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어린이들 - 이기웅 사진집
이기웅 / 열화당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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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진한 아이들이 표정을 보다보면, 마음이 즐거워진다.

  
  제목에 충실한 사진집이라 할까. 1990년 한국의 어린 소녀를 찍은 사진부터 시작된 그의 사진여행은 네팔과 대만, 러시아, 헝가리, 체코, 프랑스, 영국, 미국, 이탈리아, 인도, 스페인, 모로코, 우즈베크, 카자흐스탄,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중국, 일본,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에 이르기까지 25개국 419장의 어린이들의 사진이 담겨있다. 한국의 이곳저곳, 시간의 풍경의 흐름에 따라, 아이들의 옷차림과 그들이 서 있는 곳의 배경은 달라지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순진무구하다. 연예인처럼 남들에게 보여주기에 익숙한 노련한 표정이 아닌,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어색하고 머뭇머뭇하는 그 표정과 포즈들이 오히려 정감있게 다가온다. 처음 사진을 찍을 때 머뭇머뭇하던 옛 추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 이제는 많이 찾아보기 힘든 풍경들.

 

  처음에는 아이들의 표정에 주목해서 사진집을 살펴보았다. 의도가 담기지 않은 표정들에 담긴 미소와 다양한 표정들을 보며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는 자연스레 아이들이 서 있는 장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허름한 시골, 이름을 알기 힘든 들꽃들과 함께 즐거운 미소를 띠고 있는 아이의 모습, 초가에 백발이 된 할머니의 등에 업혀, 손을 잡고 맑은 미소를 짓는 아이들, 청학동에서 한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 왼쪽으로 고개를 젖힌 채 카메라의 렌즈를 응시하는 아이의 뒤편에는 두 개의 구멍이 크게 난 나무가 보인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풍경, 조금씩 사라지는 풍경들, 어쩌면 이런 풍경들이 사라지면서 아이들의 미소 역시 사라져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는 새로운 작은 물건 하나에도 기쁘고 행복해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했었다.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면서부터 즐거움보다는 세상의 아픔과 현실의 절망감이 더욱 눈에 들어오기시작했던 것 같다. 세상이 많이 바뀐것도 아닌데, 왜 내 마음이 많이 달라졌을까 생각해 보았더니, 어렸을 때 보았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많이 달라져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타인과 비교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호기심어린 눈으로 세상의 풍경들을 바라보았던 그 시선을 잊고 살았었는데, 책은 유년시절의 내 마음의 풍경을 바라보는 자세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내일을 위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삶을 소중히하고 즐겁게 지내는 마음, 친구를 소중히 하는 마음들을 말이다.  

  사진에 이름도 없고, 따로 담긴 저자의 글도 없지만,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는 사진집이다. 처음엔 타임머신을 타고 어렸을 때의 내 머리 속으로 들어간 느낌에서, 그 때의 아이들 뒤의 풍경으로, 다음에는 삶을 바라보는 자세로, 많은 글을 써서 생각을 전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이의 표정으로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아이들이 전쟁과 어른들의 욕심때문에 지금 이 맑은 웃음을 잃게 해 주어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념과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아이들의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위해서라도 전쟁과 폭력, 그리고 차별등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함을 다시 깨닫게 된다.  

  마음이 울적할 때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나니 마음에 큰 힘이 생긴 느낌이다. 지인의 생일선물로 꼭 정해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선물을 건네는 내 마음에는 지금은 힘들어도 아이들의 밝은 미소를 보며, 생을 살아갈 힘을 얻기를 바라는, 어쩌면 이미 잊고 살고 있는 옛시절의 풍경과 다양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다양한 문화와 우리가 지켜줘야 할 것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고 말하고 싶다. 굳이 글로 적거나 말을 하지 않아도, 사진집만 건네도 다 전해질 것 같다.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세상을 맑게 볼 수 있는 지인에게도, 현실의 괴로움이 가득해 도피하고 싶은 이에게도 모두 잘 어울리는 책이라 생각한다. 행복해지는데는 돈도, 무언가 큰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알려준 책이다.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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