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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와 구더기 -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ㅣ 현대의 지성 111
카를로 진즈부르그 지음, 김정하.유제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1월
평점 :
<치즈와 구더기>라는 책제목부터 뭔가 아리송한 그런 책이다. 이 책은 16세기 이탈리아의 프리올리에서 방앗간을 하던 메노키오가 이단자로 몰려서 2차례의 재판을 받고 결국에는 교황청의 명령으로 화형을 당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를 미시사적인 관점에서 구성한 역사책이자 문학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까를로 진즈부르크'는 미시사 연구를 대표하는 학자이다. 간혹 미시사라는 용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미시사 (微時史)연구는 1970년 이탈리아에서 성립되는데, 좁은 의미에서 역사의 현장들을 분석하여 점차 그 범위를 확대하여 나간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인데 비하여 미시사의 주인공은 일반 백성들의 이야기이며 그를 통해서 그 시대의 문화 등을 분석해 볼 수 있다.

<치즈와 구더기: 1976년 출간> 는 이 책이 출간되기 이전인 1973년 가을 프린스턴 대학 데이비스 역사 연구소에서 '민중 종교'라는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거론이 된다. '카를로 진즈부르크'는 탐정소설가와 같은 치밀함과 이야기 구사력으로 메노키오의 행적과 사고를 치밀하게 따라가면서 재구성한다.
메노키오의 재판에서의 증언, 주장, 재판관과의 심문과정, 마을 사람들과의 나눈 이야기 그리고 그가 읽었던 책들이 그에게 어떤 생각을 하게 했는가 등을 인용하여 적는다.
그당시에 방앗간 주인이었던 메노키오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가에 대한 의문들은 그가 읽은 책들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6세기는 종교개혁과 인쇄술의 발달 그리고 신대륙 발견 등의 획기적인 변화가 있다.
메노키오가 종교 관련 서적을 구해서 읽는 것이 수월했을 것이기는 하지만 평범한 농부가 이런 책들을 읽었다는 것도 그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메노키오 나름의 종교관, 우주관이 형성되었다는 것도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메노키오의 생각들을 살펴보면,
그는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신성, 마리아의 처녀성, 교황과 교회의 권위 부정, 하느님과 성경, 그리스도, 천사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인간은 모두 혼돈 속에서 창조되었다는 우주 생성론을 주장한다.
또한, 성직자들은 그들의 권위를 이용하여 가난한 농민을 착취했다고 말한다.

“제가 생각하고 믿는 바에 따르면, 흙, 공기, 물 그리고 불, 이 모든 것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하나의 큰 덩어리를 형성하는데 이는 마치 우유에서 치즈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구더기들은 천사들입니다. 한 지고지선한 존재는 아들이 하느님과 천사이기를 원하였고, 그 많은 천사들 중에는 같은 시간대에 그 큰 덩어리에서 만들어진 신도 있었지요.” (p. 185)
메노키오는 책을 읽을 줄 알았고 그를 통해 스스로 자기 나름의 생각을 펼칠 수 있었다. 이런 점이 로마카톨릭 관점에서는 이단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메노키오가 읽은 책들을 보면, <멘더빌의 기사>, < 그리스도적 삶을 위한 강론서>, < 성서의 약술가>, < 코란> < 데카메론> 등이다.
저자는 메노키오가 읽은 책의 목록, 메노키오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에게 영향을 미친 여러 종파와의 관계 분석, 재판 기록 등을 분석하여 메노키오의 주장의 근거를 찾아 본다. 저자는 이런 메노키오의 독특한 생각은 지금까지 소홀하게 여겼던 민중 문화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며 이런 생각은 개인의 생각만이 아닌 민중 문화의 뒷받침이 되었다고 말한다.

메노키오는 종교재판에 고발되었지만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단적이고 불경한 발언'을 과감하게 주장한다. 그는 자신만만하고 설득력있게 자신의 독창적인 견해를 주장한다. 나름대로 성서와 문헌을 자유롭게 해석한 놀라운 추리력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앞 뒤가 맞지 않는 모순적인 이야기도 많이 있다.

" 메노키오의 이야기에서는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의 독특하고 심오한 문화의 꽃이 대지의 표면을 뚫고 나와 꽃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p. 197)
미시사적 관점에서 본 16세기 이탈리아 농촌의 방앗간 주인의 종교 이야기는 특별한 의미의 책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