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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딸의 부엌에서 글쓰기
차유진 지음.그림.사진 / 모요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선입견'이란?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중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른다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손녀딸의 부엌에서 글쓰기'를 읽게 된 것도 선입견이 많이 작용했다. 제목이 가져다준 느낌이랄까? 손녀딸의 부엌에서 글을 쓸 정도라면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의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간쯤을 읽어보니 글들이 참 맛깔스럽고, 지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그래서 집어들고 온 책이 바로 이 책이다. 후회하냐고? 아니다. 정말 흥미롭고 독특한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차유진은 그녀의 저서인 이 책보다 더 독특한 개성을 지닌 것이다. 미술대학교를 졸업하고, 공연, 음반기획을 하다가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미술공부를 위해서? 아니면 공연기획을 연구하기 위해서? 아니다. 요리유학을 떠난 것이다. 도대체 차유진은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 책 속의 글과 그림, 요리 사진, 그리고 요리까지 모두 직접 다 하였다. 참 잘 할 줄 아는 것도 많다.
그녀는 현재 푸드 칼럼니스트이며 2004년에는 요리책 '푸드러버를 위한 차유진의 테스트키친'을, 2009년에는 여행 에세이 '청춘남미'까지 출간하였으며, 이 책에 실린 내용의 일부는 '웹진 나비'에 이미 실렸던 글들이다.

그동안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 음식이야기가 나오는 장면들이 있었을 것이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정말 요리사못지 않은 묘사를 하기도 한다. 바로 차유진이 오랫동안 좋아하는 작가가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카페에서 활동을 하면서 그의 소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손녀딸에서 빌려온 닉네임이 바로 '손녀딸'이고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탄생한 것이다.
그녀의 독서습관은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생활화되어 있는데, 그녀가 읽은 책들속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의 소 주제들이 되는 것이다. 동화에서부터 우리나라의 현대소설들인 '흙' '운수좋은 날'.... 세계적인 고전인 '비곗덩어리' '오딧세이아' '달과 6펜스' '데카메론'....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에 나오는 음식에 관한 내용이 소개된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함께 그 음식들을 직접 만들어서 선보여주면서 친절하게도 레시피까지 실어 준다.
이 책을 읽다보면, 차유진의 '독서편력기' 아니면 '요리 편력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책에 대한 깊은 지식과 그당시의 상황들까지 살펴볼 정도로 넓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음식들은 물론 작품속의 음식만을 재현한 것이다. 거창한 일품요리라기보다는 '무밥' ' 샌드위치' '오믈렛' 같은 간단히 할 수 있는 음식들이 선보여진다.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된장 미역죽'이다. 생일날 아침 엄마에게 드시기 위해 선보여주는 '된장 미역죽'. 레시피를 보니 간단하다. 언제 한 번 해 먹어야겠다.

그녀의 어릴적부터의 취미였고, 일상이었던 사람그리기. 이 책의 그림들도 이렇게 수숫한 이미지의 그림이어서 더 정겹게 느껴진다.
책 속의 음식이야기를 찾아서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서 글을 쓰고,그림을 그리고, 그 음식을 만들어보고, 레시피를 실어주고 정말 독특한 발상이지만, 절대 아무나 할 수 없는 재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재다능한 그녀가 부럽다. 그런데 그림을 보니 저 정도는 나도 그릴 수 있는데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읽은 책들을 보니 나도 저 정도는 읽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음식들도 별다를 것없는 평범한 그런 음식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그것이 아니다. 어설프게 할 줄 아는데가 아니라, '손녀딸의 부엌엣 글쓰기'의 글처럼 되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이 어울려야 하고, 어설픈 풋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라, 잘 익은 포도주처럼 빛과 맛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손녀딸의 부엌에서 글쓰기는 맛깔스러우면서도 깊은 맛이 어우려진 그런 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