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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젊은 이들에게는 어른들의 추억속의 이야기로 들리는 '별들의 고향'의 작가 '최인호'의 신작 에세이이다. '별들의 고향'을 거론하는 것은 197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큰 이슈가 되었던 소설이며, 영화였기때문이다. '최인호'님은 문단에서 '최연소 신춘문예당선', '최연소 신문 연재소설 작가'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도 더 작가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1970년대의 암울하고 칙칙했던 분위기에 활력소같은 세련된 문체로 청년 문학의 중심에 서있었던 분이다. 발표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까. 작가의 많은 작품들을 읽었지만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지금은 절판된 '왕도의 비밀'이다. 광개토대왕 시대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한 장편소설로 우연히 발굴된 고구려 토기에 새겨진 '井'자 문양에서 알 수 없는 호기심을 느낀 소설 속의 화자가 그 문양의 뿌리를 찾아가면서 마침내는 그 문양이 광개토대왕의 표식이자, '물의 손자이며 해의 아들'인 한민족의 상징이 아닐까 추리해 나가는 광대토대왕과 장수왕 시대의 역사소설의 형식을 빌린 것이었다. 그때 그 작품이 좋았던 것은 한 사람의 작가가 쓴 소설이 역사속에 파묻힐지도 모르는 사실을 밝혀 줄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했기때문이다. 그이후로 '최인호'님은 역사적 소재를 가지고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2008년에 발표한 '산중일기'가 선답에세이로 천주교 신자이면서 불가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사는 작가 최인호의 지나온 이야기와 진솔한 고백이 담겨 있는 영혼의 성장기. (출판사 리뷰 중에서)였다면 '최인호의 인연'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틀어 가장 빛나는 순간에 맺었던 ‘인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글들(출판사 리뷰 중에서)이다.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으로 떠나는 최인호의 추억 여행(책 뒷표지 글)이다.
내가 느낀 작가의 글들은 초창기때의 글들보다 섬세하면서도 마음속에서 한 번 더 다듬어진 '묵은지'처럼 곰삭은 그런 느낌의 글들이다. 세월의 연륜을 거쳐 오면서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글들이 우리의 마음속으로 와닿는 느낌이었다.
1부 _나와 당신 사이에 인연의 강이 흐른다
2부 _인연이란 사람이 관계와 나누는 무늬다
3부 _우리는 모두 우리가 나누는 인연의 관객이다
우리가 생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인연'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인연'이란 반드시 사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의미없이 스쳐가는 풍경들도, 그리고 우리곁의 사물들과 식물, 동물 들과 얽히게 되는 것이 모두 우리의 인연 이다. 젊은날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자연이 어느 순간에 우리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나도 종종 느끼고 살지만, 작가 역시 그런 마음인가보다. 화단의 꽃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 모습에 감동을 느끼는 걸 보면. '우리가 있는 그대로 우리 자신을 보여 주는 일이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유일한 길이 될터이다.(p127)
유년시절의 이야기에서 부터, 가족, 친지, 지인의 이야기, 결혼 이야기 그리고 난초와 모과나무 이야기, 정원의 새와 딸기의 이야기까지 모두 잔잔하면서도 진솔한 이야기들로 책 속의 이야기들은 가득하다.(43꼭지) 그런데, 내가 '최인호'님의 책을 많이 읽었기때문인지 전에 읽었던 내용들이 조금은 다듬어져서 다시 실린 내용들도 있었다. 어머니를 창피하게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의 마음은 그 분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들의 마음속에는 미안함으로 영원히 남는 것 인가보다.
작가가 1970년대 마음의 욕심때문에 버거웠던 삶이 열릴 수 있었던 것은 '마태오 복음 5장'의 말씀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오만과 편견으로 전보다 더 큰 갈등과 괴로움에 시달리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이처럼 장편소설을 몇 세트씩 출간할 정도의 작가라면 글쓰기가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는 '원고지를 메워 먹고 산지가 오래된 탓인지 꼭 필요하지 않으면 펜을 들기가 몸서리 치도록 싫어졌기 때문'(p190)에 편지쓰기를 싫어한다고 한단다. 자각의 표현대로 '펜을 들면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듯 글을 뽑을 줄 알았는데' (p190) 역시 글을 쓴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들과 함께 그는 유머 감각도 뛰어난 분인데, 이 책을 읽는 도중에 너무 재미있었던 부분이 있어서 소개한다.아내와 5년 연애끝에 결혼을 했기때문에 연애 편지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여성지에서 내용 공개를 요구했고, 거절하자 거금을 주겠다고 해도 절대로 공개하지 않은 첫번째 연애 편지가 공개되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소설가의 연애 편지는 어떻까 궁금했다. 아주 근사한 미사여구로 가득 찬 아름다운 詩같은 편지를 기대했는데.... 읽은후에 그 편지를 다시 읽게 된 작가의 겸연쩍은 표정이 떠올라서 혼자 웃었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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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연이란...."우리모두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다. 이 별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소멸하는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이 신의 섭리를 우리는 '인연'이라고 부른다. 이 인연이 소중한 것은 반짝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의 빛을 받고, 너는 나의 빛을 받아서 되쏠 수 있을 때 별들은 비로소 반짝이는 존재가 되는 것. 인생의 밤하늘에서 인연의 빛을 밝혀 나를 반짝이게 해 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삼라와 만상에게 고맙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머리글 에서)
우리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먼저 보는 것도 중요하고, 나와 인연으로 맺어진 모든 것에 '붓'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의 마지막 글에서 스스로 가진 것을 버리고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 가시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무엇이 인간의 참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 준다. 그리고, 마음이 아름다워지고 풍요로워지는 글들과 함께 사진작가 '백종하'님의 사진은 예술 사진이었다. 내가 언제나 카메라의 프레임에 담고 싶었던 컷들을 너무도 소박하면서도 잔잔한 여운을 남기면서 담아 주셨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도 풍요로워지고, 눈도 아름다워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