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연찮게, 일본 소설가의 작품을 연달아 2권을 읽게 되었다. 일본 독서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2권과 '요시모토 바나나'의 '무지개'를 읽었다. 책의 분량부터가 커다란 차이를 가져왔고, 소재의 다양화나 구성면, 소설의 깊이에서도 너무나 다른 두 일본 작가의 작품을 읽게 된 것이다.
'무지개'의 작가인 '요시모토 바나나'의 본명은 '요시모토 마호쿄'로 아버지가 문학평론가였기에 어릴적부터 많은 책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바나나'라는 필명이 열대지방에서만 피는 붉은 바나나꽃을 좋아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나 역시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이름이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재미있는 사연이  있었다. 저자의 작품중에 좀 오래전에 읽었던 '키친'이 인상적이었지만, 동화적 색채가 짙은 '아르헨티나 할머니'도 좋았었다. 어머니를 잃은 소녀가 할머니를 만나서 상실의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가 '요시토모 나라'의 특이한 그림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되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의 특징(?)이라면 책이 참 얇다는 것이다.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에 간단히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또한 내가 그의 작품을 많이 읽는 이유중의 하나라면 좀 이상한지 모르겠다.

  
  '무지개'는 '작가의 말'에서도 타히티 여행을 하고 그곳을 취재하여 소설을 쓰고자하는 의도를 가졌던 여행시리즈물의 하나이다. 그런데, 일주일의 취재로는 '타히티 섬의 일부밖에 보지 못했고 즉흥적인 소설을 쓸 수 있는 장소가 아니어서 일본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착실한 남녀의 이야기를 타히티의 모습과 함께 그려 보았다'고 한다. 소설의 무대가 도쿄와 타히티섬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보라보라섬'과 '모레아섬'이다. '무지개'는 '미나카미 에이코'라는 20대 후반, 여자의 1인칭 화자중심의  문체로 쓰여진다. 소설의 문장들이 여주인공의 눈을 통해서 타히티의 풍광을 보는 것처럼 섬세하면서도 아름답고 정서적으로 쓰여졌다. 마치 독자가 그 장면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자세하게 쓰여졌다.  

 


일본의 어느 해변의 관광지에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면서 소박하게 살아가던 그녀가 11살되던 해에 아버지가 여자가 생겨서 집을 떠나자 엄마는 외할머니를 모셔와서 여자 셋이 소박하게 삶을 살아간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바닷가의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것을 천직으로 사는 그런 분들이다. 고등학교 졸업후에 도쿄로 올라와서 '타히티안 레스트랑에 취직을 하는데, 그 가게의 이름이 '무지개'이다. 이 레스트랑의 오너는 타히티에서 히피행색으로 지내면서 그곳의 레스트랑의 일을 배워서 도쿄에 가게를 낸 것인데, '무지개'는 오너의 애정과 세심한 서비스로 이루어진 곳이다. 그녀는 이 식당의 플로어 매니저로 늘 되풀이되는  하잘 것 없는 일상에도 즐거움을 느끼며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천직으로 여긴다. 사소한 배려와 친절한 손길이 있는 직장에서 평범한 행복을 느끼는 그런 여자이다. 어머니의 죽음후에 건강이 악화되고 이로인해 오너의 집의 임시 가정부가 되는데, 오너의 아내는 오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이미 남의 아이를 임신한, 그렇지만 사업수완은 좋은 바람난 여자이다. 오너가 사랑하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등한시하는 그런 여자....  에이코는 온기가 없는 집의 강아지와 고양이를 사랑으로 보살피고. 겉은 그런대로 정리가 된 것같지만 말라 비틀어진 나무와 퍼석퍼석한 정원의 서글픈 모습을 가꾸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낡아빠진 해변가 집을 돌보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에 의해 모든 것이 마법처럼 변했듯이....
사람이 보살펴주기만을 기다리는 나약한 존재는 아니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무언가를 배우고 그들 덕분에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P71)

  에이코가 타히티안 레스트랑에 처음 취직할 때에 오너를 취재했던 기사가 맘에 들었었다. 작은 레스트랑이지만 자신의 섬세한 손길로 가꾸는 그런 오너의 모습이 좋아서 찾아간 곳이었다. 그런데, 오너 역시 그와 같은 교감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서 오는 많은 생각들, 아마도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을 것이고, 이런 상황을 돌아가신 할머니와 어머니는 어떻게 받아들일까도 마음의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사랑에 빠졌을 때의 결심을 믿지 않는다. 사랑을 하고 있을 때는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힘도 사랑의 힘에 불과할 뿐 자신의 중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결심했다. 몇 번이나 해 온 결심을 다시금 굳혔다. '(p119)
이런 상황에서 에이코는 10여년전부터 꼭 오고 싶었던 타히티에 오고, 그곳에서 오너와의 관련이 있는 노부인를 만나게 된다. 젊잖은 노부인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서 그녀가 도쿄에 두고온 사랑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되고 '진심으로 서로에게 이끌린 남자와 여자가, 언뜻 복잡해 보여도 싶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했다면, 가네아먀 씨가 한 얘기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결말을 맞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p181)
이런 결정을 더 명확하게 해주는 것은 '나는 눈물을 머금고, 이제는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 그때, 누군가가 프랑스말로 말했다. "아, 무지개대 !" (...) 짙푸른 산위에 일곱 색깔이 고루 선명하게 떠 있었다. (...) '이건 틀림없이 길조일 거야. 지나치게 완벽한 길조. 이 광경을 내 두 눈에 새기고, 그다음은 아무것도 보지 말고, 그저 그대로 자연스럽게.' (p183)

  정확하게 말하면, 아무리 성격과 환경이 다른 부부이고, 아내의 외도로 아기까지 가졌다고는 하지만 아내가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불륜'인 것이다.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착실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인정이 넘치고 사람냄새가 나는 사람들이라도 이런 사랑에 대해 부담감을 느낄 것이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심리적 상황을 아름다운 타히티의 풍광과 함게 독자들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고 생생하게 담아내는 작가의 글솜씨에 아름답고 희망적인 사랑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에이코가 어린날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현재의 상황을 정리하고, 타히티의 바닷가에서 마음을 치유하여 일곱빛깔 무지개가 되어서 타히티섬을 떠나는 느낌이 든다. 이 작품은 사랑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마음의 표현도 잘 나타나 있으며, 사랑을 받아들이려는 마음도 참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지개'를 더 빛나게 하는 것은 타히티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하라'씨의 그림인데, 작가는 이 그림들을 '박력있고 멋진 그림은 짙는 밤의 느낌과 파란 하늘의 색감이 생생하게 되살아 났습니다.'라고 표현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묘미가 있다. 또한, '야마구치'씨의 바닷속 풍경 촬영 사진과 타히티 풍경 사진도 참 멋지다. 거기에 또.... 부록으로 타히티 여행일정표까지....
 
나는 몸과 마음을 푹 쉬고 오는 여행보다는 찾아 다니고, 구경하고, 느끼는 여행을 좋아하기에 아직'타히티'의 여행이 끌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타히티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역시 좋은 선물이 아닐까한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무지개'는 아름다운 일상을 담은 고운 한 편의 에세이같은 장편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