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저물어가는 생을 축복합니다
강신주 지음 / 엘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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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음은 한 인간이 홀로 오롯이 겪어내야 하는 인생의 과정인 것 같다. 우리 모두는 그 '불쌍한 경험'에서 누구든 자유로울 수 없다. 그저 묵묵히 감당할 수 밖에.

내가 아무리 부모님을 잘 모시려고 해도 두 분 각자에게 맡겨진 그 실존적 고통은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해져버린' 나이든 부부를 모시며, 나는 생각한다.

마음이 가난하니 그들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게 너무나 쉽지 않은가.

곁에서 눈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가려운 데를 긁어드리고, 다정히 머리를 쓰다듬어드리고, 베게를 바로 놓아드리고, 손톱이며 발톱을 깍아 드리고... 이렇게 간단한 일들이 그들에게 행복감을 안겨준다.

노인들은 언제든 행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가 곁에서 조금 힘이 되어 드릴 수 있어서, 내가 그들분의 인생에 조금 행복을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게도 곧 노년이 찾아올 것이다. " (p.p. 74~75)

나이가 든다는 것 그리고 병이 들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당사자에게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힘겨운 일이리라.

그래도 누군가 보살펴 주고, 간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크나큰 복이 아닐까....

병들어서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을 몇 번 접한 적이 있다. 가족들은 며칠에 한 번 정도 들리고, 간호는 오로지 의료진에 의존하는 그런 사람을 병문안 간 적도 있다.

돌아서서 오는 그 발길은 너무도 무거웠고, 다음에 다시 오리라 생각했지만, 다시 한 번 들리지 못하고 그의 부음을 들었을 때에 마음은 착찹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누구도 늙지 않을 수 없고, 병들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강대건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마지막까지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준 딸이 있었으니....

이 책의 저자인 강신주.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 철학자 강신주가 죽음에 대하여 철학적으로 풀어나가는 책일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의외의 저자에 약간은 황당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저자인 강신주는 강대건과 이춘산의 딸이다. 강대건은 영문학 교수로 재직을 했었다.

은퇴 후인 2015년 미국에서 살고 있는 딸 강신주를 만나기 위해서 미국에 가게 된다.

미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아버지는 한국에 돌아가기 직전에 사고를 당하게 된다. 차에서 내리던 중에 낙상을 당하는데, 그 과정에서 머리를 부딪히고 골절상을 입게 된다.

한국에 돌아가서 치료를 받기를 희망하지만 그 상태로는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미국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그래서 약 3년간 딸의 간호를 받게 되는데, 그 이야기가 책 속에 담겨 있다.

중환자실에서 맞게 되는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그로 부터 며칠 후에 세상을 떠나는 아버지의 이야기.

삶과 죽음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아버지에 대한 딸의 절절한 병간호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딸이 아버지의 배변, 목욕 등을 비롯한 간호를 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딸은 아버지를 의무감에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버지와 엄마를 지켜 드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딸은 아버지랑 같이 했던 그 순간들이 행복했노라고 말한다.

병간호를 하는데는 육체적, 정신적 문제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금전적 문제가 무시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인연을 만난다면 훨씬 힘이 될 것이다.

저자는 아버지가 아프기 전에 이미 오빠의 죽음을 접하기도 했다. 오빠의 죽음, 아버지를 위한 3년간의 간호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장례....

"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고, 울고, 살아간다." (책 뒷표지 글 중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낸다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이 힘든 일이었다. 그저 조용히 아버지의 모습을 마음에 담고 애도하는 시간이 내게는 필요했다.

이런 행동은 어쩌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후 가장 힘든 것은 조문하는 이들이 아니라 남아 있는 가족이다.

슬픔에 잠긴 유족이 침묵과 은둔을 택한다면 혀를 차거나 손가락질을 할 게 아니라,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위로이다." (p. 176)

팔순이 넘은 부모님을 돌보는 50대 딸의 이야기를 통해서 '늙어감'에 대해서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마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 다가올 노년의 삶 그리고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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