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그리고 축복 - 장영희 영미시 산책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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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문학작품 중에 2권으로 된<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거릿 미첼>가 있다. 영화로도 나왔는데, 영화는 당시에 인기 절정이었던 비비안 리(스칼렛 오하라 역)와 클라크 게이블 (레트 버틀러 역)이 열연을 했다.

영화도 좋았지만 원작 소설은 더 재미있었다. 두꺼운 책임에도 읽기 시작하면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바로 그 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역자는 한국 번역 문학의 태두(泰斗)인 장왕록 박사였다.

영문학자이자 번역 문학가인 장왕록 박사의 딸인 장영희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문학자이자 번역가, 수필가, 칼럼니스트가 된다.

그런데, 장영희는 첫 돌이 지나 소아마비를 앓게 되면서 신체 장애인으로 살게 된다. 1952년생인 그녀가 살았던 시절에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 중학교 입시 제도가 있었던 때인데, 소아마비의 경우에는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소위 말하는 일류학교에는 갈 수가 없었다. 체력장과 면접에서 불합격됐다.

이런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석사를 거쳐 미국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녀는 서강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을 하면서 폭넓은 활동을 한다.

번역 뿐만 아니라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특히 장영희와 함께 생각나는 사람은 화가인 김점선이다. 장영희가 쓰고 김점선이 그림을 그린 책들이 여러 권 있다.

김점선의 그림은 특별하다. 김점선의 그림은 한 번 보면 다음엔 그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림의 소재로 자연이 많이 등장한다. 김점선 특유의 새, 동물, 꽃, , 별....

자유롭고 파격적인 그림이다. 전체적으로 그림의 분위기는 따뜻하고 밝다. 유치원, 초등학생이 그렸다고 해도 될 정도로 유아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동화 속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환상적이다.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망아지(?)가 뛰어 놀고, 하늘엔 별이 빛나고....

그런데 묘한 매력을 가진 그림이다. 보면 볼수록 환상의 나래를 펴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그런데 김점선의 그림도 말기에는 변화가 엿보인다.

2004년 부터, 장영희는 조선일보에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이란 칼럼을 기고하고 있었다. 그 해 9월에 암이 발병한다. 이미 2001년에 암이 발견되어 치료를 했는데, 2004년에는 척추에서 암이 발견되고 간까지 전이가 된다.

절친이 김점선도 2007년에 암이 발병한다. 가장 가까웠던 두 사람은 암 투병 중에도 서로를 위로하면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김점선은 2009년 3월에, 장영희는 2009년 5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들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 속에서 명복을 빌었다. 그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글과 그림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고이 간직됐다.

장영희의 경우에는 2004년 암이 발병한 후에 그동안 쓰던 4개의 칼럼 중에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만은 중단하지 않고 2005년까지 썼다. 그만큼 그녀에겐 영미시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고 생각된다. 

2006년 4월에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 칼럼 중에서 49편을 골라서 한 권의 책이 나오는데, <생일> - '사랑이 내게 온 날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라는 부제가 붙었다.

<생일>의 후편인 <축복>은 2006년 7월에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 칼럼 중에서 50편을 골라서 한 권의 책이 출간된다. 부제는 ' 세상에서 제일 큰 축복은 희망입니다.'

두 권의 책에는 영미 문학사에서 빛나는 시인들의 아름다운 시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시를 돋보이게 하는 김점선의 그림들이 함께 담겨 있다.

99편의 영미시는 희망, 인생, 축복, 죽음, 사랑, 위로 등의 주제가 담겼다. 영미시집인 <생일>과 <축복>을 한 권으로 묶은 책이 <생일 그리고 축복>이다. 이 책 속에는 99편의 영미시가 담겨 있다.

책의 구성은 영미시 원문, 장영희 번역시, 장영희의 시 해설, 김점선의 그림, 영미시 원문의 시인 소개의 순으로 되어 있다.

 

시란 시인의 마음을 함축된 언어로 표현하기에 책에 실려 있는 영미시 원문들은 그리 어렵지 않다. 독자 나름대로 번역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문장이다.

그래서 이 책을 영어 공부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천천히 한 문장, 한 문장 시를 해석해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그동안 장영희가 살아 있을 때에 출간된 책들과 그 이후에 저자의 글들을 모아서 출간된 책들은 여러 권 있다. 모두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책들이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 / 2005>,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2009>, <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2010>, < 내 생애 단 한 번 / 2010>, <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 2014>. <다시 봄 / 2014> 등이 있다.

책표지 뒷쪽에 있는 추천의 글들에서 정호승의 글이 마음에 남는다.

항상 웃는 얼굴이던 장영희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 인간만이 시를 쓸 수 있고, 시를 읽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은 신의 축복이다. 장영희 교수는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영미시를 맛깔스럽게 번역하고 신을 대신해 축복의 꽃다발을 한아름 안겨주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 이 시집은 위로의 시집이자 용기의 시집이며, 희망의 시집이자 사랑의 시집이다. " - 정호승 (시인) -

생일, '사랑이 내게 온 날' 그렇다. 내가 태어난 날은 사랑이 내게 온 날이다.

축복, 제일 큰 축복은 희망이다.

그래서 생각난 책 속의 글.

" 희망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거나 간절히 원해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상처에 새살이 나오듯, 죽은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듯, 희망은 절로 생기는 겁니다. 희망은 우리가 삶에서 공짜로 누리는 제일 멋진 축복입니다. " (p.233)

" 때로는 나무가 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자기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서 묵묵히 풍파를 견뎌내는 인고의 세월이, 향기롭지 않지만 두 팔 들어 기도하여 세상을 사랑으로 껴안는 겸허함이 아름답습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달이 걸리고 해가 뜨는 나무는 오직 신만이 지을 수 있는 아름다운 시(詩)입니다. " (p. 147)

힘든 투병생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우리에게 멋진 영미시를 선사하고 간 장영희의 한 권의 책을 읽으며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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