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슬리퍼를 신은 남자
벵상 드 스와르트 지음, 오영민 옮김 / 세계사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옮긴이가 말하기를 '이 소설은 뻔뻔하고, 참아주기 힘든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읽는 이마저도 뻔뻔하고 능청스럽게 만드는 우리의 속 이야기이자, 여러모로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p267) 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읽어보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황당하고 민망한 내용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작품이다.

저자인 '벵상 드 스와르트'는 프랑스 작가로 아동소설인 '바다의 회전목마'로 데뷔한 후에 소설 및 콩트 등을 여러편 발표했다.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평은 다음과 같다.

'매혹적인 문체를 통해 탐정소설과 역사소설이 표방하는 기존의 형식들을 전복시킨' 소설가라는 평을 받는 그는, 기발한 상상력과 전복적인 글쓰기에 뛰어난 작가이다. 특히 여러 신화들과 타 장르들을 소설의 주요한 소재로 즐겨 사용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작가소개 글 중에서)

'아내의 슬리퍼를 신은 남자'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작품세계는 확실히 기발한 상상력이 물씬 풍겨난다. 이 소설은 자전적 소설형식을 빌린 환상소설이다.
주인공은 바로 자신의 이름과 같은 벵상, 그리고 직업도 전에는 광고 카피라이터, 지금은 소설가. 읽는 독자들은 그의 소설이 어디까지가 작가의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가 소설인지가 혼동될 정도로 능청스럽게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써내려 간다. 아니, 어느정도는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소설의 모티브는 아리스토파네스의 <반쪽 신화>이다. 인간이 네 다리와 네 손을 가졌었는데, 둘로 분리되어 자신의 반쪽을 찾는다는...
벵상이 말하는 '그 사건'이후에 벵상은 성이 바뀌어 간다. 점점 여성이 되어간다.
기발하기보다는 황당하다고 해야 할 상상력이 아닌가?
아내에게 언제까지 숨길 수 없는 상황에서의 절망감과 잃어버릴 사랑에 대한 생각들에 힘겨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지만, 의외로 그 절망은 희망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벵상이 이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소설의 프랑스판 원제는  "Elle est moi(엘 레 무아;그녀는 나)"인데 문장의 발음이 "Elle et moi(엘 에 무아;그녀와 나)"의 발음과 간혹 혼동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그녀는 나" 또는 "그녀와 나" 의 중의적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그녀가 되는 이야기, 또는 그녀와 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벵상의 재치가 엿보이는 제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중에는 주인공 벵상의 나이는 자신의 나이인 마흔살이다. 그러면서 평균적인 통계로 볼 때에 자신은 인생의 중간정도를 살아 왔음을 여러 차례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족력인 암에 대한 이야기도... 어머니와 그 윗 세대에서 부터 내려오는 암의 가족력.
그런데, 역자가 이 소설을 번역하던 2006년에 저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마흔 두 살의 젊은 나에로, 급성암 후유증으로. 그래서 결국 이 소설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그의 유고작이 되었다고 하니, 인생의 무상함이 여기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2005년에 프랑스에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에,평단은 '기괴한 상상력과 휴머니즘의 결정체'라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이중의 찬사를 바쳤다. (p269, 옮긴이의 글중에서)
프랑스의 문단의 반응처럼,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자서전적 소설형식을 비린 환상 소설이라는 생각에 접하게 된 독자들에게 이 책을 읽는 것은 당황스러우면서도 뻔뻔함이 있어야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벵상이 이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한 것을 확실하게 잡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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