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좋은 날이 따로 있느냐 - 영원의 숲으로 떠나는 아주 오래 기다린 여행
정휴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저자는 정휴스님이다.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으로 등단하였으며, 장편소설 '슬플 때마다 우리 곁에 오는 초인'이 있다. 책의 부제가 '영원의 숲으로 떠나는 아주 오래 기다린 여행'인데, 여기에서 여행이란 죽음을 의미한다. 즉, 수행자들의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과 죽음에 대한 깨우침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휴스님은 10년전 설악산에서 자신이 이 세상에 머물 시간이 많지 않음(삶의 일몰이 시작되고 있음)을  깨닫고 죽음에 대한 화두를 들고 명상하고 고민하다가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책의 주요 내용들은 생사를 초월하여 열반의 참 자유를 얻은 중국과 한국 선사들의 입적 과정이 담겨져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수행자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였는지 기록된 '전등록'의 기록을 중심으로 선사들의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 죽음후의 처리 문제 등을 쓰고 있다. 아마도 스님들의 죽음의 모습으로 '등신불'을 많이 생각할 것이다. 스님들의 죽음은 예사롭지가 않아서 누워서 죽음을 맞이하기 보다는 죽음을 입체적으로 연출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대중들에게 말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죽음을 맞이하거나, 제자들에게 미리 자신이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관계화상은은 일어서서 일곱 걸음을 걸어 나가서 입적을 하셨다고 한다. 중국의 등은봉 선사는 물구나무 서서 입적을 했다니,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죽음앞에 슬픔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죽음의 미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관에 미리 들어가서 입적하신 선사도 있다고 한다. 적멸(죽음)을 받아들이는 제자들의 모습도 슬픔보다는 새로운 길을 떠나시는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전등록'에 기록된 선사 17명 중에 대부분 화장을 했지만, 매장을 한 경우나, 몇 년동안 석실에 안치했을 경우에 육신은 사라졌을지라도 그곳에서는 향기가 났다는 내용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17분중에 지암선사는 수장을 한 유일한 선사이신데, 자신의 육신을 물고기들의 밥으로 바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처럼 죽음후에 자신의 육체를 거두지 말고 산짐승, 벌레, 곤충들의 먹이가 되기를 원하신 분들도 상당수가 있으며 죽은후에 자신을 위한 부도와 비를 세우는 것을 극구 말리신 분들이 계신데, 이것은 청빈하고 검소한 생활의 수행자의 참다운 모습일 것이다.


이처럼 죽음에 대해서 당당하고 여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범사에 감사하고 자연과 하나될 때에 죽음은 더 이상 낯설고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삶의 한부분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죽는 일도 영원한 회귀의 눈으로 보면 삶의 한 과정이다. 누구나 삶에 집착하지 않을 때 풍요를 누릴 수 있다. 삶이 풍요롭기 때문에 죽음이 이토록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p54) 그래서 죽음앞에서는 끈적끈적한 절망감이 있지만, 초탈의 여유때문에 선사들의 입적은 오히려 희망적이고 슬픔이 반감된다. (p78)
정휴스님의 글은 아주 잔잔한 풍경화를 보고 있는 듯이 여유로우면서도 섬세하고 아름답다.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글들의 내용은 속세의 욕심과 집착을 버리기를 일깨워주신다. 속세의 모든 것을 훌훌 벗어 던지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인생의 마지막 여행 준비를 마친 스님의 글이기에 감동적이고 삶의 지혜가 묻어난다. 또한, 이 책에는 선사들의 '임종게가 소개된다. '임종게'란 스님들이 엄숙한 죽음에 이르러 가까운 제자들에게 직접 전하는 마지막 한마디를 이야기한다.

 

청빈하고 검소한 생활의 참다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수행자들이 종파싸움, 자리다툼, 화려한 법당, 풍요로운 생활에 정휴 스님은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으신다. 참된 자아 실현을 위해서는 자기를 비워야함을 강조하신다. 장삼 한 벌에, 발우 만 있으면 족한 것이 수행자의 생활이라고 일깨워 주신다. 정휴스님께서는 경통선사의 다비식을 직접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래된 다비장에 서서 독백을 하셨다. '삶과 죽음, 그리고 열반이란 무엇인가?'하고....
이건 '남아 있는 인생이 겨울 해처럼 작아진' 스님 마음속 깊은 물음이었을 것이다. 일초일목을 절대가치로 인식하는 안목앞에는 죽음은 삶의 종말이 아닌 허탈의 자유(p120)인 것이다.

책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영원의 숲으로 떠나는 아주 오래 기다린 여행' 관한 이야기이기에 처음부터 숙연한 마음으로 읽게 된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단상들도... 그리고, 불교 법문, '전등록'의 내용, '임종게'의 내용이 나오기에 글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차분하면서도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하듯이 읽어 내려가게 된다. 그러면 그 글귀속에 모든 진리가 들어 있고, 삶의 지혜가 들어 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보고 삶을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한다.
그리고, '최인호의 인연'에 사진을 실어 주셨던 사진 작가 '백종하'님의 사진들이 나름대로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듯해서 읽으면서 눈길을 끈다. 사진첩만으로도 두고 두고 꺼내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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