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양장) 헤르만 헤세 컬렉션 (그책)
헤르만 헤세 지음, 배수아 옮김 / 그책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작가이자 문학 평론가인 정여울의 <헤세로 가는 길>을 읽었다. 그 이전에 다른 작가의 <헤세의 정원>을 읽기는 했지만 <헤세로 가는 길>을 통해서 헤세의 삶과 문학을 자세하게 살펴 볼 수 있었다.

헤세는 독일의 칼프에서 태어났지만 인생을 마무리한 것은 스위스의 몬타뇰라이다. 히틀러 통치하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가 없어서 스위스로 망명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으며 신학교에 입학하기도 했으나 기숙학교의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헤세는 할아버지의 책들을 읽으면서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그것이 헤세가 수도사가 아닌 작가가 된 계기일 수도 있다.

헤세의 작품 중에 주인공이 수도원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헤세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정여울은 인생의 고비마다 헤세의 책을 읽곤 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헤세의 작품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헤세로 가는 길>에 헤세의 작품 중에 4작품을 해설해 준다. 그 중에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는 읽은 작품이지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와 <싯다르타>는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기에 이번 기회에 읽게 됐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1927년~1929년에 걸쳐서 이 책을 썼다. 당시의 독일은 제 1차 세계대전 패전 후이다. 이 책에는 '어느 우정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정여울의 해석을 보면 이 책 속에는 현대 심리학의 대가인 융의 심리학적인 요소가 많이 담겨 있다.

우정의 주인공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그런데 두 사람은 나이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지만 스승과 제자이다.  어느날 수도원 학교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골드문트가 들어 오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이 수도자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집을  떠나 버린 아내에 대한 혐오감은 아들에게 어머니에 대한 아픈 상처만을 남겨 둔 채로....

골드문트는 수도원에서 수도원장인 다니엘과 보조 교사인 나르치스에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수도원장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이고, 나르치스는 나이는 학생들과 별 차이가 없지만 영적인 삶을 사는 천상 수도사이다.

그런데 비하여 골드문트는 아버지의 뜻대로 수도사의 삶을 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본성을 갖고 있다.

어느날 수도원에서 골드문트가 기절을 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서로에게 깊이 끌리는 존재가 된다. 우정이라고 하지만 우정 보다 더 진한 사랑의 마음.

골드문트는 친구들과 수도원 밖으로 나갔다가 알게 된 여인으로 인하여 심한 갈등을 느끼던 중에 수도원을 떠나 방랑의 길을 걷게 된다.

가는 곳마다 여인들의 유혹에  빠져 사랑의 모험을 즐기면서...

그러나 그 중에는 정말 순수한 사랑의 마음도 있다. 그런 방랑의 생활 속에 살인까지도 저지르게 되면서...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돌아오게 되는 곳은 나르치스의 곁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우정.

나르치스는 존경받는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었고, 골드문트는 자신의 방랑 속에서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다.

책의 구성을 보면, 초반에는 골드문트가 수도원에 들어오면서 나르치스를 만나고, 나르치스와의 우정이 싹트게 되고....

골드문트가 수도원을 떠나면서는 골드문트의 방랑의 이야기가 하반부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에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만남이 전개된다.

골드문트는 사춘기 소년이 처음 갖게 된 성에 대한 생각으로 무절제한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쾌락에 빠지지만 그건 결국에 그를 예술의 세계로 이끌게 된다.

나르치스는 수도사로 영적인 삶을 사는 인물이니, 두 사람의 우정이 어울리기나 할까...

완전히 다른 삶을 산, 정반대의 영혼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 영성과 지성의 화신인 나르치스와 자연과 예술의 아들인 골드문트, 금욕적인 나르치스와 감각과 열정의 인물 골드문트. 이 책은 인간 본성의 극단적인 양면을 철저하게 육화한 두 주인공이 나누는 정신적 관계의 이야기이며, 아버지와 어머니로 대표되는 두 세계의 대립과 융합에 관한 이야기이다.

헤세는 이 소설의 서문에서 이렇게 쓴다.

' 두 개의 대원칙, 영원히 대치하는 두 세계를 각자 타고난 두 개의 육체가 서로 만나게 되면, 이제 운명은 정해진 셈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끌리고, 서로가 서로를 매혹시키고, 서로를 정복할 수 밖에 없다.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최고의 상태로 고양시키거나, 아니면 철저하게 파괴할 수 밖에 없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도덕과 순수가, 정신과 자연이 오직 그것만으로 이루어진 육체를 입고 서로 만날 때, 서로의 눈이 마주칠 때,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만남이 그러했다.' " (p. 445)

"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소년을 위한 성장소설이자 에로틱한 본성을 찾아가는 '관념적인 성애 소설'로도 읽혔다. 골드문트의 사랑은 특정한 소녀에게 바쳐지는 사랑이 아니라 끊임없이 미지의 여인들을 전전하며 매번 새로운 육체의 감각을 통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원형으로 다가가는 정신 - 에로스의 모험이자 여정, 그리고 성숙과 합일이다. (...)

이 소설은 한 편의 기나긴 예술론으로 읽히기도 한다. 골드문트가 세상을 인식하는 모든 과정,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관능에 눈뜨고 감각을 발전시키는 모든 과정이 전부 예술과 연관되며 창조라는 궁극의 지점을 향한다. 좀 장황할 정도로 매번 반복해서 묘사되는 여인들의 신체와 몸짓과 자연의 관찰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 조각가의 길로 들어서는 골드문트 운명의 암시이기도 하다. " (p.451)

페이지 445, 451의 내용은 이 책의 역자인 작가 배수아의 '옮긴이의 말'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학생들의 필독 도서인데, 주인공 한스의 이야기는 헤세의 성장기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만약 한스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자상한 어머니가 있었다면 그런 비참한 최후을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학생들 보다는 학부모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학생들이 읽기에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들도 있다. 어느 정도 작품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심리학적인 분석도 할 수 있는 정도의 배경지식을 갖춘다면 작가가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부분을 감지할 수 있다.

정여울의 작품 해석과 배수아의 작품 해석을 함께 읽는다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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