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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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절인 70,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중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쳤던 나에게 박범신은 그당시 최고의 베스트 셀러 작가였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는 그의 대표작이다.
그런 박범신이 오랜만에 내놓은 책이 '고산자'이다.
어쩐지 '古山子'는 지리교사였던 나에겐 친근한 호가 아닌가?
박범신은 '고산자'를 통해 김정호를 정의하기를 
평생 시대로 부터 따돌림을 당했던 孤山子
백성에게 지도를 돌려주고자 높은 뜻을 품어서 高山子
고요하고 자애로운 옛산을 닮아 古山子
 

위와같은 표현을 썼다.
孤山子, 高山子, 古山子....
모두 김정호에게 그럴듯하게 어울리는 호이다.

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지도 제작이라기 보다는 서민들이 행상을 위해 길을 떠나면서 필요했던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국토를 얼마나 많이 헤매고 다녔던 고산아니된가.....
외롭고 힘든 일이기에, 산을 좋아하기에, 高山 (孤山)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작가는 고산자를 통해 김정호의 생애를 복원함으로써 누구보다 세상을 사랑했고, 그래서 세상과 계속 불화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뼈저리게 지켜온 강토에서, 나와 우리가 지금 계속 이어 살고 있다는 큰 위로와 자긍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서 평생을 바쳤을 고산 김정호에 대한 문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상,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단 한줄에 해당할 정도로 미미하다고 한다.
그런데, 박범신은 단 한줄의 글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과 인문학적인 통찰력으로 한 권의 소설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박물관에서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김정호의 지도들을 보면서 그당시에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바다를 건너 발품을 팔아가면서 전국토를 종횡무진하면서 그렸을텐데, 오늘날 인공위성에서 찍은 사진과 너무도 흡사하게 그려진 점에 대해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김정호의 생애는 오로지 기존의 지도보다 더 상세한 지도를 그리기 위해서, 그것도 백성들이 장사를 하면서, 산을 넘어 다닐 때에 바다를 건널 때에 편리하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렸을 것이다.
보는 사람이 편리하도록 길이까지 적어 넣었으며, 그 지도에는 산의 줄기도, 물의 흐름도 나와 있다.
그당시 조정에서는 이런 지도가 우리의 국토를 상세하게 알 수 있다는 죄목에 감옥에까지 가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김정호는 오로지 우리 강토를 온전하게 지도에 담겠다는 의지하나로 작업을 했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었겠는가?
가족들은 잘 돌 볼 수나 있었겠는가?
고산 김정호의 실제 이야기가 아닌 픽션이지만, 고산의 나라 사랑, 지도 사랑의 마음이 엿보이는 책이다.
역시나 박범신의 작품속 고산자도 애달픈 가족사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처음 접할 때는 고산자가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면서 지도 제작을 하는 과정의 이야기와 가족의 이야기가 좀더 실감나게 표현되기를 바랐는데, 아쉽게도 너무 내용이 단순한 감이 있었다.

시중에는 단 몇 줄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쓴 역사 소설들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박범신 작가가 조금도 욕심을 내서 직접 고산자의 발자취를 따라 다니면서 느낀 감정들을 단 한줄의 역사적 사실에 가미하여 단행본이 아닌 상, 하권 정도의 소설로 만들었다면 좀더 흥미롭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짧은 소설이기에 극적 갈등이나 전개가 약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박범신 작가의 역량이라면 (상)(하)권 정도의 분량의 좀 더 긴 소설로 거듭 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앞으로도 70,80년대에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셨던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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