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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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는 출간 당시인 2014년에 읽은 책이다. 10여 년이 지나서 다시 읽어 보니 그때의 생각과는 조금 달라졌음을 느끼게 된다.

20년 전에 나카하라 미치마사는 딸을 잃게 된다. 아내가 잠깐 슈퍼마켓에 저녁 식재료를 사러 간 사이에 들어 온 도둑에게 딸이 살해당한다. 욕실에 손과 발이 묶인 채, 입에는 스폰지 공을 물고 죽은딸의 모습에 그들의 일상은 무너진다.

살인범은 가석방된 사람으로 먹을 것이 없어서 나카하라의 집에 침입했다가 살인을 한 것이다.

8살 소녀를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다니....

만약, 범인이 가석방이 되지 않았다면 이런 끔찍한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카하라 부부는 범인이 사형을 받기를 원하게 되고, 결국에는 사형이 선고되지만, 이미 그들 가정은 산산이 무너져 버렸다.

"누가 이 살인범을 교도소에 몇 년 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p. 202)

목숨까지도 바쳐서 딸의 살인범을 사형시키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판결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유족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그 어떤 십자가도 공허할 뿐이다. 판결을 받은 죄인들은 그들의 하루 하루를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감옥 속에서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내는 이혼을 원하고 그들은 헤어져서 각자의 생활을 하게 된다. 나카하하는 동물 장례식장을 운영하면서 살아 가는데....

또다시 그에게 닥쳐 온 불행한 소식은 아내가 길에서 살해당했다는 소식이다.

아내의 살인 사건을 추척하던 중에 아내가 이혼 후에 '사형 폐지론 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원고를 쓰고 있었던 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원고는 살인 현장에서 없어졌지만 아내가 사용하던 컴퓨터에는 그 내용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아내는 자신이 겪은 일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범인의 사형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내의 일상을 추적하던 중에 알게 된 또다른 사실은 대학병원 소아과 의사와의 만남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의사는 책의 첫머리에 나왔던 후미야. 

20년 전에 후미야는 고등학교 때에 사오리라는 소녀를 임신을 시켰고, 낳은 아이를 죽여서 수해(나무의 바다, 음침한 가지를 뻗은 나무들이 빼곡한 곳으로 자살의 장소로 불린다)에 묻었던 사실을 알게 된다. 

아내가 후미야의 영아 살해 사건을 알게 되고,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자수하여 죄의 댓가를 받으라는 말을 하게 되는데, 이를 엿들은 후미야의 장인이 입막음으로 아내를 살해한 것이다.

후미야는 영아를 묻었던 살해 장소를 찾아가서 성묘(?)를 하고 오던 중에 만난 임신한 여자를 자신의 아내로 삼고 그녀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처럼 키우는데....

과연 이것이 후미야가 저지른 살인의 속죄가 될 수 있을까? 후미야의 아내는 의사인 후미야와는 결혼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의 여인이었는데, 그녀의 입장은 오래 전의 범죄이고 아무도 알지 못하니(상대방이었던 사오리와는 비밀로 했으니) 그냥 일상 속에서 자신과 아들을 보살피는 것으로 속죄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아무리 태어나자 마자 갓난 아이라고 해도 생명이니 살인은 살인이고 그에 마땅한 죄는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을까?

만약, 속죄의 마음이 있었다면 그 사건 이후에 유흥업소에서 비참하게 살고 있는 상대 여성을 돌봐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범의 심판을 받은 후에.

감옥에서의 속죄가 아무 의미없는 십자가에 불구하더라도 감옥에서 등에 지고 속죄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은 나카하리의 아내의 생각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잃은 슬픔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고통의 시작이다. 어린 딸을 잃은 부모의 마음, 아내를 잃은 남편의 마을, 철없던 시절 태어난 영아를 살해한 고통.

요즘, 우리 사회에서 묻지마 살인 등으로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유족 입장에서는 사형이란 판결이 어떤 의미를 가지겠는가? 사형이 집행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면 범인은?  사형 판결을 받은 범인이 진정한 의미의 반성을 할까?

사형을 형벌로 여기지 않고 주어진 운명이라고 받아 들이는 나카하라의 딸을 살해한 범인의 말은 유족의 가슴에 큰 못이 된다. 그는 유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지 않은 채, 사형 집행 날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사형은 있으나 집행이 안되고 있다. 

사회적 이슈를 던지는 <공허한 십자가>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 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한 문장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 살인자를 법의 이름으로 처벌했다고 해서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면, 정의란 무엇일까. 죄를 짊어지고 평생을 살아야 할 사람은 가해자인가, 아니면 피해자의 유족인가. ‘속죄’란 감옥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으로 이뤄지는 것인가.
『공허한 십자가』는 이 질문들에서 시작한다. 단순한 범죄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와 남겨진 자 사이의 심연을 응시하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짊어져야 할 도덕적 책임의 무게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
『공허한 십자가』는 단순히 범죄의 동기와 범인을 밝히는 미스터리가 아니다. 이 소설은 인간이 인간을 심판한다는 것의 의미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정의란 무엇이며, 복수는 어디서 끝나는가. 속죄는 감옥에서의 시간이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그리고 끝내 남겨진 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인간 사회의 가장 깊고 아픈 질문을 꺼내놓는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소설을 읽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완성될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오래도록 생각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속죄란 무엇인가. 누가 누구를 심판할 수 있는가.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공허한 십자가』는 그 질문을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출판사 리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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