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중에 우리나라 독자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공중그네'일 것이다. '이라부'라는 권위의식을 벗어던진 독특한 캐릭터의 정신과 의사와 엽기스러운 간호사 마유미가 펼치는 정신과 병원안의 이야기가 코믹스럽게 그려져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지금까지 받고 있고, '이라부' 2탄이 '인 터 풀'이다. 그외에도 '스무살 도쿄', 최근 출간된 작품으로는 일탈을 꿈꾸는 30대 부부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형식으로 쓰여진 '오 해피 데이'도 읽는내내 공감이 가면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은 짧은 단편이거나, 내용이 길지 않았는데 비하여 '올림픽의 몸값'은 1,2편 각각 47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긴 장편이다. 또한 이 책의 특징은 '오쿠다 히데오'의 첫번째 서스펜스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이미 오래전에 흘러가 버린 역사속의 '도쿄 올림픽'을 시대적배경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도쿄 올림픽'은 1964년 10월 10일에 개최되었으니 벌써 40여년이 훌쩍 지나 버린 것인데.... 저자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도쿄 올림픽'에 관한 문헌, 영상, 관련자 인터뷰를 통해서 조사한 내용들을 토대로 하였으며, 이 소설에도 나오는 '소카지로 사건'이 정말로 있었는데, 이 사건을 소설의 장치로 씀으로써 폭발사건에 대한 내용을 좀더 리얼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저자가 이 소설에서 사용한 새로운 기법은 소설의 주요 인물인 세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시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1964년의 도쿄 올림픽이라는 세계적 행사를 바라보는 세사람의 시각을 두 가지 시점에서 쓴 것이다.
☆ 한가지 사건: 1964년 '도쿄 올림픽'
♡ 두가지 시제: 시마자키 구니오(과거시점)
스가 다다시 와 마사오 형사(현재시점)
♧세가지 시각 : 구니오, 스가 다다시, 마사오
戰後19년, 폐허속에서 19년만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었으니 일본은 가장 좋은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고 싶었고, 이것을 기회로 경제 도약도 꿈꾸었을 것이다. '도쿄 올림픽'을 2달 남겨둔 상황에서 경기장, 도로 공사, 고속철인 신칸센의 완성, 고층빌딩건설이 한창인 때에 도쿄 한복판에서 잇달아 일어나는 폭발사고를 둘러싼 이야기이다. 인력노동자인 형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가장 인텔리계층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 갔을 '시마자키 구니오' . 도쿄대학원 경제학도가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올림픽의 모습. 노동 현장의 노동자로, 야쿠자의 도박판에, 필로폰주입, 살인사건 그리고 이 소설의 핵심인 주요건물 폭파범까지....
구니오가 마침내 올림픽을 상대로 몸값을 제시한다.

이를 쫒는 형사 마사오. 그에게 비친 올림픽은 안정된 생활속에 올림픽 개막식날에 맞추어 태어날 둘째 아들까지, 기대되고 희망찬 행사로 비쳐질 것이다.
또한, 올림픽 경비 총 책임자인 경시청 경시감의 아들이지만 엘리트 집안에서는 별볼일없는 존재인 구니오의 대학 동창 스가 다다시. 그저 아는 대학동창이 폭발사건의 범인임을 알고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이 소설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각 장은 중심인물이 달라지는데, 마사오와 다다시의 이야기가 나오는 장은 현재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런데, 구니오의 이야기는 시점이 과거의 시점인 것이다.
이 소설이 서스펜스 작품이기때문에 폭파범이나 살인범에 대한 이야기를 쫒아가면서 범인을 찾아 보는 묘미는 그런 시점자체로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이다. 모든 상황이 앞부분에서 구니오가 올림픽에 동원되는 노동자들의 실태을 체험하면서 저지르는 사건이라는 것은 일찍이 밝혀둔 셈이다. 그러나, 뒤쳐진 과거시점의 구니오의 이야기을 읽게 되면서 독자들은 구니오의 심경에, 행동에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중에 현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부분중에 구니오가 형의 유골을 가지고 고향에 갔다가 만난 아주머니가 소식이 끊긴 남편를 찾아보길 원해서 찾아가니, 새 아내와 행복하게 살면서 자신이 행동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건설 노동자로 도쿄까지 와서 돈벌어 집에 부치고 자신은 일하는 기계처럼 살았는데, 이제 사랑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된 모습에서 느껴야만 했던 마음. 피로에 찌들어서 필로폰 과다 투여로 죽은 노동자의 아내가 남편의 장례를 거행하러 와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하면서 담담하게 있다가, 도쿄에 평생 언제 오겠냐며 도쿄타워와 황궁 관광을 하는 모습, 그리고 돈까스를 먹으면서 고기가 이렇게 두껍다고 하는 모습은 상식적으로는 남편의 유골앞에서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으나, 힘든 삶을 살아온 그녀의 행동이 더욱 슬퍼 보이는 것이다. 나는 평상시에 거대한 문화 유산들을 보면서 그 웅장함에 찬사들을 보낼 때에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 뒤에는 얼마나 견디기 힘든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이 있었을까? 특히, 왕정시대에는 그 무모함이 극에 달하지 않았을까? 찬란한 궁정과 성당들을 볼 때도 헐벗은 국민들의 무거운 세금이나 헌금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올림픽의 몸값'역시, 그런 구니오의 생각이 수긍이 간다. 점점 더 깊숙하게 어두운 곳으로 가라앉고 있는 것같은 구니오는 과연 '올림픽의 몸값'을 받아 낼 수 있을까?
모든 범죄의 윤곽이 나타나고, 공안부와 경시청, 다다시까지 쫓고 있는 상황에서 구니오는 앞으로 어떤 행보를 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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