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년 전인 2018년 늦가을에 이정하 시인의 에세이 <우느라 길을 잃지 말고>를 읽었다. 시인의 대표 시집인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는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줬다.
시인의 시는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이별의 아픔이 있기에....
2018년에 출간된 <우느라 길을 잃지 말고>도 역시 아름다운 사랑 뒤에는 차마 떠나 가는 마음을 잡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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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 시인의 시 그리고 에세이는 절제된 글로 진솔되게 표현하기에 이별 후의 아픔까지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진정한
속마음은 아닐 것이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느끼는 그런 마음이라 생각된다.
시인은 <우느라 길을 잃지 말고>에서 이런 글을 썼다.
" 삶이 쓸쓸한 것 같습니다. 사랑이 외로운 것 같습니다." <우느라 길을 잃지
말고, 책표지 글 중에서)
이런 시인의 글이 가져다 주는 느낌들이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오히려 위안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16년 <다시 사랑이 온다> 이후에 3년만에 출간된 이정하 시인의 시집인 <괜찮아, 상처도 꽃잎이야>는 가을에
읽으면 좋은 시집이다.
아무래도 시는 가을과 어울린다. 가을도 낙엽이 떨어지면서 미처 떨어지지 못한 나뭇잎이 바짝 말라서 떨어지는 순간 바싹 바싹 거리는 그
낙엽들이 있는 가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비롯한 일상사에서 생긴 마음의 상처들. 그 상처마저도 꽃잎이라고 표현한 시인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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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느라 길을 잃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가끔 삶이 비틀거려도
그것마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믿었었다.
나에게 있어 사랑은 그래.
당신이 내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내가 나에게 다독거리는 거지.
내 몫의 아픔을 정직하게 받아들이자고,
당신을 사랑하는 한,
포기하지 않고 나의 길을 가고 있는 한
상처도 꽃잎이야. " (뒷표지에 실린 시)
그러나 시를 읽다보면 사람이기에 느끼는 많은 감정들이 표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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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을 뱉자"
너를 기다리는 게
내 생애 최대의 실수였다.
시간의 허비
기다리는 사람은 한결같은데
기다리게 만든 사람은 수시로 배반한다.
그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
정신 좀 차리자
잘 먹고 잘 살아라.
퉤퉤퉤 (p.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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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향기"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거나
탐스러운 과일이 달린 나무 밑에는
어김없이 길이 나 있다.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향기가 나는 아름다운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 함께 있고 싶다.
그 향기가 온전히
내 몸과 마음을 적실 수 있도록
그리하여 나 또한 그 향기를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도록 (p.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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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고 나면 "
잘해준 것은 생각나지 않고
못해준 것만 자꾸 생각난다.
줄 수 있을 때 아낌없이 주라
줄 게 없어질 수도 있고
줄 대상이 없어질 수도 있으니 (p.125)
시집 속의 시들 중에 읽으면서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한 시는 바로 "떠나고 나면" 이다. 반려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 지 60여 일이
지났지만 아픔은 더욱 커진다.
떠나기 전 날 추적 추적 내리던 초 가을비, 갑자기 추워진 날씨, 그 새벽에 곁에서 잠을 자던 강아지는 먼 길을 떠났다. 17년이란 生
동안에 약 16년을 함께 했기에 그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화장을 하고 온 다음 날, 동물병원에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전화를 했는데, 가슴이 막히고 목이 메어서 한참을 말을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강아지가 가장 좋아하던 곳의 양지바른 언덕에 한 줌의 재가 되어 묻혔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그 곳을 찾는다.
얼마 전, 비가 내리던 밤에 빗소리를 들으니 목이 메어 한참을 울었다.
이정하 시인의 '떠나고 나면'을 읽는 그 밤에도 가슴이 아파왔다. 이별은 이렇게 아픔으로 남는다.
봄이 되어 그 곳에 흐드러지게 벚꽃이 피면, 연분홍 벚꽃은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 앉겠지.
" 괜찮아, 상처도 꽃잎이야"
시인은 사랑의 아픔을 담담하게 시로 옮기지만 이별의 아픔이 얼마나 큰 지를 느낄 수 있다. 이별의 아픔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천천히 시를
음미하고 공감을 얻을 수 있었으면....
삶이 힘들 때에, 사람에 지쳤을 때에, 사랑이 떠나갔을 때에....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많은 순간들, 그 순간들 속에서 슬퍼하지 말고, 힘겨워하지 말고.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