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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방으로 들어간다
니콜 크라우스 지음, 최준영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니콜 크라우스(1974년 1월 1일생)는 스탠퍼드대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학을 거쳐서 영국 코톨드 미술학교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뉴욕 문단에서는 '분더킨트(문학신동)으로 통하기도 하며 2002년 그녀의 처녀작인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로 'LA타임즈'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촉망받는 작가로 주목을 받게 되고, 두번째 작품인 '사랑의 역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흔히들 작가의 처녀작은 그 작가가 앞으로 작품에서 보여줄 소설의 크기와 상상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바로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가 그런 경우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이 작품에서 하려고 한 듯한 인상이 든다. 그것은 소설의 독특한 설정들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하기때문이다.
이 작품은 기억상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주 많은 이야깃거리로 등장하는 설정이지만, 니콜 크라우스는 특이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이 작품의 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의 작가들은 이러한 설정이라면 단순한 기억찾기 아니면 기억속의 사랑이야기로 전락해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뉴욕에 살고있는 문학 교수인 샘슨은 어느날, 사막지대인 머큐리 골짜기에서 발견된다. 그를 발견한 경찰은 운전 면허증과 너무도 다른 몰골때문에 그가 과연 샘슨그린일까 의아해 할 정도로.... 그것은 컬럼비아대에서 브로드웨이로 향하는 모습이 발견된지 여드레만의 일이다. 왜 샘슨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네바다주의 이름 모르는 곳에 가게 되었는지 모른다. 의사의 진료결과, 그의 뇌에는 버찌만한 종양이 있어서 수술을 해야 한단다. 수술결과 샘슨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13살이전의 유년기 기억들만이 남아 있으며, 수술후의 모든 기억들은 기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샘슨은 13살이 아닌, 36살의 남자이다. 텅비어 버린 24년의 기억은 송두리째 없어진 것이다. 만약에 종양이 조금만 위치가 달라졌어도 샘슨은 자신의 이름까지도 상실해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샘슨이 불행중 다행인지, 아니면 그것이 불행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샘슨이 기억하는 것은 3살때 자신과 어머니를 놔두고 어디론가 떠나던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어머니와의 유년시절의 기억만이 존재한다. 아내인 애나 역시 기억할 수가 없다. 샘슨에게 자신이 처해 있는 지금의 상황과 자신이 느끼는 것은 과연 샘슨의 실체일까? 많은 혼돈에 휩싸인다.
샘슨이 24년이라는 시간을 잃어버렸다기 보다는 시간이 샘슨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분명 자신은 아내를 사랑했기에 결혼을 했을 것이지만, 그런 기억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기억속의 어머니는 암으로 5년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그때의 샘슨은 어떤 심정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머니의 죽음은 "마치 자신이 어머니를 내버리고 낯선 사람이 어머니를 기억하도록 한 것처럼 죄책감을 불러 일으켰다. " (p55)
아내와는 샘슨이 26살이던 시절에 만났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1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했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추억조차 없다. 처음에 아내는 남편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하지만,샘슨은 어떤 기억을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그래서 이 소설의 설정이 '기억의 일부 상실'이라는 소재이기는 하지만 타 소설과의 차별화가 느껴진다.
샘슨이 구태여 찾으려 하지 않는 24년의 상실의 기간은 그에겐 어떤 의미일까?
'그는 꽤 시간이 흘러, 잊는다는 것이 어떤 일이지 다시 배웠을 때 이것은 애나에게 설명하려고 했다.(..) 기억과 그 반향 모두의 제거였고, 그것을. 그러니까 후회의 결핍을 애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마음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할 수 있겠는가? '상실'조차도 정확하지 않은 묘사였다. 잃어버렸음을 모르는 상실이 무슨 상실이겠는가? (p27)
잃어버린 줄 모르는 상실이 무슨 상실이겠는가.... 샘슨에게 텅비어 버린 24년의 세월이 그에게 무슨 의미이겠는가?
그런데, 찾지 않은 과거때문에 샘슨은 외롭고, 고독하고, 세상으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영원한 것'이라고 믿어 왔던 아내로부터도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샘슨이 잃어버린 그 세월속에 공산주의는 붕괴되었고, 주지사였던 레이건은 대통령이 되었고, 존 레넌은 사망했으며, 양의 복제가 이루어 졌다. 그리고, 과학은 날로 발전되었다. 문학 전공이었던 샘슨은 왠지 과학에 관심이 생긴다. 우주비행,핵폭발과 같은 것에도....
작가의 상상력은 훅 뛰어 넘어서, 과학을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기억상실'에 대한 또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는 또다른 세계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어느날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샘슨은 로스앤젤레스의 레이 말콤를 찾아 간다. 의사이지만 신경과학을 연구하여, 과학의 경계를 넓혀간다는 그의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사막 한가운데의 클리어 워터라는 곳에서의 샘슨의 뇌를 이용한 실험....
레이가 샘슨을 연구대상으로 삼게된 이유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는 그의 뇌를 가지고 마음대로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것. 샘슨을 극단적인 과학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기억의 전이' 아주 강한 기억을 주입시키는 것이다. 44년전에 일어났던 역사속의 한 순간을, 다른 사람이 겪었던 기억과 충격을 전이시키는 것이다.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을 때, 레이는 떠나고 없었다.
지금까지 샘슨이 뉴욕에서 거리를 방황한 것도, 무엇인지 모르는 실마리를 쫓아서 사막까지 와서 프로젝트의 대상이 된 것도, 샘슨이 다시 어디론가 가기 위한 여정이었을 것이다. 과거를 잃어버렸지만, 태연하게 자신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부담스러웠기에 떠나야만 했지만, 지금은 다시 돌아가야 한다.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자신의 존재를 찾아 가야 할 것이다.
그곳은 유년기의 기억이 그대로 살아있는 어머니의 품일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억이 없다. 아내가 아닌 사람중에 어머니의 묘를 아는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겨우 찾은 어머니는 유년기를 함께 지냈던 자신의 집 나무밑에 한 줌의 재로 뿌려져 있는 것이다. 샘슨이 그곳을 찾은 것은 '자아를 찾아' 먼 길을 돌아 온 것이다. 그리고, 또 만날 사람은.... 아내. 애나. 바로 애나.
그녀에게 말하리라 '그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녀가 충분히 가까이 오도록 할 수 없다고 느꼈고, 그녀를 알기 위해 그는 상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취를 감추었다, 그녀에 대한 사랑에 영원히 다다를 수 없다는 불가능에 좌절했다는 것을...
"그녀에게 묻지 않은 것이 너무나 많았고, 그의 마음에 무언가를 소리쳐서 그녀를 다시 붙들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순간은 그에게서 이미 달아나 버렸고 그는 그것에 사랑할 힘이 없었다. (p376)
'그는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고, 비를 막기 위해 얼굴을 구스린 채 여는 사람들처럼 과거를 가진 사람이 되어 걸어갔다. " (p376)

샘슨이 되찾으려고 하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들, 그것은 지금의 샘슨이 있게 해 주었던 모든 소중한 부분들이었다. 그런데, 왜 샘슨은 기억을 찾기를 거부했을까?어쩌면 기억의 파편들이 두려웠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이 때론 과거을 잊고 앞으로만 나가고 싶어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나의 모습과 과거에 상실했던 모든 것들도 결국에는 내 존재의 일부인 것이다. 그런데, 그 과거를 망각해 버린다면 온전한 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뒤늦게라도 샘슨이 자아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어머니를 찾아가는 것이나, 아내를 만나게 되는 것이 샘슨에게는 좀더 희망적인 미래를 말해 주는 것이 될 것이다. 샘슨에게는 아내라는 존재가 이제는 좀더 크게 부각될 수 있을 것이며, 결말이 명쾌하게 끝맺음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운을 남겨 둠으로써, 샘슨이 고독함에서 벗어나 아내와의 함께함에서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세상이라는 큰 문으로 빨리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마음도 갖게 되는 것이다. 작가가 젊은 여자임에도 과학적인 소재를 이야기속에 끼워 넣어 새로운 감각의 작품을 만들려고 한 것이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를 좀더 폭넓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