠다. '애절하고 처절한 사랑', 정말 슬펐다. 끔찍한 인간이지만 한없이 가여운 사람. 한없이 외롭고 고통스러웠지만, 사랑을 남겨준 사람.....
마지막 보았던 일곱빛깔 무지개처럼, 고운 추억을 남기고 갔다면 좋으련만.....
(tip : '4월의 물고기' : 선우의 생일인 4월 1일은 만우절, 프랑스의 만우절은 어리숙한 사람을 골라 골려주는 놀이가 있단다. '쁘와송 다브릴' 출생부터 신의 조롱을 받은 영혼으로 살 것 같은 예감이 들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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