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저만치 혼자서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요즘 김훈 작가의 책을 산다면 거의 대부분이 <하얼빈>을 사서 읽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망설임없이 <하얼빈>대신 <저만치 혼자서>를 사서 읽기 시작했다.
김훈의 <남한산성>,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등과 같은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 보다는 유려한 문장이 돋보였던 <내 젊은 날의 숲>이 좋았기 때문이다.
<저만치 혼자서>의 리뷰를 쓰려고 하다가 오래 전에 썼던 <내 젊은 날의 숲>의 리뷰를 찾아 봤다. 이 소설은 2010년 11월에 출간이 되었고, 나는 2010년 12월 13일에 리뷰를 남겼다.
지금도 책 속에 나오는 봄이 오면서 얼음이 깨지는 '쟁쟁쟁' 그 소리가 기억이 난다.
이번에 읽은 <저만치 혼자서>는 김훈의 첫번 째 소설집인 <강산무진>이후 16년만에 나온 두번 째 소설집이다.
책에는 7편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명태와 고래>, <손>, <저녁 내기 장기>, <대장 내시경 검사>, <영자>, <48GOP>, < 저만치 혼자서>
그리고 이 작품들을 쓰게 된 이야기가 담긴 작가의 말인 <군말>이 있다.
" 그의 단편은 장편에 비해 일상적인 인물과 사건을 주로 다루는바, 그렇다면 김훈은 자신과 가까운 이웃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쓸 때 유독 고심한다는 뜻일까. 인간 개개인의 역사에서 일상은 결코 사소한 사건이 아님을 김훈의 단편은 먹먹할 정도로 드러내 보이고 있으므로 비루한 인간사를 허무하게 바라보던 김훈의 시선은 16년의 세월을 지나며 조금 더 애틋해진 듯하다. 물론 『저만치 혼자서』에서도 인간의 생애는 그들의 고통이나 절망과 관계없이 무심하게 흐르고, 시간은 살아가는 요령을 알려주는 대가로 그들의 신체를 허물어갈 뿐이다. 인간은 나약해서 이 비참한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소설집에서 김훈은 그런 나약한 인간이 멈출 수 없는 시간에 초연히 몸을 맡기는 모습까지를 쓴다. 버티다보면 힘겨웠던 지난 일도 견딜 만한 기억으로 남고, 감정을 터놓을 상대가 점차 사라지는 외로운 과정이 곧 인생이며, 인간은 그저 시작에서 끝을 향해 갈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다시금 삶에 임하는 김훈의 인물들은 한결 편안한 분위기를 풍긴다 " (인터넷 서점 책 소개글 중에서)
김훈은 첫번 째 소설집을 출간한 후에 꾸준히 한 편, 한 편의 짧은 소설을 썼다는 것을 7편의 단편소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사건, 어떤 이슈를 지나치지 않고 글로 옮기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군말>을 통해서 작가가 왜 이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을 알고 나면 작품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명태와 고래>는 분단국가인 우리의 현실에서 이런 사건들이 일어났음을 상기시킨다. 이춘재는 13년의 징역형을 받고 형기 10개월을 남겨 놓고 삼일절 특사로 사면이 된다. 그의 죄명은 간첩죄, 보안법 위반, 수산업법 위반.
그의 아버지는 군사분계선에서 가까운 북쪽 어래진포구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였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 작은 어선을 가지고 어업 활동을 하던 중에 6.25전쟁이 일어난다.
그는 북의 어래진 포구에서 남쪽의 향일포구로 피난을 온다. 두 지역은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 이춘재의 작은 어선으로 피난을 올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였다.
전쟁이 끝난 후, 조업을 하던 중에 해류에 떠밀려서 북한의 어래진 포구에 닿게 되면서 북한군에게 체포를 당한다. 북에서 심문을 받던 중에 남한의 약도를 그려주게 된다. 그리고 남한으로 송환되는데 그로 부터 6년 후에 남한에서 다시 체포가 된다.
북에서 그려준 약도가 간첩죄, 국가 보안법 등을 위반하였다 하여 징역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이런 이야기들의 한 조각이 있으리라....
작가는 " 2010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에서 광복 이후 전쟁과 분단, 개발 독재와 군부 독재, 유신과 쿠데타의 시대를 거치면서 벌어진 학살과 고문, 인권침해의 사례들을 조사한 결과를 종합보고서로 발간하는데(...)" (작가의 글 <군말>중에서 )
이 보고서를 읽고서 <명태와 고래>를 쓰게 된다.
<48GOP>는 " 십 년쯤 전에 언론사 취재팀과 함께 전방 군부대를 취재 여행하면서 느낀 것을 소설로 " (작가의 글 중에서)
<영자>는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 집단 주거지인 노량진을 배경으로 이 세상 속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썼는데, 작가가 노량진의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을 관찰하여 쓴 글이다. 작가가 언론사 기자 그리고 사회부장, 편집위원 등을 두루 거쳤기에 취재 능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나이와는 한참 차이가 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공감이 간다.
<저녁 내내 장기>는 작가가 25년째 경기도 일산에 살면서 호수공원의 장기판을 기웃거리면서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인데, 이 소설은 노년들의 이야기가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저만치 혼자서>는 김소월의 시 <산유화>중에 "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라는 구절에서 빌려온 소설 제목이다. 이 소설은 수도원, 신부, 수녀 이야기인데, 2012년 작고한 천주교 사제 양종인 치릴로 신부의 생애를 생각하며 쓴 작품이다.
" 표제작 「저만치 혼자서」는 죽음을 앞두고 호스피스 수녀원에 모여 살게 된 늙은 수녀들과 그들을 편안한 임종으로 인도하기 위해 성심성의껏 봉사하는 젊은 신부의 나날을 그린다. 성직자들조차 죽음이라는 미지의 사건에 대해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번민하고, 결국 죽음을 받아들여 안식에 드는 모습이 처연한 안도감을 남긴다. " (출판사 리뷰 중에서)
<손>은 오영환 소방사, 지금은 더불어 민주당 국회의원인 오영환 의원에게서 들은 이야기에서 그 느낌에 의지해서 쓴 소설이다.
살아가는 것이 힘겹고 외로운 사람들,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삶의 무게는 묵직하고 그들 자신이 짊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사회적인 문제를 담담하게 다루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들이다.
* 2010년 12월에 읽은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 리뷰를 함께 올립니다 *
'내 젊은 날의 숲'의 작가인 '김훈'과 나와의 책 속에서의 만남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가장 첫 만남은 '책책책 책을 말하다'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때 읽은 책이 '칼의 노래' 그리고 이어서 '남한산성' '자전거 여행' '풍경과 상처' '공무도하'.
그런데, 이런 작품들을 읽으면서 첫 만남은 너무도 많은 낯가림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에는 항상 내가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그리고 독자들에게 남기는... 사회를 향해서 외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를 물어보곤 했다.
워낙 역사소설을 좋아하기에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읽을 때에는 정통 역사 소설을 기대했기에 더욱 낯설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는 항상 우리들이 흔히 기대하는 영웅적이고, 애국적이고, 구국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제를 선 보였다.
역사가 가진 무게보다는, 영웅적인 모습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가지게 되는 인간적 고뇌와 번민을 다루고 있었다.
'공무도하'에서도 고전적 주제를 가지고 한 기자의 시각으로 전혀 새롭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훈의 소설들은 흔히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의 이야기들인 것 같으나 소설 속의 주제나 메시지는 제목에서 떠오를 수 있는 단상들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이야기들은 써 나갔다.
그의 에세이인 '풍경과 상처'는 에세이라기에는 좀 어려운 문체들이 결코 한 문장, 한 문장을 쉽지 않게 받아 들여야 하였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나의 빈약한 문학적 소양과 언어 및 문장 실력으로는 쉽게 받아 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런 김훈 작가의 작품들은 어느새 나에게는 조금씩 조금씩 낯익은 모습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공무도하'이후 약 1년만에 출간된 '내 젊은 날의 숲'을 읽으면서는 완전히 작가의 문장들이 자연과의 합일을 이룰 정도로 세밀하고도 날카롭게 관찰되어야만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한 문장, 한 문장의 아름다움과 그 문장들이 모여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청정지역과 같은 소설로 탄생한 것에 경이로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찌보면 한 권의 에세이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문장들.
그리고 어찌보면 한 권의 깨끗한... 담고 싶지만 담지 않고 남겨두는 여운이 남는 그런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그런 책이다.
문장의 향연이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의 소설을 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다.
세밀화가인 조연주,
그리고 비리 공무원으로 가족들에게 별로 다가가지도 못하고, 또한 아내 역시 '그 인간..'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위치에 있는 아버지.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아니 싫어하지만 그 연을 끊지 못하고 끌려가는 듯하면서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 그러나, 딸에게 밤마다 전화를 해야만하는...
또 두 사람, 김중위와 안요한.
조연주가 다가갈 것같으면서도 다가가기를 스스로 자제하는...
이처럼 인간의 삶의 테두리에는 가족관계로 얽혀 있어서 끊을 수 없는 인연도 있고, 새롭게 어떤 계기로 연결되는 관계도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조연주와 안요한은 낯가림이 심한 닮은꼴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서로 다가갈 수 없는...
민통선 안쪽의 자등령 숲의 수목원.
조연주가 세밀화가이기에 자연을 보는 눈은 그 누구의 눈보다 더 날카롭고 섬세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문장들로 '쟁쟁쟁~~' 울려 퍼지고....
그 문장을 읽는 독자들은 자연의 모습을 이렇게도 바라볼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음에 작가에게 찬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진다.
그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한국전쟁의 참상이 빚어졌던 자등령 기슭에 흙먼지를 겨우 뒤짚어 쓴 책 잠든 수많은 백골들.
그 백골을 꽃을 세밀하게 바라보던 눈으로 그려야 하는 일.
역사의 추악한 모습인 전쟁이 너무도 담담하게 쓰여져서 백골의 이미지에서 느낄 수 있는 섬뜩함마저 느낄 수 없게 해준다.
'내 젊은 날의 숲'의 문장들은 만연체와 화려체들이지만...
그 어떤 문장 하나 군더더기없이 쓰여져야 할 내용에 적확하게 쓰여진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허세에 찬 할아버지에서 안요한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을, 아니 겨울을 닮은 것처럼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잘못 얽힌 관계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한 것처럼....
그 흔한 사랑이야기 한 문장없이....
그
러나, 그 외로움의 색깔은 각각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하고, 그 외로움을 나타내는 방법도 다른 것이다. 아니, 인간은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외로운 존재들이기에 이렇게 자연의 묘사가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지막 김중위가 내민 명함 한 장. 그것은 또다른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대로 가방 속에 오래도록 담겨 있다가 정리되는 한낱 종이일 수도 있는....
작가는
화자인 연주는 일상에서의, 아니, 할아버지의 잔상과 아버지, 그리고 엄마의 관계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새로운 인연을 위해 자등령 숲의 세밀화가의 계약직으로 1 년간의 자연을 관찰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젊은 날의 숲'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며, 숲의 자연 속에서, 그리고 또다른 인연들과의 관계에서 꽃처럼 아름다운 그 무엇을 얻었을 것인지, 아니면, 그 이전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인지 독자들은 나름대로 판단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연주의 ' 내 젊은 날의 숲'이라기 보다는 약 1년 여의 시간을 전국 방방곡곡의 숲을 벗삼아 다닌 김훈 자신의 '내 젊은 날의 숲'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아름다운 문장들이 아직도 '쟁쟁쟁'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