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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 / 김영사 / 2009년 7월
평점 :
'사과'의 맛을 표현할 때 상큼하다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런데, 내 기억속의 사과는 참 다양한 맛이었다. 겨울이면 창고방에 사과가 몇 궤짝씩 있었는데,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는 품종이었다. 껍질까지 부드러우면서 연노랑색이었던 골덴사과는 나이드신 분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맛으로 과질까지 부드러웠다. 껍질색이 푸른색이면서 과질은 딱딱하지만 달작지근했던 사과, 그리고 빨간 사과인 홍옥은 신맛이 많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외에도 스타킹이라는 사과도 생각이 난다. 이처럼 같은 사과인데도 그 맛은 어린 입맛에도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사과밭을 본 것은 봄에 떠난 수학여행길에서 기찻속에서 보았던 경상도 지방의 사과밭.... 아름다운 하얀 꽃들이 온천지를 수놓은듯 아름다웠다.
그런 추억속의 사과에 대한 단상을 떠올리면 '기적의 사과'를 읽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기무라씨의 이야기는 2006년 12월에 NHK '프로페셔널 - 프로의 방식'이란 프로그램의 '사과 농가 기무라 아키노리 씨'편으로 방영된 이야기를 논픽션 작가인 '이시카와 다쿠지'가 취재하는 형식의 글로 기무라씨와의 대화 내용이 그대로 실리기도 한다. 기무라씨는 책날개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앞니가 빠진 채로 웃는 모습니다.

'잘 웃는 기무라 씨'
지금은 그의 사과밭에서 생산된 사과는 작고 볼품은 없을지 몰라도 어떤 사과보다도 단 맛이 강해서 판매 개시 3분만에 품절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맛이 문제가 아니라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농약가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기무라씨의 사과밭에는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은 사과들이 달려 있으며, 그의 밭에는 수많은 벌레들이 살고 있으며, 개구리가 알을 낳고 새들이 지저귀고, 나비와 벌들이 날라다닌다.
바로 이 사과밭에서 나온 '기적의 사과'는 기무라씨가 자신의 30년 세월을 고스란히 바쳐서 이룩한 성과이며, 가족들의 희생이 담겨있는 곳이다.
아마도, 우리들이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과일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과일들과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배와 사과가 그럴 것이다. 사과를 보고는 왜 이렇게 작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 볼 것이다. 그것이 바로 품종개량이 안 된 사과이기때문이다. 농업기술의 발달을 품종개량이라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만큼 농사짓기 힘든 상황을 만들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19세기를 전후로 그이전의 사과와 그 이후의 사과는 전혀 다른 사과이다. 윌리암 텔의 사과, 뉴튼의 사과와는 다른 크고 윤기나고 단 맛의 사과로 개량되었지만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다량의 농약과 비료가 필요한 것이다. 개량된 사과는 무농약으로 재배를 하면 2년이면 사과수확이 제로 상태가 된다.
그런데, 바보 기무라씨는 무농약, 무비료로 사과를 재배하기 위해서 자신과 가족들의 희생을 사과밭에 받친 것이다. 품종개량된 사과는 병충해와 벌레에 약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사과밭에서 벌레를 하나 하나 잡는 일을 계속했으며, 각종 실험을 통해서 병충해를 막으려고 했지만 번번히 실패로 돌아간다.
기무라씨의 네군데 사과밭에는 800그루의 사과나무가 있었는데, 그중에 400그루가 죽게 된다. 너무도 혹독한 현실에 죽기로 결심하고 산에 올라 자살할 끈을 나무위로 던지나 잘못 연결되고 그 순간에 그의 눈에 비친 '달빛 아래에 사과나무가 서 있었다.' 그건 도토리나무의 환상이었지만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나무를 덮고 있는 무성한 잡초.... 거기에 답이 있었다. 그는 사과나무만을 보았지, 흙을 보지 않았던 것이다. 잡초가 땅을 부드럽게 만들고, 나무는 그 부드러운 빵에 뿌리를 깊이 내려 튼튼한 사과나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유지시키자. 그후 3년의 세월이 흐른후에 12그루의 나무에 7송이의 사과꽃이 핀다. 그 사과꽃은 2개의 사과가 되고.....
그후 9년만에 기무라씨의 사과밭에는 사과꽃이 만개한다.
누군가 말했던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루어진다'고....
이 책은 기무라씨의 이야기를 취재하는 과정이 그대로 대화와 함께 실려 있는데, 취재기자는 독자들에게 무리하게 감동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가감없이, 때로는 기무라씨의 대화를 통해 투박하게 그대로 적어 나가고 있다.
인간은 얕은 사람의 생각으로 얼마나 많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가?
곱고, 아름답고, 크고, 맛있는 것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파괴하고 있는가?
기무라씨의 사과나무에 대한 열정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나무만보고 뿌리를 보지 못하는 오류를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행하고 있느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아야 한다.
자연의 생태계가 홀로 형성되지 않듯이 인간의 삶도 그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주변 자연과의 어울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9년만에 만개한 사과꽃. 그것이 기무라씨의 역경의 끝은 아니었지만, 성공으로 가는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기무라씨가 30년의 세월을 바쳐 이룩한 무농약 사과, 이것은 자연과 사과나무, 그리고 인간의 합작품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가족들의 가난과 희생이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흔히,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삶에는 가족의 희생이 있듯이, 기무라씨가 지쳐서 이제 그만두려고 할 때에 자녀가 한 말 한마디가 마음을 울린다.
기무라씨의 행동은 집념일까? 아니면 왕고집일까?
'이제 포기할까? 아버지의 말에 딸은 반응한다. '그건 말도 안돼, 우리가 뭣때문에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데!' 그 한마디로 아버지는 느낀다. 아버지의 꿈이 딸의 꿈이었다는 것을 ~~~
수없는 실패와 끝없는 헛수고에도 견딜 수 있었던 기무라씨와 같은 바보가 이 세상에는 몇 명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 희생이 너무도 엄청나기는 하지만, 바보가 있기에 세상은 새롭게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