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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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정이현은 '오늘의 거짓말'(2007)과 신문 연재소설이었던 '달콤한 나의 도시'(2006)로 잘 알려져 있다. 제1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2002), 이효석 문학상(2004),'현대문학상(2006)을 받을 정도로 다채로운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너는 모른다'는 작가의 두번째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았다. 그것이 전부다."라는 말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책의 첫 문장의 '시간'에 대한 묘사부터 예사스럽지가 않게 세심하게 공들여서 쓴 흔적이 묻어 나는 것이 쉽게 쓴 글이 아니라는 짐작을 하게 만든다.
'너는 모른다'는 첫 장면이 화창한 5월의 일요일에 Y대교 근처에서 익사체가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만 11살짜리 '유지'의 실종(?)사건이 일어난다. 독자들은 '사체'와 '실종'이라는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이야기의 흐름이 궁금해진다. 더군다나, 작가의 치밀한 구성과 문장력은 독자들은 쉬지 않고 빠르게 글 속으로 몰입시키고, 빨려들게 만든다. 그러나,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라는 형식만을 빌렸을 뿐이지, 전체적인 구성은 '부모의 잘못된 결혼에 의한 자녀들의 문제','화교문제', '장기밀매' '실종사건' 이라는 소재들이 뒤엉킨 등장인물 개개인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 소설을 가족소설이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누구를 주인공이라고 하기보다는 등장인물 모두가 장마다 그들의 이야기를 비중있게 다루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인 '김상호'는 두 번의 결혼을 한다. 첫 결혼에서 얻은 자녀가 '은성'(만24), 혜성(만20세)이다. 두 번의 결혼 모두 '애' 때문에 한 결혼이다. '은성'의 출생도, '유지'의 출생도.... '상호의 인생에 기습적으로 도착했던 생명'인 것이다.
김상호의 첫번째 아내인 '강미숙'은 딸 '은성'의 임신으로 '후회와 비탄, 은밀한 갈망이 불균형적으로 뒤섞인' 결혼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이혼을 하고 자식들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맡겨 버린다.
김상호의 두번째 아내인 '강옥영'은 중국 산둥성 출신의 아버지밑에서 자란 화교인데, 집에서는 중국어만을 하면서 학창시절 '짱개'이기에 있는듯 마는듯 살아야만 했다. 같은 화교인 밍을 좋아하지만 그의 사람뒤로 숨기만 하는 성격탓에 김상호와의 결혼을 하게 된다. 김상호의 결혼을 생각할 때에 아무런 느낌도 없고 무덤덤한, 아니 '애'때문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내키지 않은 '첫 단추를 잘못 잠는 결혼'인 것이다. 그러니, 이런 환경에서의 자녀들의 이야기가 평범할 수 가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딸인 '은성'은 만사에 즉흥적인 인물이다. '새엄마를 가족이라는 카테고리안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자신의 마음속의 이야기를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황폐함이 과격한 행동과 경계성 성격장애를 보인다. 내면보다는 외면으로 자신의 힘든 상황을 표현하는, 그래서 생활이 더욱 공허해지는 인물이다. 아들 '혜성''정물과 비슷한 사람, 평소 집에 돌아오면 방에 박혀 나오지 않는 그러나 부모가 없을땐 아이를 배려하는, 부모가 있을 때보다 자유로워 보이는', 말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에, 항상 혼자 자신의 일을 삮히는 듯하지만 밤이면 의외의 행동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실종되는 딸 '유지'역시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이다. 친구들의 '짱개' "세컨드'라는 말에 상처를 받고, 겉으로는 바이올린을 잘 켜는 유능한 바이올린 연주가를 꿈꾸지만, 아이에겐 자신의 세계가 있다. '버디 버디'등의 메신저 접속.
여기에 또 다른 등장인물이 '밍'이다. 강옥영의 화교친구이자, 한때는 연인(?). 화교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혼돈을 가지고 있는 '진짜 중국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진짜 한국인도 될 수 없다는 의미."(p83)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살아간다. 또한, 항상 앞에 나서지 못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에 담아둔 채로 진심을 숨기면서 살아간다.
'유지'의 실종후에 모든 가족들은 자신과의 관련을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이 특이한 가족들은 가족 개개인이 모두 '자신만의 비밀'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족들은 가족들끼리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몰라도 이렇게 모를수가 있을까 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른다. 때론 어설프게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살아간다. 강옥영은 남편의 사업에 대해서 '진심으로 알게 되는 순간 직면해야 하는 윤리적 고뇌를 어떻게든 피해 버리고만 싶'(p270)어서 모르는 척 살아간다.
서로를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가족이란 서로를 '너'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겐 '너'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조차 성립되어 있지 않다. 가족이라기에는 너무도 먼 '그대'들인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 행동,비밀을 가지고 각각 겉도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가고 있는 것일까? " 하는 의구심이 든다.
'유지'의 실종과 관련되어 겉으로는 어느정도 가족들이 서로를 알아 가는 듯하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음을 마지막 혜성의 말을 통해 뱉어낸다.
"나는 소파 뒤에 서서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조용한 세계다. 문득 내가 이들을 영원토록 알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그곳을 향해 나는 가만히 한 발을 내딛는다. " (p486)
작가 정이현을 이야기할 때에 '달콤한 나의 도시'의 작가로 일컬어진다. 그런데, '너는 모른다'는 작가의 새로운 문학세계의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너는 모른다'의 작가라고 일컬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의 앞부분과 뒷부분의 사체에 대한 이야기나, '유지'의 실종에 얽힌 이야기에 구체적이고 명확한 내용의 글은 없다. 아마도 작가는 독자의 생각에 맡기고 싶었던 것 같다. '화창한 5월 일요일 오전'에 떠오는 사체는 오래전부터 물의 흐름을 따라 흘러다니다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체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모두가 무심하게 지나친다. 그렇기에 그 사체에 대해서 '우린 모른다.' 바로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한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조차 나 자신을 잘 모르는데, 관심이 없는 '너'에 대해서 내가 무엇을 알겠는가? 나는 너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런지.


존경하는 쉼보르스카 여사는 일찍이 말씀하셨다.'내가 지금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단 두 가지뿐. 그들의 수직 비행에 대해 구구절절 묘사하거나, 아니면 마지막 문장을 보태지 말고 과감히 끝을 맺는 것' 나의 인물들이, 마지막 문장 너머의 그곳에서도 그들의 생을 충실히 살아가기만을 바랄 뿐. (작가의 말중에서)
정말로, 정이현 작가가 진심을 다해서 이 소설을 썼음을 느끼면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로 마지막 문장을 끝맺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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