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거리는 고요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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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범신은 1973년에 <여름의 잔해>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을 했다.

1993년 신문 연재소설 <외등>을 연재하던 중에 갑자기 절필을 한다. '내 상상력의 불은 꺼졌다'는 말을 남기면서....

그러나 작가는 3년 후에 <흰소가 끄는 수레>로 문단 복귀를 한다.


동시대의 작가로 한수산은 1972년 <4월의 끝>으로 중앙일보 신춘문예, 1973년 <해빙기의 아침>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을 한다. 한수산 역시 군부정권시절에 (1981년) 에 이유로 모르고 기관원에게 연행되어 갖은 고문을 받게 된다. 그는 이 사건으로 절필을 하게 되고 일본에 갔다가 헌책방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보게 되고 그를 토대로 28년의 노력끝에 <군함도>라는 책을 쓰게 된다.

박범신의 절필, 한수산의 절필은 그 원인은 다르지만 그 시대를 살아 온 작가들에게는 시대와의 불화가 있었다. 당시의 작가들의 소설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

박범신은 등단 이후 약 20년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활동을 했으며, 절필 이후에 다시 돌아와서 출간하는 소설들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갈망의 3부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촐라체>, <고산자>, <은교> 그리고 <나마스테>, <비즈니스>, <소금>은 독자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한다. <소금>은 1951년생, 베이비부머인 우리의 아버지가 주인공이다. 힘겹게 살아 온 사람들, 그러나 사회와 가정에서 소외되어 가고 있는 노년들. 자신 보다는 가족을 위해서 살아 온 인생이지만 이제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가 서글프게 다가온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꼭 둘로 나눠야 한다면, 하나는 스스로 가출을 꿈꾸는 아버지, 다른 하나는 처자식들이 가출하기를 꿈꾸는 아버지로 나눌 수 있었다.”(p.150∼151)라는 글처럼, 이 책은 ‘붙박이 유랑인’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그래서 ‘가출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거대한 자본의 세계 속에서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얻고 잃으며 부랑하면서 살고 있는지를 되묻는다. 과연 나의 아버지는 가출하고 싶은 아버지인가? 가족들이 가출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인가? 아버지가 되는 그 순간부터 자식들을 위해 ‘빨대’가 되어줄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선명우의 삶을 통해, 늙어가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과 삶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 소금>의 줄거리 중에서


" 일종의 그림자, 유령 같은 존재가 바로 아버지였다. " <소금> 중에서 p36


이렇게 독자들의 마음에 와닿는 작품을 썼던 박범신은 등단 50년, 작가생활 50년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2권의 산문집을 냈다.

<순례>는 작가가 1990년 이후 거의 매년 트래킹을 갔던 히말라야 그리고 카일라스, 산티아고 순례기, 마지막 장에 폐암일기가 담겨 있다.

<두근거리는 고요>는 그동안 신문, 잡지에 게재했던 글들, 팬클럽 '와사등' 홈페이지에 쓴 소소한 글들이 담겨 있다.

산문은 작가 인생의 많은 부분이 허구가 아닌 사실로 담겨 있기에 " 한 인간으로서의 내가 더 온전히 드러" ( 작가의 말중에서 )난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의 삶,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두근거리는 고요>는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 홀로 가득 차고 따뜻이 비어있는 집 - '와초재' 이야기

2장 : 나는 본디 이야기하는 바람이었던 거다 - 문학 이야기

3장 : 머리가 희어질수록 붉어지는 가슴 - 사랑 이야기

4장 : 함께 걷되 혼자 걷고, 혼자 걷되 함께 걷는다 - 세상 이야기

이곳을 찾은 한 남성이 머뭇거리면서 가방에서 책들을 꺼내서 작가에게 싸인을 부탁한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가 박범신의 책을 읽곤 했는데, 그때는 별로 그 책들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금은 그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살아 있을 때는 관심도 갖지 않았던 아내의 독서, 그러나 떠나고 난 후에 작가의 싸인을 받아 가면 먼 곳에서 아내도 기뻐 할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 책들을 읽으면서 아내가 왜 박범신 작가의 책들을 좋아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작가의 어머니가 창호지를 새로 바르던 날의 이야기는 나의 어린 시절에도 엄마가 볕이 좋은 가을날이면 하시던 이야기여서 공감이 간다.

책 속의 지명인 논산, 강경, 논산의 양촌면 등은 너무도 익숙한 지명이다. 우리 엄마의 고향이 논산, 아버지가 공주였는데, 이모들이 논산, 강경, 양촌 등에 사셨다. 여름 방학에는 외갓집에 가서 은진의 관촉사도 가고 강경의 거리도 걷기도 했다.

외갓집은 오래 전 논산 원북리에 있는 단 한 채의 기와집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어린 날에는 시골 풍경이 너무도 낯설어서 밤에는 서울에 있는 집에 가겠다고 울기도 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의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오른다.

나이가 든다는 건, 젊은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내 마음 속에 깊숙이 들어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박범신의 2권의 산문집은 읽으면서 그런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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