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몰락하는 자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8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박인원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소설의 모티브가 된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 (1741), 그리고 이 곳의 연주자인 세계적인 피아노 연주가 '글렌 굴드'가 소설에 등장하기에 이 소설이 주목을 끈다.
이 책의 저자인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바흐만', '한트케'와 함께 오스트리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이 소설에서도 군데 군데 조국 오스트리아에 대한 비판이 엿보인다.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아름답게만 느껴졌던 도시인 짤츠부르크에 대한 혐오적 생각은 책을 읽으면서 의아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나치에 협력한 오스트리아에 대한 비판이 담긴 <둥지를 더럽히는 자>, < 조국에 침을 뱉는 자>를 쓰기도 했다.
<벌목>, <몰락하는 자>, <옛 거장들>를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예술 3부작이라고 한다.
소설 속의 인물인 '글렌 굴드'는 소설 속의 묘사와는 다른 점들도 많다고 한다. 그는 연주를 할 때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습관이 있고, 그의 연주방식은 독특하고 그만의 개성이 있다. 그래서 '글렌 굴드'의 피아노 곡을 들으면 글렌의 연주임을 알 수 있다. 그밖에도 글렌은 결벽증이 심했고,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 51 살에 세상을 떠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들어보면 좋을 듯하다.
<몰락하는 자>는 화자 나, 베르트하이머, 글렌 굴드의 이야기이다. 3사람은 대학시절 오스트리아의 유명 음악대학인 모차르테움에서 만난다. 그들은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호로비츠의 수업을 같이 듣는다.
캐나다 출신인 글렌은 천부적인 피아노 실력을 가졌다. 나와 베르트하이머는 글렌 굴드의 재능을 이기지 못하고 중도에 피아노 연주를 포기한다.
나의 경우에는 부모님의 사업인 벽돌공장을 물려 받기를 원하는 부모, 예술가를 경멸하는 부모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피아노 연주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경천동지할 연주자가 되고 싶은 욕심은 없었다. 그래서 소중하게 여기던 피아노를 다른 사람에게 주면서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한다.
베르트하이머의 경우에는 글렌굴드가 금세게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자 자신은 도저히 그를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피아노를 포기하고 정신 과학에 입문을 하면서 그의 삶을 황폐해지기 시작한다. 성공한 글렌을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인생을 낭비하고 평생을 감성에 매달려 산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그의 강박증은 여동생에게 향하게 된다. 여동생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심지어는 족쇄를 채우면서까지 자신의 곁에 있기를 원하지만 어느날 여동생을 탈출하여 스위스 재벌과 결혼을 한다.
글렌은 학창시절 베르트하이머에게 '몰락하는 자'라는 별칭을 붙여 주기도 한다.
나와 베르트하이머는 캐나다로 글렌 굴드를 찾아가서 함께 지내기도 한다. 글렌 굴드는 5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글렌굴드의 죽음은 베르트하이머는 충격을 안겨 준다.

글렌 굴드의 연주곡을 들으면서 정신과학과 철학으로 도피하여 글쓰기를 하던 두 사람은 모두 몰락의 길을 걷는다. 베르트하이머는 얼마 후에 스위스 여동생의 집 근처에 있는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는다. 이 소식을 접한 나는 베르트하이머의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그가 지내던 여관 등을 둘러 보면서 친구의 죽음의 원인을 찾고자 한다.글렌 굴드의 죽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여동생의 탈출 후 결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최고의 예술가가 되지 못했기 때문일까?

성공했지만 정신적 질환을 가졌던 글렌 굴드, 친구의 성공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끝내는 죽음을 택한 베르트하이머 그리고 피아노 연주가로 성공하기를 그리 원하지는 않았지만 인생 마저도 성공하지 않은 나.
세 사람의 이야기는 여운을 남긴다.
이 소설의 특징은 사건의 전개가 없다. 나, 베르트하이머, 글렌 굴드의 학창시절 이야기 그리고 글렌의 성공, 나와 베르트하이머의 포기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 두 사람의 죽음.
이런 이야기가 계속적으로 되돌이표 처럼 나의 내적 독백으로 서술된다. 이야기 보다는 회상과 성찰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소설은 챕터 구분도, 단락 나누기도 없다.
그리 길지 않은 장편이고 단순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부담감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책의 첫부분 역자의 해설의 제목인 " 예술의 절대성과 완벽성 앞에서 한없이 무너지는 인간상'이 잘 나타났다.
" 글렌 굴드와 베르트하이머와 '나' 는 인생과 예술을 대하는 세 가지 방식을 예시한다. <몰락하는 지>는 예술가라기 보다는 (글렌 굴드 라는인물을 통해 체현되는)'이상적 예술' 앞에서 끊임없이 좌절하고 '몰락'하는 인간상을 날카롭게그려낸 작품이다." (역자 해설 중에서)

어떤 분야에서의 성공이 곧 인생의 성공을 이야기하지는 않음을 그리고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고 좌절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신만의 행복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그리고 타인과의 비교는 나와 삶을 황폐하게 해 줌을 생각하게 해 주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