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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조정래 작가 생활 사십년 저전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1970년에 등단을 하여 2009년 문학 인생 40년을 맞는 조정래 작가의 문학 인생이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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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는 어떤 수식어 보다도 '대하소설의 작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듯하다. 1980년대에 '태백산맥'이 출간될 때마다 한 권, 한 권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 어느날 갑자기 오래전의 제자가 택배로 부쳐온 '한강' 전집을 보면서 가졌던 제자에 대한 고마움, 그이후 앞의 두 소설이 너무 좋아서 작가의 대하소설인 '아리랑'을 읽게 된 기억, 모두 대하소설 속으로 빨려들어 갔던 기억들이 새삼스레이 떠오른다. 작가의 대표작들인 '태백산맥','아리랑','한강'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백년이 연결되는 소설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연속해서 쓰기 위해서 하루 16시간씩, 20년동안 '글감옥'에 갇혀서 먹고, 자고 쓰는 연속적인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이 기간동안에 술은 단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할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원고를 보면 흔히 작가들이 원고지에 쓰고 교정하기를 반복하여 무슨 글자인지 알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의 원고는 오탈자 교정까지 마쳤을 정도로 깨끗한 원고라고 한다. 하루의 집필량까지 표로 만들어서 계획적으로 글쓰기를 했기에 이와같이 세 작품이나 되는 대하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렇기에 작가는 아마도 글감옥이라는 앞에 '황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수 있었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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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자신의 집필과정이 힘든 일이지만 그 어떤 일보다 황홀하게 느껴 졌을 것이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원고량만도 5만장이나 되고, 소설의 등장인물은 '태백산맥'이 280여명, '아리랑'이 600여명, '한강'이 40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작가는 구성노트가 없는 상태로 집필을 할 정도로 작품에 대한 집중력이 뛰어나다. 물론, 등장인물이 너무도 많으니 거기에 대한 메모 수준의 글을 적어놓은 글들은 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원고량)
(태백산맥의 등장인물에 대해서 정리해 놓은 노트의 모습)
2009년 3월까지 '태백산맥'은 200쇄, 700만부가 판매되었다고 하니 이 숫자만으로도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어떤 독자는 '태백산맥'을 13번을 읽은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작가는 도서관에 비치된 자신의 책들이 너덜너덜하다 못해, 어떤 도서관에서는 두꺼운 종이를 덧댄 것을 보고 독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사랑해 주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황홀한 글감옥'은 자전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편지글 형식을 빌린 책이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시사 IN' 인턴 기자 희망자들이 보낸 500여 가지의 글 중에서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 84가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주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 질문들은 '문학론' '작품론' '인생론'으로 구분되어서 실려 있다. 그렇기때문에 작가 인생 40년 동안의 문학, 자신의 작품, 인생에 대한 작가의 소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며,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모든 것이 다 풀릴 수 있으며, 작품이해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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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소설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이것은 '인생이 무엇인가?'와 같이 답을 찾기 힘든 질문이지만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면 "소설은 인간에 대한 총제적인 탐구다."(p15)라고 정의한다. 또한, "문학은 역사를 포괄한다."(P15) 그렇기때문에 작가의 대하소설을 읽어 보았다면 그 뜻의 의미를 짐작할 것인데, "작가는 역사를 몰라서는 작품을 쓸 수 없지만, 역사가는 문학을 몰라도 역사 연구를 할 수 있다. "(p15)고 한다. "세계적인 명작으로 평가되어 고전으로 남은 작품들의 90퍼센트가 역사를 바탕으로"(p15)한다. (...) "역사를 포괄하지 않고는 대작을 탄생시킬 수 없다."(p15)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문학 청년시절부터 소설은 연애 소설을 쓰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런 작품들은 쓰지를 않았다. 이와같은 생각은 요즘에 소설을 좀 쓴다는 사람들조차 출간하여 돈이 될 수 있는 그런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쉽게 글을 쓰고 쉽게 많이 팔리기를 바라는 작가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한 마디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자기의 작품이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히 남겨지기를 소망하며 펜을잡아 외로운 고통과 싸워 나간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이 독자들로 부터 꾸준하고도 깊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또한, 글을 쓸 때에 '언어 선택'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다. 글의 내용에 가장 알맞는 단어와 문장을 찾기 위해 항상 국어사전을 여러 권 곁에 두고 찾아 가면서 글을 쓴다. 그런 습관이 이 책에서도 나온다. 대학생들의 질문에 적확하지 않은 단어와 문장, 문맥이 나오면 아래에 다시 글을 고쳐 주는 섬세함까지 보여준다. 이런 행동은 작가의 몸에 밴 작품 활동의 습관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반에 그는 '민족' '역사' '진실'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미 작품 시작 전부터 제목까지 정해놓고 작품 구상을 했다고 한다. 그의 작가에 대한 정의는 "작가는 인류의 스승이며, 그 시대의 산소다." (p25)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것은 위대한 작품을 써낸 작가들을 의미하기도 하며, 현역작가들의 사회적 책무와 함께 작가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글이기도 하다. 작가가 '진실'을 쓰는 것, '꼭 써얀 할 것을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나타내는 거이며,' 좋은 작품, 훌륭한 작품은 전세계적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작품'(p39)이다. 정치권력은 그가 통치하던 시대로 끝나 버리지만, 좋은 작품은 오랜 시간후에도, 작가가 활동하던 지역이 아닌 세계 어떤 곳에서든지 읽히고 기억되는 것이다. '영원한 빛이 된 작품은 그 어떤 정치력이나 경제력도 능가할 수 있는 것'(p39)이다. 그것이 소설의 존재이유이고, 작가가 스스로 글감옥에 갇히는 의지(p39)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으로 작품을 쓰는 작가이니 그의 작품들이 오래도록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 책의 질문자가 작가 지망생이거나 언론에 뜻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글을 잘 쓰는 방법이나 문학은 꼭 소질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도 많았다. 거기에 대한 답변은 "많이 읽고 (40%), 많이 생각하고 (40%), 많이 써라 (20%)!"(p48)라는 답을 준다. 소질에 관해서는 에디슨의 말을 인용하여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노력은 문학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지침처럼 항상 마음에 두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이 자전적 에세이듯이 작가의 남달랐던 어릴 적 환경과 문학을 처음 접하게 된 이야기가 나온다. 역시 독서는 어릴적의 습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다.
작가가 대하소설을 쓰던 시절이 그렇게 평온했던 때는 아니다. 자칫하면 '반공법' '국가 보안법'에 걸리기 쉬운 시절이었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도 말 한마디 잘못하여 끌려 가던 시절이다. 나도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과연 이런 글을 써도 될까하는 의아심을 가진 부분들이 상당히 있었다. 그만큼 글을 쓴다는 것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었다. 역시나 작가에게도 그런 어려움이 따라 다녔다. 그렇지만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올바로 알려 주고 싶었던 글들이 있었기에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소신껏 작품 활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태백산맥' 구성단계의 빨치산 취재과정의 어려움, '아리랑' 구성을 위한 취재를 하기위해 중국행을 하려 할 때의 미수교국이라는 명목과 작품의 성향에 대한 우려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던 것이다.
'태백산맥'을 비롯한 대하소설들은 반공단체를 비롯한 곳으로부터 고발을 당하기도 하고, 집필기간내에 협박도 받으면서 쓴 글이다. 특히 '태백산맥'은 1994년에 '국가보안법'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을 당해서 2005년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만 11년이라는 사법사상 가장 길게 끈 고발사건이다. 무혐의 판결의 배경에는 너무도 많은 독자들이 읽었고, 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기에 처벌를 하지 못한 점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문학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뿐만아니라, 이와같은 대하소설이라는 대작을 쓸 수 밖에 없는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여러 국어사전을 살피면서(물론, 다른 작가들도 단어선택에 신중을 기하지만) 문장에 적확한 언어 선택, 문장 선택 등의 노력과 국어 사랑.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가진 작품 활동, 자신의 작품에 고향의 지명이나 자신의 체험을 쓰지 않으려는 생각(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한 두편의 글을 쓰지만 이것은 상상력의 고갈을 가져온다는 생각에서), 연애 소설이나 세상이야기와 같은 달콤하여 많이 팔리는 작품을 쓰지 않는 점 등이 작가만의 특색이다.
나는 이 책을 문학을 하려는 지망생이 읽는다면 좋은 지침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작가의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이나 취재 과정, 집필 과정의 모든 것이 쓰여져 있기에 문학도들에게 좋은 책이 될 수 있으며, 조정래 작가의 작품을 한 권이라도 읽어 보았다면 그의 작품 세계와 그의 작품을 읽던 중의 궁금증이 풀리기도 할 수 있기에 작가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작가와 그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