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슬퍼할 권리 - 심리치료사가 말하는 상실의 슬픔에 대처하는 자세
패트릭 오말리 외 지음, 정미우 옮김 / 시그마북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상실의 슬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는 먼 길로 떠나 보낸 사람들이 가지는 슬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3개월 정도의 투병 생활을 하시고 떠나신 어머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싶은 마음.

그러나 그 보다는 아버지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시고 힘들어 하셨던 어머니의 슬픔이 훨씬 크게 느껴졌다. 어느해 3월의 마지막 월요일, 평소처럼 아침밥을 드시고 출근하신 아버지는 직장에 도착하신 후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다. 아버지의 직장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에 어머니와 나는 서둘러 그곳으로 갔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이 누워 계시던 아버지.

뒤이어 병원 구급차가 오고 아버지는 하얀 천을 머리끝까지 쓰고 사무실을 나가셨다. 그것이 아버지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그만큼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가 싸늘한 죽음으로 다가오리란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과 남겨진 가족들, 어머니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서 1주일이면 한 두 번을 가시던 어머니, 울면서 모란공원 고갯길을 오르면 막상 아버지 묘 앞에서는 눈물도 마르시더라고 말씀하셨던 어머니.

어머니는 상실의 슬픔을 그렇게 삭히셨다. 그래서 <제대로 슬퍼할 권리>를 읽으면서 어머니의 슬픔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우리들 중에 상실의 슬픔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대처 방법을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터득하게 된다.

<제대로 슬퍼할 권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사례로 소개된다. 그리고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심리치료사 '패트릭 오말리'는 그들에게 자신의 슬픔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도와준다.

'패트릭 오말리' 역시 생후 9개월 된 아들을 잃은 경험이 있다. 예정일 보다 3개월 일찍 태어난 아이, 0.9 kg의 작은 아이는 온 몸에 의료 장비를 달고 힘겹게 생의 끈을 잡게 된다.

6개월 만에 퇴원하여 집으로 오게되니 안심을 했건만 9개월이 되던 어느날 감기에 걸렸다가 숨이 멈추게 된다.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아이는 세상을 떠난다.

'패트릭 오말리'는 아이의 출생부터 마지막 순간까지를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이를 잃은 후 10년간은 암울한 길 위에서 방황하듯 살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심리치료를 받기 위해서 찾아오는 많은 애도자들과 함께 슬픔에 제대로 대처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

그 이야기가 책 속에 담겨져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론 중에 '슬픔의 5단계'가 있다.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저서 <죽음과 죽어감>에 소개한 내용이다.

퀴블러는 암환자를 중심으로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5단계로 분류한다. 그런데, 이 분류가 상실의 고통에도 적용된다. 상실의 고통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고 말한다.

그래서 죽음의 슬픔을 겪은 사람들은 자신들도 이 과정을 거쳐서 슬픔을 수용하리라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애도자들에게는 족쇄로 다가온다.

'나는 이 과정 중에 지금 어디에 속할까?', ' 6개월, 아니면 1년이면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 상실이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를 할 안전한 장소가 있을 때,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사이에 아름다운 유대관계가 형성된다. 나는 그렇게 많은 내담자가 최초의 상실 몇 년 후, 심지어는 수십 년 후, 그들이 과거에 겪은 상실과 현재의 이야기를 연결하는데 도움을 받기 위해 나를 찾아 온다는 사실에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겸손해진다. " (p. 74)

 

 

   

바로 저자인 '패트릭 오말리'도 느꼈고, 심리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도 느꼈던 것들은 슬픔의 5딘계에 대한 의구심이다.

그들이 느끼는 슬픔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슬픔은 종결이나 해결이 최종 목표가 아니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슬픔에는 5단계가 필요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건 애도자들에게 상처만 줄 뿐이다.

* 왜 슬픔을 분류해서 규정할 수 없는지를...

* 슬픔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단계를 거쳐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생각은 오류임을...

'이자크 디네센의 <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나오는 구절이다.

" 슬픔이란 이야기로 쓰거나 말할 수 있다면 견딜 만한 것이다. "

저자가 상실의 슬픔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권하는 것은 자신의 슬픔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고 더 깊이 탐구하는 것이다.

책에 나온 질문들의 메시지를 이용해서 그에 대한 글쓰기를 할 것을 강력하게 독려한다. 

책에 나온 지침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고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슬픔의 이야기를 만들고 수용하게 된다. 슬픔의 유형이 다르고, 상황이 다른데, 이 모든 슬픔을 5단계로 규정짓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슬픔의 단계는 슬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론이다. 그런데 그 단계별 극복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면 그건 분명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이 세상을 떠난 사람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까지 책의 질문에 따라 생각해 보고 그 모든 것을 글로 써보자.

" 이 책은 여러분이 슬픔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수는 없지만, 대신 슬픔을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경험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 (p. 13)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닿는 문장은,

" 슬픔은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다. 사랑한다면 슬퍼하라. " (p. 13)

이 책은 슬픔에 대한 두려움과 자기 비판을 완화시켜준다.

우리 문화에서는 상실과 슬픔을 빨리 극복하라고 말한다. 슬픔은 사랑에서 비롯한 당연한 감정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도 자신의 경험과 심리치료차 자신을 찾은 사람들을 통해서 슬픔의 5단계에 대한 반론이 생기게 되고, 그것이 아닌 방법이 삶 속에서 상실의 슬픔이 함께 어우러지도록 하자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슬픔은 사랑에서 비롯된 당연한 감정이니 우리 삶 속에서 슬픔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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