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부터 책에 관한 정보를 검색할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었다. '김형경'의 '좋은 이별'이다. 인생에 있어서 이별이란 삶의 한 단면이기도 할터이고, 살아오면서 가슴이 저리도록 아픈 이별의 경험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졌고, 역시 나도 그런 경험이 있기에 호기심이 갔다. 그리고, 작가의 '사람풍경'을 참 감명깊게 읽었기에 기대가 많이 되는 책이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2001년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부터 2009년 '좋은 이별'까지(...) 한가지 주제를 잡아 한 번은 소설로, 한 번은 에세이로 그것을 풀어내곤 했다. 인간 마음을 개괄적으로 이해하고 파고드는 길로 안내하는 책은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과 '사람풍경'이다.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근간이 되는 성과 사랑, 관계 맺기의 문제를 다룬 책은 '성에'와 '천 개의 공감'이다. 상실과 애도 문제만을 본격 주제로 삼은 책은 '꽃피는 고래'와 '좋은 이별'이다." (p7) 이렇게 친절하게 작가의 책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주는 것이었다. '와 ~~ 얼마나 친절한 안내인가?' 책을 읽기도 전에 그 부분을 읽게 되자 나는 또 하나의 무거운(?) 숙제를 안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에 명기된 책들을 조만간 또 찾아서 읽어야 하니까.... 그래도 이런 친절한 안내가 반갑기만 했다.


"'좋은 이별'은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은 애도라는 개념이 언제 탄생하여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사례 중심으로, 개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어지는 세 장에서는 애도 심리의 실제와 그에 따르는 실천법들이 소개된다. 2장은 소중한 대상을 잃은 후에도 열정이 여전히 상대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 상태, 3장은 상대로부터 열정을 회수해 왔으나 그것을 잘못 사용하는 단계. 4장은 열정을 비로소 치유와 변화를 위해 사용하는 단계를 다루고 있다." (p6) - 이것도 친절하신 작가님의 안내이다.
(책의 목차)
1장 사랑의 다른 이름, 좋은 이별
2장 돌아오지 못한 마음, 사랑은 그 자리에
3장 거두어온 마음을 어디에 둘까
4장 이제 나는 행복을 노래하련다
책에서도 언급되는 것처럼, 우리들은 이별을 숨겨야 할 일, 수치스러운 일, 피해야 할 일, 심지어는 패배의 상징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서정주 시인의 '신부'라는 시에서 처럼 첫날 밤에 신랑에게 퇴짜를 맞고도 그 이유조차 모른채 수십년을 기다리다 '초록 재, 다홍 재로 내려 앉는 것이 이별이라는 정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별에 따른 상처가 너무 커서 그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생의 다른 길을 선택하여 우리들을 놀라게 한 유명인들도 얼마나 많았던가....
여기에서 '이별'이란 사람과의 이별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 뒤늦게라도 잘 슬퍼하고 떠나보내야 할 이별의 대상은 부모, 형제,연인만이 아니다, 프로이트가 이미 말했듯이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에 대신 들어선 어떤 추상적인 것'에 대해서도 애도해야 한다. 오늘날에는 그 추상적인 것의 범주가 한층 넓어지고 있다." (p37~38) 그러니까, 인간관계에서 맺어졌다가 떠나는 이별 모두와 직장, 직위, 명예, 돈, 목표, 시험,애완동물, 사물 들까지를 모두 통틀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들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올바르게 치유하지 않았을 때에 겪게 되는 심리적 박탈감에서 오는 정신적 상태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많은 파장을 가져오는 것이다. 작가는 '좋은 풍경'에서 이런 상황들을 자신의 주변 이야기와 책들의 내용과 함께, 그 책에서의 설정이 왜 그랬는지까지를 분석하고 해석해준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히틀러'의 도발적인 행동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풀어준다. 그런데, 뜻밖의 인물로는 미국의 전  대통령 '부시'의 이별에 따른 상실감을 잘 치유하지 않았기에 나타난 정치적 행동은 처음 접하는 사실이었다.
그밖에도 작가는 우리들이 잘 아는 책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좋은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그 내용은 시일 수도 있고, 소설일 수도 있고, 여러 장르의 책들의 내용이 소개된다. 학창시절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아래서'나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숫꾼'의 주인공들의 행동이 이별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서툴렀기때문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별'후의 상실에서 비롯된 행동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런 작품들을 읽는다면 전과는 다른 해석이 가능해 질 수 있고, 좀더 작품속에 빠져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밖에도 많은 책들이 소개되는데, 나의 독서량이 너무 빈약함을 여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듣고보고 못한 책들의 내용에 잠깐 들었던 생각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내내 어색하게 느껴졌던 단어가 '애도'이다. 죽음으로부터 오는 단어라는 생각이 머리깊숙이 박혀있어서 연인과의 이별에 까지 '애도기간'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에 머리속이 혼란스럽기도 했다. 이별의 상실감으로 자신만의 생활속으로 숨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은둔형 외톨이'이다. 이런 외톨이들은 자신의 집이나, 회사, 아니면 그외의 최소한의 공간에서만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 공간을 '자폐공간'이라고 한다. 어쩌면 지나치게 책속에 파묻힌 사람들도 이런 '자폐공간'이 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독서를 통한 애도 기능은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널리 행해지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한다. 나도 작가의 이 말에 동감을 한다. 독서는 편안하지 않은 현실을 피해 숨어드는 내밀한 자폐공간인 것이다. 또하나의 상실의 극복 방안으로 '떠나 보낸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감정과 상실의 현장을 회피하는 방법 중에 한결 진전된 애도 방식이다. 여행이나 유학 등을 말하는 것이다.
나의 대학시절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것도 아침 식사를 잘 마치시고 직장에 출근하셔서 업무가 시작되기 직전에.... 마침 오후 강의밖에 없었던 나와 엄마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아버지의 직장에 갔다. 거리가 걸어서도 15분 정도밖에 안되는 곳이었다. 심근경색이었고,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구급차가 왔지만,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인생에서 가장 처음 맛본 이별의 상실감.... 저녁어스름이면 꼭 아버지가 대문으로 들어오실 것만 같은 환상에 사로잡혔었다. 그런데, 엄마의 상실감은 너무도 컸었나보다, 서울에서 경기도의 모란공원묘원까지 차를 바꿔타시면서 1주일에 한 번씩 꼭 가셨으니까.... 아침에 나서면, 저녁에야 돌아오실 수 있는 거리를... 엄마가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생각난다. 겉잡을 수 없는 슬픔에 버스를 몇번씩 갈아타고 아버지가 계신 고갯길을 힘들게 오르시면 그토록 쏟아지던 눈물조차 나오지 않으셨다는 말씀이 기억난다. 그때 나도 이별의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았지만, 엄마의 그 큰 이별의 상실감을 깨닫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나란히 함께 계셔서 가끔씩 엄마가 좋아하시던 보랏빛 꽃다발을 놓아드리지만 내게 좀더 일찍 엄마의 이별의 상실감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좋은 이별'에는 이별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 여러가지 제시된다. 그렇지만 나는 마음이 아프다면 이 세상이 떠나갈 정도로 '펑펑' 울기를 권하고 싶다. 
"울음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가장 위대한 용기,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용기가 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간혹 어떤 이들은 겸연쩍은 얼굴로 자기가 울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죽음의 수용소에서 '  (p212) 작가도 이 책에서 울음을 울 수 있다는 것은 성숙한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다. 내곁을 떠나간 것들에 대한 아쉬움에 홀로 그들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마음아파하다가 우울증에 걸리고, 그것이 중증 울음증까지 된다면 그건 자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작가도 어떤 이별을 떠나 보내지 못하고 힘들어서 심리치료를 받도 정신분석에 관한 서적을 섭렵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작가의 경험과 정신 치료와 분석에 관한 지식이 참 방대하다는 것을 '좋은 풍경'을 읽으면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쉽게 써진 책이 아니라, 작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쓴 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파의 학설과 '융'의 학설도 책의 구석구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책의 꼭지마다 詩의 한구절이나 책의 제목, 작품속의 한구절이 내용에 맞게 '꼭지'의 제목으로 쓰여졌는데, 그 제목조차 아름답다.
각 꼭지가 끝나면 Recipe가 있어서 꼭지에서 소개했던 내용을 정리하면서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 책을 다 읽은 후에 어떤 이별에 당면하게 되었을때에 Recipe부분만 읽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의 나의 느낌은 작가의 말처럼 이별이란 우리의 삶에서 연속되는 한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이별의 치유가 올바르지 못했을 경우에 그 후유증은 오래가고 때론 평생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삶의 지혜일 것이다. 2차세계대전때의 그토록 비참했던 유태인 강제수용소에서도 그들은 삶의 환희를 느낄 수 있었다. 언제 가스실로 향할 지 모르는 상황속에서 힘든 노동을 마치고 그들은 소설의 한 구절 구절을 서로 꿰어 맞추면서 시간을 보냈고, 이런 구절 구절이 모여서 긴 원작 소설이 그대로 재현되는 기적과 같은 일을 만들기도 했고, 크리스마스때는 자신의 악기들을 모아, 성탄 축하곡을 완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처럼 큰 상실을 가진 사람들은 없었을텐데도 말이다.




작가는 심리치료를 받을 정도의 극한 상황까지 갔기에 이별에 대해서 큰 상실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이별'을 너무 과장되게 생각하고 너무 큰 의미를 받아들인 감도 없지않아 있다. '이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한번쯤은 세상이 떠나갈 정도로 펑펑 울고는 세월따라 퇴색해지도록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방법이 아닐까하는 좁은 의견을 말하고 싶다. 물론, 헤아날 수 없는 깊은 상실감을 받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인생을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이별'역시 스쳐가는 한순간일 것이다.
" 저 모퉁이를 돌다가 무슨 일을 만날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야." (p141) - 바로 이것이 인생이라는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면 좀더 '이별'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좋은 이별'을 발표한 후에 작가는 대학 등을 비롯하여 많은 곳에서 강의를 하면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의 강의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이별'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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