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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 - 그리며 사랑하며, 김병종의 그림묵상
김병종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김병종의 그림을 가장 먼저 본 것은 '나의 생명이야기'에서 였다. 한때 인기 절정이던 황우석, 최재천, 김병종 공저로 나온 책인데, 그 책의 그림들이 읽는 맛을 더해주었다. 그이후에 '화첩기행'이 4권 간행되고, '김병종 라틴 화첩 기행'이 출간되어서 그의 그림에 끌려서 모두 읽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림뿐만아니라, 글솜씨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미 김병종은 자타가 인정하는 글쟁이(?)였던 것이다. 그는 젊은 날에 두 곳의 신춘문예에 당선한 경력도 있고, '대한민국 문학상'도 수상한바가 있다. 이 책에도 그의 문학청년시절의 이야기나, 명작이라고 손꼽히는 세계적인 작품들에 대한 글들이 언뜻 언뜻 소개되기도 한다.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이며, 국내외에서 20여 차례에 걸친 개인전도 열었던 한국화가이기에 그림 솜씨는 글솜씨 몹지 않게 더욱 대단하다.
이 글을 읽어 나가다 보면 작가의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는데, 연작 시리즈가 많이 있다. 그의 근래의 작품들은 캔버스 또는 닥판에 한지를 소재로 하여 먹과 채색을 한 동화적인 듯하면서도 아름답고 밝고 환한 그림들이 많이 소개된다. 덧칠을 한듯한 꺼칠꺼칠한 질감까지 느껴지는 그림들이다. 아마도 이런 그림들이 사람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의 초기 작품들은 이렇게 밝지만은 않았으며, 예수를 주제로 삼아서 연작으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바보 예수' '흑색 예수' '황색 예수' '우는 신' '눈물' '육은 메마르고'등....
천천히 읽으면서 그의 미술세계까지 감상한다면 책 한 권으로 두 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이야기와 좋은 그림 감상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이 책은 '그리며 사랑하며, 김병종의 그림 묵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김병종의 그림과 함께 그동안 국민일보에 실렸던 글들을 모아서 엮은 것이다.
1장 : 당신이 그리신 아름다운 세상
책에서 작가가 말하는 '당신'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곧 예수님을 일컫는 말이다. 그동안 작가는 많은 곳을 여행하였다. 우리들이 흔히 갈 수 없는 라틴아메리카, 사하라사막, 히말라야 산, 키르기스스탄 등을 돌아 보면서 하나님이 곧 大예술가임을 이야기한다. 에게해의 물색이 사무치게 아름다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는데 카리브해에 가서는 황홀경에 빠지고 만다. 카리브해의 고요한 바다앞에서 깊은 신앙심에 도달하고 그 신비한 바다색 앞에 무릎을 꿇고 싶은 심정이라는 표현을 쓴다. 가만히 귀기울여 보면 바다에서 숨쉬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할 정도로 얼마나 자연이 아름다운지, 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한동안은 '물'을 소재로 그린다. 그뿐이 아니다. 물이 뒤적이고 물이 옹알대는 소리도 들리고 바람끝에 실려 오는 독특한 향기까지 느껴지는 작가이니 그의 글이, 그의 그림이 어떻게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물에 경이로움을 느끼면서 인간의 탐욕이 자연을 망가뜨리고 그위에 깃든 생명을 훼손함을 안타까워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가득찬 글들을 모아 놓았다.
2장 : 내가 그린 당신의 얼굴
그의 작가의 젊은 날, 즉 80년대의 산물이 바로 '바보 예수'시리즈이다. 석양에 물든 캠퍼스를 내려오던 어느날 최루 연기 가득한 허공에 불현듯 솟아오른 그림이 바로 '바보 예수'였다. 번쩍! 하고 떠오른 그 예수의 얼굴에 붙잡혀 나는 그 후 십여 년 세월을 그리고 또 그렸다. 그 산발한 혹은 피투성이가 된 그이의 얼굴을. 외롭고 때로 쓸쓸한 그이의 얼굴을. (p83)
2장은 꼭지 제목 밑에 성경구절이 한 구절 실리고 그에 걸맞는 자신의 작품이 소개되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글의 꼭지와 꼭지가 연결되는 듯이 이어진다. 이 시절에 그린 그림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가시관을 쓰고 손과 발에 못이 박혀서 흘리신 피처럼 어둡고, 人子(예수를 사람의 아들로 표현한 말) 의 고뇌의 모습들이 많이 비친다. 그리고 작가는 꼭 예수를 잘 생긴 외모의 백인이 아닌 흑색 예수, 황색 예수, 우는 신 등으로 표현한다.

3장 : 당신과 함께이기에 나 평강 누리리라
2장과 마찬가지로 성경구절과 자신의 그림, '당신과 함께이기에 나 평강 누리리라'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릴적부터의 예수님과의 인연들을 이야기한다. 어릴적에 아버지를 일찍 여위고 예수, 그분을 '나의 왕' '나의 아버지' 나의 친구'로 생각하고 성장하였음을 고백한다. '어린 시절이후 외롭고 힘들 때마다 막연히 하늘을 보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 왠지 그분이 나를 바라보시고 함께 걷는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아버지를 상실한 아픔을 예수 그분은 메워주셨다. 그분은 내게 실존이었다. 성당이나 교회당에 모셔져 내 외롬움이나 슬픔과는 아득히 먼 백인 남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p140) 그래서 항상 작가에게는 예수 그분이 그림의 주제이고, 삶의 모든 것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4장 : 당신이 빚으신 사랑의 선물
젊은 날에 신림동 난곡지역에서, 봉천동의 달동네에서 살았던 기억들과 함께 자신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가장 먼저 그 곳을 찾으시리라 생각해 본다. 이 세상은 그 분이 빚으신 사랑의 선물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도 한다.

길지 않은 문장들이 작가의 손끝에서 아름다운 글로 변하여 우리들의 마음속에 들어온다. 많은 여행을 하면서 접했던 자연의 경이로움도 그림으로, 글로 변하여 우리에게 다가온다. 비록 미술관에 전시된 작가의 그림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화풍의 변화도 느낄 수가 있다. 화가이면서 글솜씨가 뛰어난 그가 이 책을 통해서 남기는 소중한 말은 작가에게 '색채는 나만의 기도이고, 붓질은 나만의 찬송입니다. '이다.
그림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나, 신앙을 가지신 분들은 오래 오래 생각이 날 때마다 꺼내서 읽으면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