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눈물
김정현 지음 / 문이당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우리 시대의 '아버지'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언젠가부터 가정과 사회로 부터 소외당한 쓸쓸한 뒷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위풍당당하고 권위적이던 아버지들이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 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작품으로는 조창인의 '가시고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IMF 시기의 경제적 위기와 함께 나온 작품으로 많은 독자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불러 일으켰었다. 그런데, 그이전에 벌써 소외된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졌던 작품이 김정현의 '아버지'였다. 1996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췌장암에 걸린 아버지가 가정과 사회로 부터 소외된 상태에서 자신의 시한부 인생을 정리해 가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깝고 슬프게 다가왔었다. 그리고, 아버지들이 왜 이토록 소외당하고 있는지, 가정이란,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작가 김정현이 또 다른 아버지의 이야기로 우리들을 찾아 왔다. 작가인 김정현은 전직 경찰관 출신이라는 약력부터가 특이하여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는데, 이미 1991년에 '함정'이라는 작품으로 등단을 했다.
그의 새로운 작품인 '아버지의 눈물' 이 시대의 아버지, 특히 50대의 아버지에 포커스를 맞추었다고 보면 된다. 50대의 가장들의 삶은 사회적으로 평탄하지 않았던 시대의 사람들이다. 윗 세대는 한 가정을 이끌어 가는 권위적이고 당당하고 때론 옹고집스러운 아버지들이어서, 그 밑에서 순종적으로 기도 못 펴고 살았고, 학창시절에는 사회적으로 불안하였으며, 그들이 가장이 되어서 자식들을 거느렸을 때에는 아버지는 자식들의 좋은 입지를 만들어 주기위해서 모든 것을 무한정 베풀어야만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쓴 '아버지의 눈물'은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주인공인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의 탓일지도 모르는 제 능력과 처지는 생각지도 못하고 정치학을 전공한다. 대기업, 고시에 미련을 가지기도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고, 그저 저도 안되니까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학 학위를 받고 어떤 기회에 정치에 뜻을 두었던 백박사의 선거를 돕다가 겨우 그의 사무실의 국장이라는 허울뿐인 자리를 얻게 된다. '인생은 제 의지나 땀보다는 흐르는 세월이 결정 짓는 경우가 더 흔했다.'(P30) '스스로 인생의 뚜렷한 목표 조차 없지 않았던가(...) 허황된 꿈에 젖어 오래도록 자신과 가족 모두의 인생에 그늘을 지웠다. (P34)라고 생각할 정도로 삶의 목표도, 경제적 능력도 없는 그저 그런 소시민인 것이다. 아내 역시 대학까지 나왔지만 결혼초 남편이 공부를 할 때는 친정의 도움을 받고, 지금은 적은 월급으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면서 자식 뒷바라지에 악을 쓰는 평범한 주부인 것이다.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곱고 우아하고 당당하고 싶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아하고 당당하기는 커녕 짐스러운 존재가 된 듯 싶었다. 자식에게 까지 짐으로 여겨지고 경원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는 더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짐이 되기를 원하겠는가.죽는 그 순간까지 도와주고 나눠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P196) '짐이 되다니, 정녕 억울한 소리다. 오히려 짐이 되지 않으려고 더욱 애태웠었다. 솔직히 조금은 대리 만족을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는 못했지만 너는 제대로 일어서, 내가 네 이름으로 세상에 당당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그토록 부담이 되고 바라면 안 되는 일이란 말인가.'(P197) 이들에게는 대학생인 두 아들이 있다. 아내는 장남의 지방대 진학으로 상심하고, 차남의 뛰어난 학업 성적에 기대에 부풀어 고시 뒷바라지를 한다.그녀의 남편을 향한 잔소리는 흔히 TV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남편의 권위를 비롯하여 경제적 무능력까지를 비웃는듯한 소리들이다. 남편과 장남을 향해서 퍼붓는 잔소리가 그들의 마음에 상처로 꽂힌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것은 남편의 어머니의 경우가 틀리지 않았다. '어머니도 평생을 그랬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입에 달고 살았다. 때로는 아버지의 허황함과 무능보다 어머니의 그악스러운 말들이 더 상처가 되기도 했다. 가끔 그 원망이 자식들에까지 이어질 때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핏줄인 것 같은 자괴감에 몸서리쳤다.(...)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을 것 같은 그 말의 칼날들이 자식의 가슴과 영혼에 씻을 수 없는 흉터가 되다는 것을 어머니는 정녕 몰랐을까. 어머니는 그렇게 당신의 서러운 희생을 스스로 빛바래게 했다. ' (p106) 그렇다. 아내의 모습은 자식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누리려는 그런 모습이다. 남편의 향한 거침없는 잔소리와 차남에 대한 지극한 관심이 이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장남의 군복무후의 대학 포기후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생각과 이런 환경속에서 고시를 준비하는 차남의 이기적인 행동들이 그려진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주인공의 누나의 집은 한결 안정되고 행복스럽다. 비록 동생 뒷바라지로 학력은 높지 않지만 동네어귀에서 떡볶기, 어묵을 팔면서 누나의 남편은 가락시장에서 양파를 중국 음식점에 배달하는 일을 하지만 자식들은 학력이나 행동이 올바르고 정겨운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었을까. 허황된 꿈일지라도 목표조차 없었던 세월의 흐름에 그저 흘러 갔던 아버지의 인생관과 가치관과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그런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장남의 허황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꿈인 카레이서, 카 디자이너, 내차를 만들고 싶어서 카센터부터 시작하겠다는 발상이나, 장남의 여자 친구인 수경이 고객들에게 자신이 선택한 메뉴의 음식만을 그날 그날 만들어서 파는 레스트랑을 하겠다는 꿈을 향해 가는 모습이 어쩌면 더 미래지향적일지도 모르겠다.



한가닥 남은 자존심때문에 부도덕한 행동을 하고 참회의 눈물을 흐르게 됨으로써 가족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는 것이 해피엔딩이기는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작품을 한 마디로 이야기한다면 '투박한 질그릇'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의 소재나 주제, 그리고 구성이 너무도 단순하다. 복선이 깔린 갈등 구조가 없어서 그냥 읽으면 그대로 이야기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섬세한 심경묘사나 장면 묘사도 없어서 너무 단조로운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아름다운 도자기'가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갈 곳없이 떠도는 쓸쓸한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단상들이 떠오른다면 한 번쯤 되짚어 본다는 의미가 있는 소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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