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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상처 - 김훈 기행산문집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출간되는 소설마다 베스트 셀러에 오르는 김훈이 1994년에 발표한 기행 산문집을 2009년에 개정판으로 다시 꾸몄다.
기행산문집이라고 해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여행지에 대한 정서적인 글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요즘에 나오는 산문집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문체들과 낱말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전군가도,을숙도, 경주 남산, 울진 월송정, 망양정, 다산초당...... 등 우리가 한 번쯤은 언젠가 거쳐 갔었던 곳들을 돌아보면서 그 풍경 사이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사유한다. 경치에 푹 빠져서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이 아닌 풍경과 인문학적 사유가 서로 스며 들어서 한 줄의 글로 표현되는 것이다.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뿐이며, 상처는 풍경에 어떻게 담기며 풍경은 상처를 어떻게 보여주는 가에 대한 작가의 자유로운 생각이 담겨져 있다.
다른 독자들은 어떤 생각으로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작가의 생각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중간 중간 혼돈스러운 부분들도 있었다. 산문집이 가지는 특징처럼 자신의 생각을 그냥 붓가는대로 쓴 글이라기 보다는 '풍경과 상처'속의 글들은 문장 구석구석에 작가의 깊은 생각들이 보일듯 보이지 않을 듯 숨어 있는 느낌으로 읽었기때문이다. 깊이감이 있는 책인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작품속에 또 다른 작품이 등장하여, 그 작품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공유할 수 있어서, 전에 읽었던 그 작품들을 시간나는대로 다시 꺼내서 읽어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개정판이 나오면서 쓴 작가의 글을 여기에 붙여넣어 본다. 이 글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기에......
"오래 전에 쓴 글이다.
여기에 묶인 글을 쓰던 시절에 나는 언어를 물감처럼 주물러서 내 사유의 무늬를 그리려 했다.
화가가 팔레트 위에서 없었던 색을 빚어내듯이 나는 이미지와 사유가 서로 스며서 태어나는 새로운 언어를 도모하였다.
몸의 호흡과 글의 리듬이 서로 엉기고, 외계의 사물이 내면의 언어에 실려서 빚어지는 새로운 풍경을 나는 그리고 싶었다. 그 모색은 완성이 아니라 흔적으로 여기에 남아 있다.
나는 이제 이런 문장을 쓰지 않는다. 나는 삶의 일상성과 구체성을 추수하듯이 챙기는 글을 쓰려한다.
그러하되, 여기에 묶은 글들은 여전히 내 마음 속 오지의 풍경을 보여준다.
2009년 가을, 김훈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