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여자가 말하다 - 여인의 초상화 속 숨겨진 이야기
이정아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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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갈 때에 도슨트 시간을 이용하면 작품 속에 담긴 숨은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화가의 작품 속에는 그들의 삶의 이야기와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회화 속의 여인들, 그들은 화가와 모델, 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여 연인 또는 아내가 되어 화가의 작품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1000년의 회화 역사 속에서 여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찾아서 그녀들이 누구인지, 화가는 왜 그 여인을 그렸는지, 화가와 그림 속 여인들의 이야기를 찾아 낸 책이 <그림 속 여자가 말하다>이다.

  

 그림 속의 여인들이 왜 그런 모습으로, 그런 표정으로, 그런 상황에서 그려졌을까 하는 의문이 책을 읽으면 쉽게 풀려진다.

그림 속의 여인 들 중에는 역사적으로 알려진 인물들도 있다. 궁정 화가들에 의해서 그려진 여인의 초상화가 정략 결혼의 대상자에게 전달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궁중에 살고 있는 왕비, 공주의 모습도 초상화로 그려져서 후대까지 내려 오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점은 그림이 그려진 배경, 화가와 모델의 이야기,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림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는 것이다.

1760년에 잔해 속에서 발견된 프레스코화의 주인공은 서기 79년에 그려진 <폼페이 여인의 초상> 이다. 그 주인공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노래한 최초의 서정 시인 중의 한 명인 사포다.

여성은 남성 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던 그 시대에 시인으로 활동했던 그녀의 모습은 초상화 속에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중세 화가들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림으로 성경의 내용을 전달했다. 유럽의 유명 성당에 가면 성경 이야기가 연작으로 그려져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성모자의 모습은 초월적이고 성스럽다. 그런데 이런 편견을 깨고 그린 <성모자와 두 천사>에는 화가 프라 필리포 리피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필리포 리피는 고아로 수도원에서 수도사의 길을 걷던 중에 나이 어린 수녀와 사랑의 도피를 한다. 성당의 제단화를 그리면서 만난 그녀는 루크레치아 부티였다. 필리포 리피가 그녀에게 성모의 모델을 제안하면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성모자와 두 천사>에서 성모는 루크레치아가 모델이고 아기 예수는 화가의 아들이 모델이니 어찌 보면 자신의 가족 초상화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신성한 성모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인간미가 넘치는 성모자의 모습은 신성모독죄가 될 수도 있었는데...

필리포 리피가 그린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의 성모>도 역시 성모자의 모습이 <성모자와 두 천사>처럼 신성하기 보다는 인간미가 넘쳐 흐른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르네상스의 포문을 연 작품이다. 보티첼리는 고대의 부활과 인본주의의 시작을 비너스의 탄생을 통해서 표현했다.

그의 작품인 <봄>도 역시 초월적인 미의 세계를 나타낸다. 그에게 예술적 영감을 준 모델은 시모네타인데, <찬가의 성모>에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시모네타가 23세의 젊은 나이로 갑작스럽게 죽게 된다.

이후 보티첼이의 그림이 이단적인 것으로 간주되면서 화가는 세상의 비난으로 서서히 무너진다. 그런 화가의 마음이 담겨 있는 작품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이다. 앞의 작품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 그림에 드리워진 암울한 분위기

보티첼리는 종교적 참회와 묵상을 담은 몇 작품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된다. 그의 최후는 거지 신세가 되었으니... 보티첼리의 마지막으로 시모네타의 발 밑에 묻히기를 희망했지만 그마저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찬가의 성모>에 나타난 시모네타의 모습이 왜 그리 아름다운지 이제야 짐작할 수 있다.

그밖에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마르가르타 공주의 초상화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모네와 카미유의 사랑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산책>,

그리고 카미유의 임종 모습이 담긴 한 폭의 그림인 <임종을 맞은 카미유>

죽는 순간까지도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는 클림트의 화폭 속의 모델인 에밀리 플뢰게 이야기 등은 소설보다도 더 아름답고 슬프기도 하다.

그녀들이 왜 그림 속에서 그런 모습으로 표현되었는지를 자세하게 살펴 볼 수 있다.

특히 클림트의 연인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에밀리 플뢰게는 유명한 <키스>의 모델로 추측하고 있다.

죽어가는 애인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그림도 있다. 페르디난트 호들러의 <파리의 여인 발렌틴 고데 - 다렐>을 보면 그녀의 모습이 화사하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모델을 보는 화가의 셀렘의 감정까지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녀가 죽기 한 달 전에 그린 <발렌틴 고데 - 다렐 부인>은 침대에 누워 있는 수척한 모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망 하루 전 발렌틴 고데 - 다렐>에서는 병마에 시달린 모습이 안타깝기만한 발렌틴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하다. 화폭 전체에 도사리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죽음의 분위기.

화가는 이외에도 죽어가는 연인의 모습을 회화와 드로잉으로 200여 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화가들, 고야, 뭉크, 라파엘로, 앵그르, 드가, 마네, 고흐, 세잔, 샤갈....

그들이 그린 화폭 속의 여인들의 모습은 화가의 인생 속의 한 부분이었음을 아니 화가의 전부였음을 말해 준다.

한국의 화가로는 나혜석이 등장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화가. 조선 여성의 자의식이 담긴 그림을 그렸고, 최초로 유화 전시회를 열었으며 세계 일주를 했던 신여성.

그러나 그녀는 52세의 나이로 사람들의 편견에 시달리다가 어느 무연고 병실에서 쓸쓸히 죽었다.

책 속에 담긴 작품들은 우리에게 낯익은 작품도 많다. 그만큼 세상의 이목을 집중했던 그림들인데,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모델들은 우리들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사랑을 한 몸에 받고 환희에 찬 모습으로, 고뇌하는 모습으로...

화가와는 어떻게 만났을까? 그림 속의 그녀는 왜 그런 모습으로 있을까?

화가와는 어떤 사이였을까?

그런 물음에 다소곳이 답해주는 책이 <그림 속 여자가 말하다>이다.

너무도 잘 알려진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은 바로 이 책을 읽는 이 순간을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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