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한 작품인 <고래>, 벌써 20여 년이 지난 작품인데, 이제야 읽게 됐다. 천명관의 작품으로는 <나의 삼촌 부르스>, <고령화 가족>을 오래전에 읽었다.
이 책의 작가 소개글에는,
" <고래>는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에 빚진 게 없는 작가의 기존의 틀로 해석할 수 없는 놀라운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유례없는 개성적인 작가의 출발을 알렸다. "
또한 <고래>는 2023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기대감에 읽기 시작했지만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자행되는 살인, 그리고 갈취, 성욕, 자신의 딸도 돌보지 않는 파렴치한 여인의 이야기가 읽는내내 불쾌감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 책의 구성 중의 3부에 해당하는 공장의 춘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아파옴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소설은 노파, 금복 그리고 춘희로 이어지는 세 여인의 이야기이다. 시대적으로도 암울했었고, 그래서 여인들의 지위도 그만큼 낮을 수 밖에 없었던 때에 신분적으로도 미천한 여인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세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그 누구 보다도 강인한 생활력을 가졌던 여인들, 그러나 삶에 있어서는 부도덕하고 몰염치한 노파와 금복.
금복의 딸로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한 춘희, 마굿간에서 태어난 엄마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하고 관심 밖에서 홀로 자랄 수 밖에 없었던 거구의 벙어리, 자폐아
춘희의 인생은 노파, 금복 보다도 더 파란만장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뛰놀던 벽돌공장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벽돌을 구우면서 살았던 생의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노파는 젊은 날, 대갓집 외아들 반편과의 관계가 들통이 나자 흠씬 매를 맞고 거의 죽게 되어 버려진다. 반편의 딸을 낳게 되는데, 눈이 반편을 닮았다는 이유로 애꾸를 만들어 버린다. 끝내는 뒷동네 벌치기 노인에게 벌 2통을 받고 팔아 넘긴다. 이후 노파는 평대 마을에 들어가서 국밥 장사를 하면서 돈을 모은다. '복수를 하기 위해서'돈을 벌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는다. 훗날 애꾸눈 딸이 찾아 와 돈을 요구하지만 어딘가에 돈을 숨겨 놓고 주지를 않다가 딸에게 살해당한다.
노파의 맹목적인 돈의 집착은 결국에는 죽음으로 이어진다. 노파의 불운은 스스로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후 평대 마을에 흘러 들어 온 금복은 국밥집을 하면서 노파의 숨겨 놓은 돈을 찾는다. 우연히 장맛비가 억수처럼 내리던 날에 천정이 무너지면서 돈벼락을 맞는다. 어마 어마한 돈과 땅문서들.
금복이 평대마을에 오기 전의 삶도 파란만장하기는 노파 보다 더 하다. 이미 몇 명의 사내를 살해한 후이다.
금복은 그 돈을 가지고 평대를 자신의 왕국으로 만든다. 다방, 운수업, 고래를 닮은 극장,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벽돌공장까지. 벽돌공장에는 금복의 몇 명의 남자 중의 하나인 남편이 벽돌을 찍어 내고 있다. 거기에서 금복에게 버림받은 딸 춘희가 함께 기거를 한다.
어느날, 극장에 대형 화재가 일어나서 평대마을이 쑥대밭이 되고 80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 세속적 성공을 이룬 금복에게 일어난 불운은 노파의 원령이 금복을 무너뜨린 것이다.

금복의 딸로 엄마의 사랑을 전혀 받아 본 적이 없이 벽돌공장에 내쳐졌던 춘희는 극장 화재를 오인을 받고 구치소에 수감된다. 구치소에서 폭행을 당하고 짐승 취급을 받던 춘희는 사면을 받고 나와서 벽돌공장에서 홀로 살아간다. 원시인처럼.



노파, 금복, 춘희 그리고 애꾸.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고래>를 통해서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이 가지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작가가 이야기꾼의 입을 빌려 쏟아놓은 무궁무진한 변주가 이 소설의 무너지지 않는 뼈대이자 살이기 때문이다. 금복을 떠올리면 춘희가 딸려오고, 춘희를 떠올리면 노파가 따라나오는 마술. 후에 『고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조금씩 다른 버전으로 소설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신화, 영화, 드라마, 연극 등 능수능란하게 장르를 오가며 이야기 꽁무니에 이야기를 달아둔 천생 소설가 천명관의 스텝은 소설 속 스토리의 변주인 동시에 작은 세계의 확장의 과정이기도 할 터이다.
『고래』는 단순히 색다른 모양새의 이야기들을 집약해놓은 소설이 아니라 우리 삶의 문을 쑥 밀고 들어오는 커다란 머리다. 독자는 그 우거진 머리를 헤치고 맛보고 다듬으며 저마다 찾고 싶은 군상을 발견하고 공감할 것이다. " (출판사 책 소개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