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태그놀이 - 언니들이 전하는 새콤달콤 여성주의 레시피
언니네트워크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 여성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어머니, 누나, 반려자, 동생의 문제이다.
 
 
  어머니가 난소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로 입원했을 때, 가정에서 어머니의 빈자리를 경험하였다. 어머니가 겪는 일상의 일들인 빨래, 설겆이, 요리를 대신하며, 집안일의 힘겨움에 대한 생각을 시작했다. 수 십년 꾸준히 집안일을 하면서 경험해야 하는 일상의 지옥, 해도해도 끝이 없는 티나지 않는 일상, 무엇보다 당연하게 생각하며 지적하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어머니에게는 짜증을 나게하는 원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어머니의 일을 다 나누어 할 생각을 하지 못한점을 반성했다. 고혈압으로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위한 책들을 찾아보며, 여성이 매달 하는 생리와 여성만이 겪는 문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 생리대를 사러가는 불편한 기억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었는데, 모르고 지나치는 그 순간에도 어머니는 많은 고통을 고통인지 모른채, 다들 그렇게 지내니까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늘 그래왔기에,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던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처음 했었다. 아, 이대로 그냥 지나쳐버리면, 나 역시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많은 희생들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스스로가 무서워졌다. 사랑으로 결혼을 결심하지만, 함께 살기위해서는 상대의 습관과 가정문화가 그들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변화가능성도 고려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를 알았는데도, 막상 바꾸려는 노력 도중에, 왜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익숙해진 습관을 바꾸는 일이 버거워질 땐, 눈 살짝 감으며 모르는 척 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해한다. 그래도 바뀌어야 한다 생각한다. 당연하게 보여지는 일들이, 당연하지 않는 사실을 인정할 때, 여성문제가 보이기 때문이다. 여성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어머니, 누나, 반려자, 동생의 문제라 생각한다.  알더라도, 단숨에 바꾸는 일이 쉽지 않지만, 잊지 않기 위해, 꾸준히 현실을 기억하고,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  남자이기에, 주류이기에, 보이지 않았던 많은 어둠의 그림자들을 보다.
 
 
  여성주의를 지향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언니네에서, 수록된 글 중 59개의 글을 가려뽑아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여성과 성적 소수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현실의 모순, 자신의 감정과 생각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남자이기에, 성적 소수자가 아닌 주류이기에,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결혼 뒤에 숨어진 여성의 희생과 역할의 되물림이 보인다. 사회구조적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사실이 책의 활자를 통해 생생하게 가슴에 전해진다. 서로 마음이 맞아 행복한 연애를 하더라도, 행복한 결혼에서는 두 사람의 가족이 만나기에, 더욱 힘들어지는 이유를 알 수 있다고 할까. 남자라고 결혼생활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여성의 고통에 비하면 여성의 희생이 크다는 사실, 인정한다.
   
  한국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지만, 다양한 처지에서,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밝은 햇살에 보이지 않는, 어둠의 긴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고 할까. 주류라는 밝은 공간에 나오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적어질수록, 일정한 틀이 아닌, 다양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당당하게 사회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사회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라는 점을 확인했다.
 
  당장 내가 바뀌면 고칠 수 있는 문제들도 있고, 사회의 구성원들이 진지하게 고민하며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 문제를 인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숨을 수 밖에 없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이다. 여성에 대한 편견, 동성애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있지 않는, 열린 사고를 가진 이라면, 읽어보고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생각한다. 그들의 생각을 동의하던지에 관계없이, 던져진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며, 은연중에 지니고 있는 삶의 가치관을 돌이켜 볼 수 있기에, 이 책은 소중하다. 가치관에는 정답이 없기에, 자신의 위치에서 가장 나은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모두가 함께 같은 가치관을 지향하는 사회가 아닌, 다른 생각들도 기꺼이 이야기하고, 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까. 아직까지 한국사회는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하여 활동하기에, 비혼모, 비혼남이 입양해서 아이를 키우기에, 여성이 밤길을 마음놓고 돌아다니기에, 여성 혼자서 사업을 하기에 제도적, 사회정서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현실이 보였다.
 
  뛰어난 지도자가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게 만드는 사회를 바라지 않는다. 뛰어난 지도자에 의지하게 되면, 그가 없었을 때, 못난 지도자와 함께 겪어야 하는 고통이 너무나 크다. 함께 살아숨쉬며, 모두 공존하며 사는 일, 내 옆에 있는 어머니, 누나, 여성의 성을 가진 이와 함께 동등하게 사는 연습부터 시작했을 때 가능하다 믿는다. '동등'이라는 이름은 남성, 여성의 입장이 아닌, 서로가 동의하는 부분에서 시작된다 생각한다. 가부장의 흔적과 수직구도의 남아있는 남성중심이 무너지는만큼, 남성이 경험하는 혜택은 전보다 줄어들겠지만, 남성이 소중히 생각하는 여성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공간은 그만큼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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